일상

[작담이 통신] 올빼미 영화관 2회 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주제는 특별한 가족 이고요

2024.08.16 | 조회 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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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담이 통신

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올빼미 영화관은 호작담에서 여름 한정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금요일 밤 11시 무렵에 모여 제가 고른 영화 세 편을 함께 보고요. 주제는 오롯이 저의 취향에 따릅니다.

참여자의 대부분이 의외라고 했던 건 '준비를 너무 열심히 했다'였어요. 그래도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는 건데 영화 세 편만 띡 틀어주는 건 너무 멋스럽지 않잖아요. 프로그램 진행하며 철저히 대본 플레이를 합니다. 오늘 띄워 드리는 글은 그 대본인데요. 1부터 10단계까지 있다 치면 전해드리는 글은 8단계 정도입니다. 10단계에는 제가 사용하는 언어 그대로 수정해요. 그리고 이 글을 달달 외웁니다. 보고 읽지 않아요. 보고 읽는 건 멋스럽지 않으니까요.

이 글 읽고 오신 분은 얘가 뭐 빼먹나 두고 보는 재미가 있으실 거고요. 오고 싶지만, 일정이나 사정 있으신 분은 대리만족 되시길 바랍니다.


 

 

다섯 번째 시즌, 두 번째 올빼미 영화관입니다. 올여름에는 주말에 외부 일정이 좀 있어서 7월에 부지런히 열지 못했습니다.

올빼미 영화관은 2019년부터 시작했고, 여름에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지하 공방이니 늘 지상보다 낮은 온도를 유지하거든요. 그래서 더운 여름에 시원한 지하 공방에서 영화나 보자하며 시작한 게 어느덧 6년 쨉니다. 중간에 코로나로 인해 1회 차만 하고 끝나버린 적도 있었지만, 아무튼 다섯 번째 시즌입니다.

세 편의 영화를 함께 보는데요. 보통 한 감독을 주제로 하고요. 어떤 회차는 배우를 주제로 하기도 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제가 틀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감독이나 배우로 잘 묶이지 않았을 때는 키워드를 주제로 삼기도 합니다오늘이 바로 그날이에요. 틀고 싶은 영화가 있지만 감독이나 배우로 엮기 어려운 날이요. 오늘은 특별한 가족이라는 주제로 세 편의 영화를 골랐습니다.

애프터썬’, ‘코다’,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세 편입니다. 애프터썬을 틀고 싶었어요. 올해 초에 본 영환데,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른 채 봤거든요. 아직 하반기가 남아있지만, 감히 올해 본 영화 중 최고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영화 코다는 영화는 영화 자체도 나쁘지 않았지만, 영화 감상평 중에 마음에 쏙 드는 게 있어서 마음에 담아둡니다뻔하다... 흐윽............흐엉..........엉엉....흐윽............흐엉..........엉엉....흐윽...흑흐윽...흑흐윽.....끕흐윽............흐엉..........엉엉.......흐윽............흐엉..........엉엉........흐엉..........엉엉................”

세 번째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이야기할 때 잦게 이야기하거든요두 번째, 세 번째 영화는 이후에 이야기하고요.


 

첫 번째 영화 애프터썬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어른이 된 소피가 우연히 아버지에 관한 꿈을 꿔요. 과거 아버지와 함께 갔던 튀르키예 여행에서 찍은 캠코더 영상을 보며 기억을 반추하는 이야기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가족적인 사랑이나 성장 영화 같아요. 그러나 전혀 성장 영화가 아니에요. 아빠와 딸의 여행을 반추하는데 왜 가족이나 성장에 관한 영화가 아니냐면요. 아빠는 젊은 시절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어요. 딸 소피는 아빠의 직접적인 죽음의 이유를 어른이 된 지금도 알지 못해요. 소피는 그때 너무 어렸고, 아빠보다는 스스로에게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저 아빠와의 여행이 즐거웠을 뿐이에요.

수십 년 지나 소피의 입장에서 되돌아보니 나는 왜 몰랐을까. 왜 아빠를 위로하거나 돌려세우지 못했을까?’ 죄책감, 무력감, 탄식이 과거 기억에 작용해 장면을 왜곡시킵니다그래서 저 일들이 실제로 발생했을까?’ 생각하며 영화를 보면 달리 보여요깨달음보단 탄식이 깔린 영화예요.

