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여자로 착각한 적이 있다. 그 일이 떠오른 건 '40대를 위한 조언'이라는 유튜브 영상 때문이었다. 영상에서 말하길, 40대는 경험도 쌓이고 주관이 뚜렷해져서 자기가 다 맞다고 생각하는데,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단다. 내 편이 아니라 세상 편을 들라는 댓글이 웃겼다. 이삼십 대는 뭣도 몰라서 허둥댔다면 사십 대인 지금은 너무 알아서 문제였다.
얼마 전 댄스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낮 시간대라 수강생은 나 포함 네 명뿐이었다. 강사가 갑자기 동작이 맘에 안 들었는지 음악을 끄고 왼쪽에 있던 두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남자놈들이 어깨가 왜 이렇게 굽었어. 어깨 좀 펴." 나는 속으로 말했다. 헉, 쟤 남자 아닌데.
나는 오른쪽 두 여자 중 하나였다. 강사가 왼쪽 끝에 있는 아이를 남자로 착각한 듯 했다. 안경을 쓰고 짧은 곱슬 커트 머리에 힙합바지를 입고 있어서 남자로 봤나 보다. 어떡하지? 속으로 생각하는 데 강사가 자꾸 그 친구한테 "남자가, 남자는, 남자면" 하는 거다. 민망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내가 정정하기는 그렇고, 그 친구도 "저 여자예요" 라고 안 하길래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예전에 수업 끝나고 학원 건물을 나서려는데, 남자로 오해 받은 그 친구가 갑자기 내게 단백질바를 내민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나보다 스무 살은 어린 것 같은 학생에게 뭔가를 받는 게 너무 신선했다. "어머, 저 주시는 거예요?"하고 기쁘게 단백질바를 받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그 친구에게 내가 즐겨먹는 소포장 된 떡을 몇 개 가져다 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수업 시간마다 인사를 하게 됐고, 동작이 헷갈리면 나는 그 친구에게 물어보곤 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그 친구에게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아까 선생님이 남자라고 해서... 여자분이시죠?"
물어본 게 아니었다. 다 알고 있다고 말한 거였다. 그런데 그가 말했다.
"저, 남자예요."
믿을 수가 없었다. 두 달 가까이 그와 함께 수업을 들으며 그를 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내 생각이 틀린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친구가 기분 나쁘지 않게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 너무 선이 고우셔서... 목소리가 미성이셔서..."
"아, 이제 변성기 오는 거 같아요."
"아, 네..."
나는 그가 제발 기분이 안 나빴기를 바라면서 평소보다 더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그와 헤어졌다. 미안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왜 그를 여자라고 생각했을까. 내 눈엔 여자로 보였다. 얼굴도, 몸도, 차림새도, 보이시한 '여자'였다. 그의 검정 캔버스 메신저백에는 귀여운 인형 키링이 두세 개 달려 있었다. 꼼꼼하게 물도 챙겨 다녔고, 가방 위에 회색 체크 목도리를 가지런히 접어 올려뒀었다. 그리고 단백질바 이후에도 그는 ABC 초콜릿을 주기도 했는데 그런 세심한 행동은 분명 여자의 행동이었다. 나는 그와 동성의 교감을 나눴다. 여지껏 어린 남자애에게는 뭘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백히 틀려 보긴 처음이었다. 그 날 이후 나와 그 친구는 나오는 시간이 엇갈리기도 했고, 이제는 반도 바뀌어서 만나지 못한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진짜 남자 맞겠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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