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마리 로랑생이 코코 샤넬을 그린 초상화다. 1923년, 당시 로랑생의 여성적 화풍은 파리 사교계를 매혹시켰고, 샤넬도 로랑생에게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자신의 초상화를 본 샤넬은 "나와 닮지 않았다"며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림은 평생 로랑생이 보관했으며, 로랑생의 사후에는 미술관에 기증되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아상이라는 게 있다. 샤넬은 그림 속 여인의 느낌, 풍기는 분위기, 색과 형태 모두에 이질감을 느꼈다. 이건 내가 아닌데? 정확히는, 내가 나라고 인정한, 나라고 믿고 있는 내가 아닌데?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 로랑생은 자기 눈에 비친 샤넬을 그렸다. 실제의 샤넬과 상관없는 제 눈의 샤넬을. 그녀가 생각하는 샤넬, 그녀가 그리고 싶은 샤넬.
나는 이 일화가 '투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투사란 자기 내면에 있는 것을 타인에게 투영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말한다. 다양한 종류의 투사가 있겠지만, 이 일화가 상징하는 투사는, 실제 대상을 매개로 한, 그러나 그 실제 대상과는 상관이 없는 나만의 예술이다. 그 예술은 대상과의 만남 이후에도 오래도록 남는다. 그것은 대상이 아니라, 그린 사람에게 중요하고 의미있는, 그린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의 환상, 취향, 지향, 미감 등 그 안에 깊숙이 자리한 내면의 물질들이 투영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환상을 갖게 될 때는, 상대의 어떤 특성이 환상을 촉발했을지라도 그 환상이 본질적으로는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상대방이 매혹적이라고 믿지만 사실은 그 사람 위에 덧씌운 나의 환상에 매료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환상은 상대가 사라져도 남는다.
상대가 나를 바라보고 웃고 있다. 내 환상이 감싸고 있는 실제의 인간이. 환상이 현실화된 듯한 이 순간은 드물고 강렬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순간을 붙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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