화면 곳곳에서 노란색이 나오는데요. 리조트 직원들이 노란색 옷을 맞춰 입는다거나. 노란 수중 카메라,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소피 옷이 노란색이고. 여행에서 만난 동경한 언니가 준 자유이용권 팔찌도 노란색. 소피는 아빠와 대화 중 런던 방을 노란색으로 꾸밀래라고 이야기해요. 아빠는 세상에 없기에, 이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죠. 이게 모두 실제로 노란색이었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죠. 노란색은 간절한 상실의 색깔로 이야기됩니다아버지를 향한 상실과 애도의 감정, 꺾이게 된 소피의 소망. 과거의 상황 속으로 투영되어 노란색으로 나타난 소품들.

어느 씬에서는 대비되는 장면이 나옵니다소피는 방에 앉아 책을 보고 아빠는 화장실에 앉아 팔에 두르고 있던 깁스를 잘라요. 왼편의 소피는 노란 조명, 오른편의 아빠는 파란 옷과 조명이 비춰요소피는 어른들이 보는 잡지를 몰래 보고 있었고, 아버지는 그걸 알지 못했죠. 소피는 즐거움에 빠져서 아버지가 피를 흘리고 있는 걸 알지 못했어요. 역시 실제로 아빠가 피를 흘렸는지는 알 수 없어요. 소피가 그 순간을 상상한 장면이므로. 아빠는 욕실에서 정면을 보고 있고, 소피는 아빠를 등지고 화면 반대편을 봅니다. 정신이 팔려서 아빠의 상황을 상상조차 못 한 슬픈 탄식이 담긴 장면이에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침대에 앉아 우는 아빠의 슬픈 뒷모습인데요. 이날은 아빠의 생일이었어요. 아빠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던 소피는 해변의 모르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열심히 축하 노래를 불러줘요. 높은 언덕에서 아빠는 그걸 마주했고, 소피는 기뻐해요. 한 건 했다 싶었겠죠그러나 아직 어린 소피는 아빠의 뒷모습을 보지 못한 거예요. 아버지의 뒷모습은 사실 울고 있었던 거죠. 마찬가지로 아빠가 정말 울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이 이야기는 소피의 상상이니까. 아빠는 이미 세상에 없으니까. 어른이 된 소피가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 안간힘을 쓰는 거예요.

저는 어떤 창작물이든 개인이 겪은 사건이나 일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좋은 창작물은 없어요. 제가 이 영화를 이토록 인상 깊게 받아들인 건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소중한 걸 잃어본 이라면 마음에 닿을만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영화를 볼 건데, 제가 올빼미 영화관을 운영하면서 늘 안내해 드리는 게 있어요!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기 전에는 불을 켜지 않아요. 왜 그러냐면, 제가 대학 다닐 때 즐겨 가던 독립영화 상영관이 광화문에 있었어요. 거기서 아임 낫 데어라는 영화를 봤는데, 그 영화 정말 지루하거든요? 밥 딜런의 전기 영화예요. 밥 딜런이라는 한 인물을 일곱 명의 배우가 연기해요. 정말 지루하게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 올라가며 밥 딜런의 <Knockin' on Heaven's Door>라는 곡이 나오는 거예요. 검은 화면에 흰 자막이 올라가고, 몇 명 없던 상영관에서 그 곡을 듣는 순간 아임 낫 데어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반드시 들어가게 됐어요. 그래서 올빼미 영화관은 늘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에 불을 켜지 않습니다. 물론 핸드폰 하셔도 되고, 움직이셔도 돼요.


 

 

두 번째 영화, 코다예요.

작품명인 코다(Coda)는 농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하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준말이라고 해요극 중에서 루비의 가족들. 아빠, 엄마, 오빠 배역의 배우들은 모두 실제로 농인이에요. 저도 몰랐는데, 이거 준비하면서 알게 됐어요본래 엄마 역의 말리 매트린만 농인으로 캐스팅될 뻔했으나, 매트린이 아빠와 오빠 역에도 장애인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으면 본인도 영화를 하지 않겠다고 맞서면서 농인 배우에게 배역이 돌아갔다고 해요.

