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회가 지난 9일 동물복지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각 있는 존재(sentient being)’, 그러니까 고통이나 쾌락 등을 느낄 수 있는 생명체의 대상을 확대하고 이들까지 법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취지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보호해야 할 동물’이라고 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저는 사람과 가까운 강아지나 고양이 그리고 멸종 위기에 빠진 야생 동물 정도가 가장 먼저 떠올랐는데요, 이번 개정안에는 생각지도 못한 친구들이 포함됐습니다. 문어와 게, 바닷가재 🐙🦀🦞 등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족류(頭足類)와 십각류(十脚類)인데요, 음…평소에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죠? 최대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먼저 두족류는 머리 밑에 바로 다리가 달린 것들, 즉 오징어나 문어 같은 것들입니다. 또 십각류는 다리가 열 개인 갑각류, 즉 게나 바닷가재 같은 것들이죠. 작년 5월 발의된 개정안에서는 소나 돼지 같은 척추 동물만을 지각 있는 존재로 규정했는데, 이번엔 그 범위가 훨씬 넓어진 셈이죠.👀
영국 의회는 이번 의결을 두고 런던정치경제대학(LSE)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반영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앞서 LSE는 두족류와 십각류의 지각 능력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8가지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아픔을 느끼는 신경 수용체가 있는지, 있다면 뇌의 특정 부위와 연결돼 있는지, 마취제에 반응하는지 등의 항목이었죠. 그 결과, 고통을 느끼는 것과 관련해 문어는 ‘아주 강력한’, 게는 ‘강력한’, 오징어와 바닷가재는 ‘상당한’ 증거가 확인됐습니다.
이제 영국에서는 살아 있는 문어나 게, 바닷가재 등을 끓는 물에 바로 넣어 삶거나 살아 있는 상태로 배송하는 것을 금지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행위는 불법이 되는 셈이죠.🙅♂️ 영국은 1822년, 동물복지법을 처음 통과시켜 말이나 당나귀를 때리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200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연체동물과 갑각류의 복지까지 신경 쓰는 나라가 됐습니다.
‘유난이다’, ‘꼭 그렇게까지 할 일인가?’, ‘그저 영국만의 이야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는데요, 사실 동물에도 감각이 존재한다는 개념은 이미 2009년 EU법에 포함된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스위스는 바닷가재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은 사람을 형사 처벌하고, 노르웨이는 연어 같은 양식 물고기를 잡을 때 미리 전기 충격을 주거나 가격해 기절하도록 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두고 있죠. 또 문어로 실험을 진행할 때는 마취가 의무 사항입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1991년 만들어진 동물보호법상 현재는 척추 동물만이 보호 대상입니다(단, 식용 목적의 동물은 제외 대상입니다). 작년 7월 법무부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새 조항을 담은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당시에도 ‘동물’의 범위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었죠. 물론, 법 조항 한 줄이 하루 아침에 모든 걸 바꿔 놓을 순 없을 겁니다. 문어를 동물보호법의 대상으로 분류하냐 마냐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서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만 할테니까요.🙋♂️
오늘 레터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소개하면서 마무리하려 합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의 문어 선생님”입니다.🎬 일에 회의를 느껴 우울증까지 겪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해변에서 우연히 문어와 인연을 맺으며 겪는 감정의 변화를 담았습니다. 경계하던 두 생명체가 교감을 나누고 나아가 우정을 쌓는 일련의 과정에서 주인공은 ‘관계’와 ‘삶의 목적’을 고찰하는데요, 어쩌면 동물 권리나 동물 복지라는 거대하고 거창한 이야기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강한 울림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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