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종달리 마을 탐방기 上

5년 동안 세 번 바뀐 종달리의 변화

2022.02.09 | 조회 1.5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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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 잔

매일 자정, 제주 한 달 살이를 같이 하게 됩니다.

 

 

이제까지 제주 여행을 하면서 종달리에 세 번 들렸다. 작고 평화로운, 한적한 마을이던 종달리는 이제 다양한 카페가 생기며 관광객을 모는 어엿한 관광지로서 성장(?)하고 있었다. 올 때마다 달라지는 종달리를 보며,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차근차근 되짚어보고자 한다.

5년 전의 종달리와 소심한 책방

수능이 끝난 직후 고삐가 풀린 망아지마냥 제주도 여행을 다녔다. 그때도 독립서점을 어찌나 들리고 싶었던지, 일부러 '소심한 책방'이라는 서점에 가기 위해서 종달리에 들렸다. 독립서적이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때였고, 지금처럼 그런 책방이 많지 않았다. 201번을 타고 종달초등학교에서 내린 나는 골목을 따라 쭉 아래로 내려왔다. 낮은 돌담과 보이지 않는 관광객, 양옆에 넓게 펼쳐진 초록색 밭들. 그때의 소심한 책방은 작은 서점이었다.

이젠 볼 수 없는 옛날의 소심한 책방
이젠 볼 수 없는 옛날의 소심한 책방

이때도 책을 하나 샀다. 아직까지도 다 읽지 못했다. 이래서 서점에 가면 조심해야 한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혹해서 사는 때가 어찌나 많던지. 독립출판을 하고 싶다는 꿈이 이때부터 무럭무럭 자라왔는지도 모르겠다. 비록 사진 않았지만 기억나는 책이 하나 있다. 할머니들이 뒤늦게 한글을 배우며, 그 한글로 쓴 시들을 모아둔 시집이 있었다. 지금 다시 보게 된다면 사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문학을 하는 사람의 글도 좋지만, 온전히 문장과 생각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의 그 꿈을 볼 때면 더 뭉클해지는 것 같다. 낭만 어부처럼.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아직 어릴 때라, 제주도 여행은 또 처음이라 효율적으로 계획을 쓰지 못했다. 발이 닿는대로 무작정 걸었던 거 같다. 카페도 가지 않고 오로지 책방만 보고 다시 공항으로 떠났다. 종달초등학교 정류장에서 탔는데, 이런 포스터를 보았다.

-어! 꽃 주는 거야? -아니! 안 주고 내꺼야
-어! 꽃 주는 거야? -아니! 안 주고 내꺼야

나에게 종달리는, 종달초등학교의 포스터. 그리고 소심한 책방.

 

수상한 소금밭과 심야식당

때는 2020년 여름, 고등학교 친구인 S씨와 종달리 게스트하우스인 '수상한 소금밭'에서 머문 적이 있었다. S씨는 종달리에서 혼자 며칠을 머문 적이 있다고 하는데, 좋은 기억이 많다며 나와 여행을 할 때도 추천해준 곳이었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종달리를 아련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종달리에는 종달항이 있어서 우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종달리에서 삼십분 정도를 걸었다. 여름에 가서 무척이나 더웠는데도 굴하지 않던 우리는, 노래를 크게 틀고 씩씩하게 나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괜히 모험심을 발휘하지만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멀쩡한 길을 놔두고 웬 눈두렁 길로 가다가 S씨의 흰 신발에 진흙이 묻고 말았다. 숙소로 돌아와 숙소에서 쭈그려 앉아 진흙을 같이 물티슈로 닦던 그날의 일이란... 지금 이렇게 쓰여지고 있는 걸 보면 소중한 추억 중 하나가 된 거 같다. S씨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사실 조식 먹으려고 숙소 갔을 정도 (출처 : S씨의 옛날 앨범)
사실 조식 먹으려고 숙소 갔을 정도 (출처 : S씨의 옛날 앨범)

이때 종달리에선 수상한 소금밭에서 먹었던 조식과 해리포터 굿즈인 버터맥주가 기억이 난다. 조식이 맛있어서 겨우 일찍 일어날 수 있었다. 마치 먹이에 홀려서 뛰는 망아지 같달까... 버터맥주는 큰 기대를 하고 먹었는데, 그냥 단 꿀 음료나 다름 없었다. 이래서 미성년자도 먹을 수 있었나보다. 술은 인생의 쓴맛이어야 맛있지. 그러면서 나는 오늘 호가든로제를 마신다. 아직 난 인생이 단가보다.

달고기 튀김을 먹을 땐 가시를 조심하세요 (출처: S씨)
달고기 튀김을 먹을 땐 가시를 조심하세요 (출처: S씨)

종달리에 가면 꼭 추천하는 거는 '종달리엔심야식당'이다. 엄마식당이라고, 점심에는 밥집으로 운영을 하지만, 밤에는 술집으로 운영을 한다. 대표 메뉴로 달고기튀김이 있었다. 당시 통장 털털이인 우리에겐 꽤 사악한 가격이었지만, 여행지에선 원래 아끼지 않는 법이니까. 지금은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는 거 같다. 그밖에도 이자카야와 같은 술집에 가기도 했다. 술에 거나하게 취했던 우리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하듯이 잔 거 같다. 두 번째 종달리에는 술찌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이젠 관광지가 되어버린 종달리

오늘, 드디어 종달리에 갔다. 한달살기에 놀러온 H씨와 성산일출봉을 정복하고서 지친 채로 종달리까지 201번 버스를 타고 넘어갔다. (201번이 왜이리 많이 나오냐면, 동쪽은 모두 가는 버스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동쪽에 여행을 간다면, 무조건 201번을 타게 될 것이다.) 겨우 일년 반이 지났는데도 내 기억 속 종달리와 확 달라져버렸다.