농인 배우들이 대거 등장했고 감독과의 소통을 위해 수어 감독도 따로 있었는데, 수어 감독이 세트장을 보고 '농인들은 가구를 절대 이런 식으로 배치하지 않는다'고 알려주기도 했대요. 프로덕션 디자이너는 거실에서 출입구를 등지도록 소파를 배치했었는데, 수어 감독은 거실 구조를 보다 원형에 가깝게 만들어야 모두가 서로의 수어를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한 거지요. 이 부분 역시 영화를 볼 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는데, 영화의 뒷이야기를 찾아보다가 알게 됐어요.

극 중 루비의 부모님은 아주 성적인 부분에서 개방적인데, 이것 또한 미디어에서 접하는 농인의 인식을 꽤 무너뜨리지 않았나 싶습니다제가 얼마나 편협하고 무지하냐면, 이것도 몇 해 전 알게 됐는데. 수어도 나라별로 다르다고 하죠. 당연한 건데 내가 쓰는 언어가 아니다 보니 생각을 안 했던 거예요. 비장애인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루비의 아빠 역할을 한 트로이 코처는 이 작품으로 2022년 오스카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어요. 그리고 이때 시상을 윤여정 배우가 했거든요. 트로피를 건네줬는데, 보통은 상을 주고 시상자는 옆으로 빠지잖아요? 근데 트로이 코처는 수어로 소감을 말해야 하니까 윤여정 배우가 줬던 트로피를 다시 받아 들고 옆에 착 붙어서 고개 끄덕이며 감동하는 모습이 재밌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분류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를 음악 영화로 분류하기도 하더라고요. 가족이 모두 농인인 상태에서 루비는 노래를 잘하고 좋아해요. 극 중에서 노래하는 모습이 잦게 나와요. 동아리에서 만난 음악 선생님은 자신의 목소리에 확신이 없는 루비에게 할 말이 없는 예쁜 목소리는 차고 넘쳐. 넌 할 말이 있니?”라고 묻죠. 음악 선생님은 학생들을 좋은 목소리와 나쁜 목소리로 구분하지 않고 할 말이 있는 목소리와 할 말이 없어서 예쁘기만 한 목소리로 구분해요. 할 말이 있다면 그 목소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한 목소리가 되는 거예요. <코다>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법에 대한 영화예요. 목소리는 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는 거죠.


 

 

세 번째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입니다.

사실 영화에 관한 별점이나 평가 등은 그렇게 좋지 않아요. 이거야말로 뻔한 이야기라서. 근데,뻔한 게 나쁜 건가? 뻔할 수도 있지. 뻔해서 마음이 좋으면 좋은 거 아닌가?’ 같은 생각을 왕왕합니다이 영화를 볼 때 그래요. 뻔하지만 마음이 편하고, 동물과 아이가 귀여워서 기분이 좋아요. 그럼 좋은 거죠. .

박평식 평론가는 별점 두 개를 주며 식물원에 온 느낌이라고 한 줄 평 남겼더라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을 이야기 한 걸까요? 소재가 전할 수 있는 것을 담아내지 못했다? 산으로 갔다저는 식물원 가면 눈도 즐겁고 코도 즐겁던데. 식물들 이름이 쓰여 있잖아요. 되게 신기하고 오타쿠 같은 것도 많아서 사진 막 찍거든요. 재밌어서.

좋아하는 씬이 있어요. 저는 대체로 어떤 순간에 매료돼서 작품이나 감독, 배우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에는 '20초의 용기'라고 불리는 씬이 있어요. 아빠가 첫사랑을 겪는 아들에게 “20초간 미쳤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봐. 기적이 펼쳐질 거야.”라고 말해요. 아빠가 엄마를 만났을 때 그랬거든요. 그리고 그것이 온전히 전해지는 엔딩의 뭉클함도 있어요. 내내 마음이 좋은 영화라 아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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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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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about 1 month 전

    원래 오늘 올빼미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만 보고 귀가하려 했는데 작담이 통신 글을 보니 3편 다 보고 싶어졌어요...🥺

    ㄴ 답글 (1)
  • 유옥옹

    0
    about 1 month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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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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