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우연히 베네수엘라 출신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에 관한 기사를 봤다. 마리뇨가 내한 공연을 한다는 기사였다. ‘남성 소프라노’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다. 기사 속 사진에서 그는 드레스처럼 우아한 크림색 의상을 입고 크림색 하이힐을 신은 채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마리뇨는 사춘기 시절 변성기를 겪지 않았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소년처럼 살짝 갈라진 가늘고 얇은 고음으로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그의 목소리를 두고 ‘진정 희귀한 목소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남성 소프라노로 성공한 마리뇨는 성악가가 되기 위한 천혜의 조건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특이한 목소리 때문에 유년기에 주변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무척 끔찍하고 외로운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성대 수술을 고심하며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의사는 거꾸로 그에게 성악을 해보라고 권했다.
어떤 특성은 한 세계에서는 결함이지만, 다른 세계에서는 자신을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키(Key)가 될 수 있다. 마리뇨의 목소리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목소리가 놓인 세계가 달라졌고, 새로운 세계에서 그것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라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재능이 되었다.
결함으로 보였지만 알고 보니 ‘빼어남이 될 수 있는 다름’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결함과 빼어남은 언제나 서로 반대편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같은 특성도 어디에 놓이고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얻는다.
뒤집어질 수 있느냐.
뒤바뀔 수 있느냐.
이것은 정말 없애야 할 결함인가, 아니면 아직 자신에게 맞는 세계와 쓰임을 만나지 못한 다름인가.
물론 모든 결함처럼 느껴지는 특성이 빼어남으로 바뀌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다름에 맞는 세계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인정받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할 수도 있다. 끝내 알맞은 쓰임을 만나지 못하는 다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을 가로막는다고 여겨온 특성이 있다면, 그것을 무조건 제거하려 하기 전에 한 번쯤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성대 수술을 고심해 병원을 찾아간 마리뇨에게 의사가 성악을 권유했듯, 내가 결함이라고 믿어온 특성이 사실은 아직 알맞은 쓰임과 이름을 만나지 못한 다름은 아닌지.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씨앗이 이미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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