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 맞은 건 아니었지만 대여섯 명의 남자아이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심하게 놀렸다. 수업 시간에 지우개 조각을 던지기도 했다. 그들 중 두 명은 나보다 한 살 많은 유급자였다.
수학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칠판에 수식을 적고 있었다. 뒤에서 종이비행기가 날아왔다. 종이비행기가 내 어깨에 맞았을 때 킬킬 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하지 마, 이 씹새끼야."
내가 처음으로 반격한 순간이었다. 수업 시간이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선생이 있으니까.
선생은 나를 혼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선생도 강한 남자애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나 하나 혼내고 끝내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그 말을 뱉은 뒤 나는 쉬는 시간이 두려웠다.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렸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로, 그 애들은 여전히 나를 놀렸지만 강도는 약해졌다. 종이비행기나 지우개가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크게 나아졌다고도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계속 당하다가 한 번 용기 내어 반격했고, 그 행동이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의 편에 섰다는 기억을 남겼다. 그러니까,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 편에 섰다.
나는 내가 나를 외면했던 순간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공격을 받으면 반드시 반격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지 않으면 자존감이 손상되고 나 자신을 미워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공격을 받아도 자존감이 손상되지 않는 상태가 더 강한 상태라는 걸 안다.
어느 날 우연히 예전에 나를 괴롭혔던 무리의 일원인 아이의 인스타 계정을 발견했다. 지금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이름이 워낙 특이해서 딱 보고 기억이 났다. 그 애는 헬스 트레이너가 되어 있었다. 자기 헬스장을 운영하는 듯했고, 애아빠였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이었다면 악플을 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미소가 지어지진 않았지만 복수하고 싶다는 열정은 없었다. 그 애가 주도적으로 나를 괴롭혔다기보다는 주도적인 애 옆에서 깔깔대며 웃는 포지션이기도 했다.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있을 때는 나를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던 애였다.
오히려 그 애는 나보다 어떤 남자애를 심하게 괴롭혔다. 그 애가 책상에 엎드린 남자애를 남자애 교복 자켓으로 덮어놓고 발로 차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 애 말고 주도적으로 나를 괴롭혔던 유급자 애 이름이 정확히 생각이 안 난다. 앞 두 글자는 맞는 것 같은데 세 번째 글자는 모르겠다. 얼굴도 기억이 잘 안 나서 아마 길에서 우연히 만나더라도 못 알아볼 것이다. 왜 그 유급자 애보다 곁다리로 나를 괴롭힌 애와 수학선생 얼굴이 더 선명한 걸까. 이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때의 가해자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피해자들에게 더 잔인한 건 가해자는 자신이 괴롭혔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피해자도 잊는다. 물론 모든 피해자가 잊는 건 아닐 테지만 누구나 영원히 같은 강도로 기억하며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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