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작담이 통신] 메밀꽃 필 무렵

아무도 모르게 흐응- 코로 숨 내뱉으며

2024.08.09 | 조회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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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담이 통신

목수의 아무런 이야기

무더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습니다. 무탈하신가요? 지하의 공방은 이제 에어컨 켜는 날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여름은 여름이구나 싶어요.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가도 여름이 지나면 올해도 곧 끝날 것 같아 무섭습니다. 이룬 것 하나 없이 한 해를 또 보내고 싶지는 않아서요.

지난해 에디터로 참여했던 책 <가좌의 숲>의 속편이 제작됩니다. 발행한 도시재생센터에서 지난 작업물이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에요. 이번 책 주제는 <가좌의 집>입니다. 지난 책에서 가좌동을 둘러싸고 있는 식물 들여다봤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깊숙이 파고들 차례예요. 집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근데, 가장 사적인 공간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은 역시 여간 어려운 게 아니네요. 요즘 호작담 인스타그램 스토리 보시면 인터뷰이 찾느라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을 종종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든 되겠죠! 제 할 일 최선 다하겠어요. 화이팅....!

지난해에 만들었던 <가좌의 숲>은 이렇게 생겼어요. 만듦새가 아주 좋은데 비매품이라 아쉬워요.
지난해에 만들었던 <가좌의 숲>은 이렇게 생겼어요. 만듦새가 아주 좋은데 비매품이라 아쉬워요.

 

며칠 전, 책 회의하러 간 도시재생센터에서 점심으로 메밀막국수를 사주셨어요. 끼니 때면 늘 북적이는 곳인데, 늘 가봐야지 생각만 했거든요. 아, 책 작업하는 가좌동은 제가 여섯 살부터 살기 시작해 여전히 살고 있는 동네예요. 회의하러 간 도시재생센터는 제가 다녔던 유치원이 있던 자리고요. 이렇게 오래 산 사람과 여러분은 같은 하늘 아래 있답니다. 신기하죠? 호호.

메밀막국수 맛있더라고요. 배고프고 더워서 허겁지겁 먹다가 나중에는 아주 천천히 씹으니 향이 아주 짙었어요. 급하게 넘기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음식은 맛으로 표현하지만 향으로도 표현할 수 있잖아요.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사적인 자리에서 가끔 얘기하는 건데. 몇 년 전, '맛있는 녀석들'이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고기에 와사비를 곁들이며 다들 매워서 눈물 찔끔 흘리거나 쩔쩔매는데, 김준현이 고소한 향을 느껴보라며 소개한 방법이에요.

센터장님께서 설탕 빼달라고 주문해주셨는데 슴슴 고소하니 좋더라고요.
센터장님께서 설탕 빼달라고 주문해주셨는데 슴슴 고소하니 좋더라고요.

자, 향 좋은 음식을 천천히 씹으세요. 그거 아시나요? 대부분의 향은 타격이 가해졌을 때 더욱 풍부해져요. 나무도 그래요. 통나무인 상태보다 나무 자르는 작업을 하루 종일 한 뒤에 공방에는 나무 향이 진동합니다. 아무튼. 향 좋은 음식 천천히 씹은 뒤에 삼키세요. 그리고 입 다문 상태로 코로 흥- 하며 숨을 내뱉으세요. 그러면 음식의 맛과 별개인 상태로 향이 코와 목으로 이어지며 아주아주 진하게 느껴집니다. 함께 메밀막국수 먹었던 작가님들과 센터 분들 아무도 모르셨겠지만, 저는 혼자서 이 과정을 반복하며 메밀을 백배 즐기고 있었습니다. 호호. '향이 정말 좋다. 향이 좋았다는 말은 작담이 통신에 꼭 써야지. 제목은 메밀꽃 필 무렵이다' 생각했어요.

<가좌의 집> 콘텐츠 때문에 지난밤 새벽에 귀가해서 서랍을 잔뜩 뒤졌어요. 오래된 사진을 모두 꺼내서 어린 시절 동네에서 찍은 사진들을 모두 살펴봤습니다. 그거 아세요? 보통은 동네에서 사진을 잘 안 찍어요. 특히 옛날에는 더더욱. 저만해도 집 근처에서 찍은 사진은 졸업식날 학교와 근처 공원에서 찍은 게 전부고 대부분은 어디 유원지나 가야 기념사진을 찍었더라고요. 필름 아껴 쓰느라 그랬겠죠? 옛날 사진 보며 새벽에 눈가가 촉촉해진 거 있죠. 이 땐 아무 생각 없이 귀여웠네. 누나랑 어깨동무도 했네 소름... 엄마 참 젊었네. 아빠 보고 싶네. 이러면서요. 원래 이 말을 쓰려던 게 아니었는데, 방금도 스케줄러에 끼워놓은 사진들 슥 보다가 눈물이 핑 돌아가지고.

나 너무 귀여웠다
나 너무 귀여웠다

다가오는 주말에는 많이 자야겠어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하품을 쏟아내느라 곤란합니다. 이러고 주말 보내면 또 눈 말똥말똥 해져서 핸드폰이나 보겠죠? 그러고 평일에 또 '주말에는 많이 자야겠어요' 이러면 소름...

가장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였는데요.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감탄하느라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요 며칠 '퍼펙트 데이즈'가 그렇게 좋다는 풍문으로 듣고 있습니다. 상영관이 많지 않아 일정을 연신 확인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라 평일 낮 관람을 노릴 수 있는 건 참 좋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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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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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about 2 months 전

    타격이 가해졌을 때 향이 더 잘 느껴진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

    ㄴ 답글 (1)
  • 0
    about 2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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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 은비

    0
    about 2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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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 유정

    0
    about 2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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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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