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거리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멀면 마음이 닿지 않고,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날카로움에 상처를 입죠. 우리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싶어져요. 마음을 더 열고, 더 나누고, 더 깊이 연결되고 싶어지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해요. 배려가 기대가 되고, 기대는 실망으로, 실망은 오해로 바뀌어요. 분명 애정에서 출발했는데, 왜 마음은 자주 복잡해질까요? 오늘은 진심을 다할수록 왜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지. 그 복잡한 마음의 이름을,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함께 찾아보려고 해요.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 동시에 상처 주는 존재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개념을 이야기해요. 춥고 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다가가요. 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프죠. 결국 둘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가장 덜 아픈 지점을 찾아 서로를 지켜보며 함께 있어요.
이 비유는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돼요. 우리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고 싶은 사람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아요. 상처를 준 건 사랑이고, 상처를 받은 것도 애정이에요.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더 예민해지는 건 그만큼 관계에 기대가 많고, 그 사람의 말과 태도가 ‘나 자체’로 느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좋은 관계일수록 더 많이 아프고, 더 자주 흔들릴 수 있어요.
거리를 두는 건 냉정한 게 아니라, 건강한 태도일 수 있어요
‘정말 좋은 관계라면, 거리 없이 마음껏 다가가도 괜찮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오히려 반대예요. 건강한 관계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적정한 거리를 찾는 사이예요. 서로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바라보는 관계. 그게 고슴도치처럼 서로를 덜 아프게 하면서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두고도 함께할 수 있는 거리. 그걸 찾으려는 태도야말로 진짜 친밀함의 시작이에요.
실천할 수 있는 작은 거리의 연습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생각의 여백 만들기
가까운 사람일수록 단정적인 해석을 하게 돼요. “저 사람은 왜 저럴까”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보세요. 그 한마디가 관계의 거리를 부드럽게 만들어줘요. 이 한마디는 그 사람을 이해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 안에 작은 여백을 남겨주는 말이기도 해요.
내 감정을 먼저 돌아보기
상대의 말이 상처가 되었을 때, “왜 저 사람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할까?”보다는 “나는 왜 이 말에 이렇게 아팠을까?”를 먼저 떠올려보세요. 상대의 말투가 문제였는지, 아니면 내가 원했던 반응이 있었는지, 감정의 뿌리를 찾는 이 과정은 관계를 탓하지 않고 나를 돌보는 일이에요. 이 질문 하나가, 얽힌 마음을 푸는 시작이 될 수 있어요.
함께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시간 늘리기
거리를 둔다는 건 물리적으로 멀어지는 게 아니에요. 함께 있음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방식으로 작은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예를 들어 하루 중 10분이라도 산책을 혼자 다녀오거나,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때론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라는 감정을 말 대신 조용한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작은 독립성이 유지될 때, 관계는 오히려 더 부드럽고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어요.
거리를 만드는 사이가, 진짜 가까운 사이예요
우리는 관계에서 자주 오해해요. 정말 가까운 사이라면 다 보여줘도 되고, 다 받아줘야 한다고요.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몰라요. 진짜 가까운 사이는,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적당한 거리와, 충분한 여백을 만들어주는 사이예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고슴도치처럼, 우리도 서로에게 찔리지 않으면서 따뜻함을 나누는 그 적정 거리를 함께 찾아가는 중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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