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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키를 누른 다음, '눈'이라는 단어를 치면 'SNS'가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 전, 우연히 한영키를 누른 채로 '눈'을 쳤기 때문인데, 조금 놀라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주간' 구독메일을 시작한 건 어디까지나 페이스북이라는 SNS를 시작한 덕분이었고, 나아가 요즘은 어딜 가나 SNS가 화제에 오르는 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눈이 내리면 SNS는 온통 눈에 대한 사진, 추억, 영상 등으로 넘쳐난다. 사람들은 눈이 내리는 설렘을 SNS로 공유하고, 그렇게 함께 공감하고, 때로는 눈이 주는 고통인 교통체증의 시간에도 SNS를 보는 데 쓰기도 한다. '눈'과 'SNS'는 무척 관련 없고 멀리 떨어진 영역의 단어 같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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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인 noon을 한글로 읽으면 '눈'이다. noon은 정오라는 뜻인데, 정오라고 하면 가장 먼저 철학자 니체가 떠오른다. 인간의 무의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는 그림자가 인간과 거의 하나가 되는 순간, 의식과 무의식이 일체가 되는 순간이 정오의 시간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평소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결코 무의식의 완전한 영역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삶에는 어떤 순간, 의식과 무의식이 완전히 일체를 이루어 나의 존재 자체가 통합되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니체가 말하는 '정오의 시간'이란 바로 그런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되는 순간, 나의 존재가 분열되지 않고 통합되는 순간, 달리 말하는 인생 최고의 창조의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때때로 어떤 창작의 시간, 내게는 글쓰기의 시간에, 나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내 안의 무수한 '나들'을 만나고, 그렇게 터져나오는 무의식의 범람을 의식으로 붙들어 매고 이야기를 써나간다. 왜 그토록 글을 끊임없이 쓰느냐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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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볼 수 있는 건 당연히 우리에게 눈, 즉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종종 우주에서 처음으로 눈을 뜬 존재에 대해 생각한다. 시각이 생겨나기 전의 우주란 무엇이었을지, 좀처럼 인간의 한계에서는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단세포 생물이 서서히 진화하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 빛과 접촉할 수 있게 되고, 그 빛의 반사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시점, 그 시점이야말로 우주가 열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전까지도 우주는 있었지만, 그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봐줄 수 없었던 우주란, 어쩌면 제대로 존재하는 게 아니었을지 모른다. 비로소 보여질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래서 형태와 색체를 갖추고 드러날 수 있게 되었을 때, 우주도 진정으로 존재하게 된 건 아닐까?
요즘 시대는 어느 시대보다 모든 사람들이 '타인의 눈'에 들기를 바라면서 자기를 SNS에 전시하고, 자기를 표현하는 시대다. 어찌 보면, 마치 처음으로 눈을 떠서 우주를 봐주어서 존재하게 된 우주처럼, 우리 인간의 삶도 그 누군가의 시선에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군가가 좋게 봐주는 외모, 직업, 에티켓, 분위기 같은 것들이 인생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기준들이 되곤 한다.
그러나 타인의 '눈'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버리면, 그 인생은 역시 제대로 설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눈'은 인생 내내 따라다니며 나의 기준이 되어줄지 모르나, 그 '타인'은 평생 달라지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 삶은 어느 타인들, 어떤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자기의 눈'을 보다 제대로 가져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보여지는 존재만이 아니고 스스로 볼 수 있으며, 나 자신도 내가 볼 수 있고, 내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가 인생의 보다 중요한 기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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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눈은 식물의 싹이다. 싹이라고도 하고 순이라고 하며, 특히 '쌀눈'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는 단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쌀눈에 박힌 눈의 느낌이라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 곧 터져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느낌, 곧 솟아나와 초록의 새 잎이 되고 줄기가 되기 전에 가득 찬 느낌, 곧이어 시작될 자람을 예감하게 하는 어떤 셀렘의 느낌, 같은 것들이 이 '눈'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도 그런 '새순'의 감각이 함께 내린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누군가 봐주길 바라면서 열심히 SNS에 정갈한 글과 사진을 올리고 있는 어느 청년의 마음도 그 속에 묻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봐주길 바라는 눈이 어딘가에 있길 바라면서, 열의에 찬 눈빛을 불태우고 있는 모습도 떠오른다. 그 시간은 어쩌면 조금 외롭고, 조금 허전하고, 그렇지만 아직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차오르는 정오noon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게 세상의 단어들은 서로의 곁에 머물면서 언제든 이어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 간단한 이벤트를 마련해볼까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주간' 구독 메일을 SNS에 소개해주시는 분들 중 두세분을 선정하여, 제 서명과 함께 나름대로 몇 줄 문장을 적어 제가 쓴 책을 보내드려볼까 합니다. 이벤트 참여해주신 분들은 SNS 링크를 제 메일jiwoo9217@gmail.com이나 댓글, 페이스북 메세지 등을 통해 보내주세요. (편지 내용 등은 자유롭게 복사, 인용하셔도 됩니다.)
* 눈에 대해 쓴 글을 보내주시면, 그 중 한두편을 선정하여 '나눔글'로 소개해드리는 이벤트도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께서 마찬가지로 제 메일 등으로 글 한편 써서 보내주시면, 선정되신 분께는 위와 같이 책 한권 보내드고자 합니다.
* 이벤트 소개 메일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전에 참여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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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전
지금 또 펑펑 눈이 내려요^^! 천둥번개를 동반한 눈이요~~!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인데 이런 눈 속에 다섯번째 편지를 읽으니 운명적인 기분이예요❤
세상의 모든 서재
눈의 계절에 눈의 주간을 하길 잘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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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첫문단 보고 당황했어요. 제가 비슷한 글을 썼거든요 흑흑. 지우작가님 늘 응원합니다!
세상의 모든 서재
그러셨군요 ㅎㅎ 은근 우연히 발견하는 분들이 많나봐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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