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사랑하던 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바다를 그리워했고 사랑했다. 그러나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내륙에 살았던 터라, 바다를 보러간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이따금 바다를 너무 보고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물건을 팔러가는 아버지를 따라나서 항구까지 가곤 했다. 그러면, 바다가 보이기 전부터 바다가 보일 것을 예감하고, 바다의 향기를 맡고, 바다가 나타날 것을 기다렸다. 이윽고 시야에 다 담기지도 않을 만큼의 기다란 수평선이 나타나면, 그는 마음이 떨리면서 황홀감으로 가득 차는 걸 느꼈다.
시인은 성인이 되자, 비로소 바다에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부모는 그에게 가문의 땅을 물려받고, 밭을 일구어, 이따금 농작물들을 파는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을 원했다. 그러나 시인은 바다에 대한 열망을 억누를 수도, 감출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고향을 떠나 바다로 갔다. 그리고 몇년간 항구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고, 오래 전부터 봐두었던 해안절벽 위의 낡은 오두막 하나를 구입했다. 이제 자신의 집이 된 오두막안에 들어설 때 코끝을 스치는 먼지 냄새, 창문을 열자 들이친 바닷바람, 빛나는 수평선과 가득한 파도소리에 그는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매일 아침 일어나 맞이하는 바다, 하루종일 빛나는 해수면, 저녁이 되면 붉게 물드는 하늘, 밤이면 어우러지는 별빛, 바다 위로 고요히 내리는 비, 이따금 창문을 흔들며 몰아치는 폭풍우와 파도소리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는 그 마음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다가, 가만히 노래를 불렀다. 바다로 터져버릴 것 같은 마음이 노래를 부르자, 진정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매일 노래를 지어 불렀다. 노래를 기록하는 방법은 몰랐지만, 그래도 매일 새로운 음률에 새로운 가사를 붙여 불렀다.
그는 종종 항구에 내려가 생계를 위해 일을 하기도 했다. 원래부터 바닷가에 살던 사람들은 굳이 항구까지 와서 궂은 일을 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했다. 더군다나 낡은 집을 사서 혼자 사는 그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는 그저 바다가 너무 좋아서라고 대답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말하곤 했다. "무엇이든, 처음에야 근사해보이지, 시간이 지나면 다 일상이 되고 말아. 바다가 좋다며 찾아온 사람들도 몇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나지. 자네도 지금은 바다가 좋을지 몰라도, 곧 바다가 권태로워질거야."
항구 사람들의 말대로, 시인에게도 권태로움이나 외로움이랄 게 찾아왔다. 때로는 창밖에 보이는 바다가 숨막힐 정도로 두렵게 느껴졌다. 어느 날은 통째로 바다를 들어내어 그 밑바닥을 보고 싶기도 했다. 한번은 폭풍우 치는 해안절벽 끝에 서서 자신이 바다에 처박히길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도, 그는 노래했다. 바다에 대한 두려움, 바다에 처박히고 싶은 외로움, 바다를 들어내고 싶은 답답함을 노래했다. 그의 피부와 머리결은 처음 바다를 찾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어졌다. 바다와 태양이 그를 소모시켰고, 그는 점점 거무죽죽하고 메마른 몰골이 되어갔다.
어느 날 찾아온 부모는 그에게 바다병이 걸렸다면서,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죽고 말 거라며, 그를 강제로 데려가려 했다. 그러나 시인은 기어코 거절하면서 바다에 머무르길 택했다. 항구 사람들도 시인에게 슬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지만, 시인은 기어코 바다에 남겠다고 했다. 그의 기침은 늘어났고, 잠못이루는 불면의 밤도 잦아졌다. 그러나 시인은 계속하여 바다 곁에서, 바다를 노래했다.
시인이 바다로 떠난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시인의 부모는 오래 전 삶을 마감했다. 시인이 바다로 찾아왔을 때 봤던 아이들은 어느덧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항구 사람들은 예전과 다르지 않게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해안절벽에도 여전히 낡은 오두막 한 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영원히 그곳에 있는 바다처럼, 바닷마을의 풍경도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닷가에서, 고되게 일하면서, 때로는 바다를 원망하며, 때로는 바다를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다만, 그들의 삶에는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이제 바다가 원망스러울 때면, 구슬픈 곡조의 노래를 불렀고, 그러면 어느덧 바다는 잔잔한 모습을 되찾았다. 바다를 향해 뛰어들 때면, 흥에 겨운 가사를 읊었고, 그러면 바다의 반짝임도 한결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지루한 나날들 속에 마음의 답답함이 늘어갈 때는, 한결같은 바다의 권태로움을 노래하며 하루를 견뎌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노래불렀는지, 누가 그런 노래들을 지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고, 그것을 궁금해하는 이들도 없었다. 그저 어느 날, 그들의 삶에 스며든 노래가 있을 뿐이었다.
해안절벽의 오두막은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가끔 아이들만이 그 주변을 모험삼아 다녀오기도 했으나,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오래 전 그곳에 시인이 살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무슨 시를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분명히 시인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인은 무엇인지 잘 기억나는 않지만, 그들에게 무언가를 주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빵도, 포도주도, 집이나 배도 아닌 그 무언가를 주었다고 했다. 그것은 어쩌면 삶이었을지도 몰라, 하고 누군가 지나가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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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모모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얼마전 정여울 선생님께서 이 📚 으로 줌라이브 하셨는데, 아직도 진도는 안나가네요^^; 음악에 폭빠져서 ㅎㅎ
세상의 모든 서재
'모모'의 모모인지, '자기앞의 생'의 모모인지 궁금하군요 ㅎㅎ
지은
자기앞의 생도 모모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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