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쪽팔렸다. 그리고 차를 쪽팔려하는 게 쪽팔렸다. 모임에 갔는데 내 차만 '안 비싼' 차였다. 기계식 주차장 앞에서 지인들과 함께 차를 기다리는데 내 차가 제일 늦게 나오길 바랐다. 친구가 비싼 동네에 있는 레스토랑을 예약해놨다. 차를 끌고 가기가 꺼려졌다. 발렛 파킹 해주는 사람이 나를 무시할 것 같았다.
없어 보일까 봐. 다른 사람이 나를 초라하게 볼까 봐 신경 쓰였다. 하지만 차가 한두 푼도 아니고 맘에 안 든다고 바로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차는 아무 문제 없었다. 문제는 내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이 비이성적인 생각이 자꾸만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이를 차로 등교를 시키며 학교 앞에서 정차하는 다른 집 차들을 봤기 때문이다. 한 번은 아이 친구가 생일 파티에 초대했는데, 생일 파티가 열리는 키즈카페에 차 끌고 가기가 망설여졌다. 아이 친구 집에도 초대받은 적이 있다. 여러 아이들이 잘 놀고 나서 다 같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 나는 생각했다. 차 좀 멀리 세울걸.
어느 날 등굣길이었다. 학교 앞에 정차한 흰색 고급차에서 어떤 아이가 내렸다. 내 아이가 그 아이를 보며 말했다.
"쟤가 김태형(가명)이야."
교실 뒷문을 쾅 하고 닫아서 내 아이 손을 다치게 했다는 아이였다. 태권도장에서도 내 아이를 밀치고 때렸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그 아이를 처음 본 것이다. 덩치가 내 아이의 두 배는 돼 보였다.
그날 저녁,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차 바꾸자."
'나도 너만큼은 살아'라고 말하기 위해.
나는 내 아이가 차 때문에 무시당할까 봐 걱정됐다. 내가 뒤에서 제대로 받쳐주지 못하는 부모가 될까 봐 두려웠다. 차라는 건 일종의 방어 장비 같았다. 내 상상은...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려서 학교에 출석하는 상황까지 가 있었다. 그때 학교 운동장에는 등굣길에서 봤던 그 흰색 고급차가 세워져 있었고, 나는 그 차 옆에 내 차를 주차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를 바꿨다. 차를 바꾼 지 얼마 안 된 어느 저녁, 태권도장으로 아이를 픽업하러 갔다. 태권도장 앞에 내 아이와 어떤 형이 같이 서있었다. 창문을 연 상태라 둘의 대화가 들렸다. 형이 말했다.
"너네 차야?"
"응."
"좋은 차네."
내가 이래서 차를 바꿨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어딘가 씁쓸했다. 결국 아이들도 커갈수록 어른의 눈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차 브랜드도 모르고 그냥 '검은 차', '흰 차'라고만 말하는 아이가 뒷좌석에 올라타며 형한테 칭찬을 받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이 차가 좋은 차야?"
"그치."
"이 차 비싸? 지난번에 은행 가서 넣은 돈 다 썼어?"
나는 웃음이 터졌다.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은행에 가서 집에 있던 현금을 입금했던 일을 말하는 거였다. 그 정도 돈으로 차를 살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아이는 그걸 제일 큰돈이라고 생각했다.
차를 바꾼 뒤로 차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대단히 좋은 차는 아니어도 튀지 않아서 마음이 편해졌다. 그게 솔직한 결론이다. 나는 확실히 정신 승리형 인간은 아니다. 그저 내 삶을 편하게 만드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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