고소동 천사벽화마을 마냥 종달리에도 벽화가 생겼다. 수국, 해바라기, 장미 등 꽃을 컨셉으로 잡아서 종달리의 낭만을 더했다. 천사 날개 벽화처럼 이미 트렌드가 지나버린 단순한 포토존 벽화가 아니었다는 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달리 마을 특유의 한적함이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어차피 나의 마을은 아니지만, 나름 마음의 고향(세 번밖에 안 왔지만)같은 곳인데 말이다.

저 먼 곳의 그림 같은 바다는 정말 그림입니다 (출처 : H씨)
저 먼 곳의 그림 같은 바다는 정말 그림입니다 (출처 : H씨)

골목에 들어섰는데 카페가 많이 보였다. 한 블럭을 지나갈 때마다 카페, 식당, 기념품 가게가 곳곳에 들어서 있었다. 내가 그간 종달리 마을을 잘 몰랐던건지. 새롭다기보단 낯설어서 슬프던 와중, 나를 맞이한 곳이 있었다. 소심한 책방이었다.

바보처럼 사진을 안찍어서 홈페이지에서 찾아왔다
바보처럼 사진을 안찍어서 홈페이지에서 찾아왔다

5년 전 왔던 그 책방은, 2년 전 묵었던 게스트하우스와 합쳐졌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게하와 서점 사장님이 같은 분이었긴 했지만.) 소심한 책방이 리뉴얼이 되면서 수상한 소금밭 게스트 하우스와 합쳐졌다고 한다. 서점 안쪽 방에 단 두 개의 객실만이 있다고 했다. 엄청난 비주얼을 자랑하던 조식은 사라졌지만, 깔끔하고 넓은 서점이 그곳을 자리잡았다. 독립서점의 매력은 아무래도 주인장의 추천 목록이지 않을까. 베스트셀러보다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제목의 책을 추천하는 PICK 코너를 가장 좋아한다. 옆에는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적혀있다. 하마터면 책을 살 뻔했다.

재미있는 장소도 생겼다. <책약방>이라고, 무인으로 이루어진 서점이다. 책상에는 초등학생들의 글짓기 노트가 잔뜩 널려있었다. 근처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곳에 모여 글이라도 쓰는 걸까. 그래서인지 아동 도서가 유독 많았다. 누군가의 양심으로 운영하는 곳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했다. 사람을 믿는 사람이 아직 있구나. 특히 돈을 사용하는 데에 있어서 남의 양심을 믿을 수가 있구나. 제주도에서는 그런 게 신기했다.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돌담에, 바로 보이는 현관문. 마당마다 열린 감귤나무를 볼 때마다 저 감귤은 맛있을까, 고민하던 나 같은 사람들이 정말로 서리를 하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제주는 서로의 담장 너머에 있는 감귤을 나눠먹는 곳일까.

신기한 구성의 모뉴에트 라떼 (이것도 H씨)
신기한 구성의 모뉴에트 라떼 (이것도 H씨)

추천 받은 카페인 모뉴에트로 갔다. 까놀레 맛집으로 유명했다. 카페인데도 웨이팅이 있는 장소라 당황했다. 늦은 시간대여서일까, 바닐라맛인 '한라산 까놀레'밖에 남지 않은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주인장의 아버님이 직접 모은 오디오와 LP판이 모여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감성 카페라면 누구나 한다던 빔프로젝트가 틀어져 있었다. 이터널 션샤인이었다가 뷰티인사이드로 바뀌었다. 

모뉴에트의 시그니처 메뉴인 '모뉴에트 라떼'는 특이한 구성의 커피였다. 까놀레 모양의 에스프레소 큐브 담긴 잔에 아몬드 브리즈를 붓는다. 그리고 직접 구운 그레놀라를 넣어 섞어서 먹는다. 그레놀라는 그냥 먹어도 맛있더라. 얼음 녹는 걸 기다리다가 지겨워져서 그냥 꿀꺽 마셔버리면 아몬드 우유맛만 난다. 최대한 여유를 즐기면서 마시라는 뜻인 거 같다. 성질 급한 사람에게는 맞지 않다. (=나)

7500원이라는 밥 한끼 값의 커피였지만 시그니처의 매력은 확실히 있는 듯하다. 모뉴에트에서 여유로이 시간을 즐기며 책을 읽으면 좋을 법도 한데, 웨이팅 있는 카페라 혼자 있는 게 난 눈치 보일 것 같다. 좀 뻔뻔해져야 할텐데. 다음에 가게 된다면 까놀레 다른 맛을 포장해버릴 테다.

 


오늘 산 동쪽마을 패브릭 포스터
오늘 산 동쪽마을 패브릭 포스터

상편인만큼, 언젠가 하편이 올라오기를. 육지로 돌아가기까지 대략 2주가 남았다. 그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고 올라갈 수 있었음 한다. 그 과정에선 종달리가 한 번 더 내게로 찾아오리라.

 

P.S 누군가 렌트카를 타고 종달리를 간다면, 순이네 소금바치를 꼭 가주기를. 가서 돌문어볶음을 먹고 내게 연락하여 자랑해주기를 바란다.

너무 멀어 결국 가지 못한 뚜벅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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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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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하물의 프로필 이미지

    김하물

    0
    almost 4 years 전

    이 작가님 덕분에 제주도 책방들 대리 탐방 하네요 ㅎㅎ 제주도는 왜 이렇게 예쁜 카페들이 많을까!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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