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별안간 떠나고 싶은 요즘입니다.
요 근래만큼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었던 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여행 욕구도 적은 편인데요. 가면 좋지만은 어딘가를 가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누군가 가자고 하면 못이기는 척 가는 편이었죠. 전국팔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행이라기보다는 나들이라고 생각했고요. 각잡고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하고 일정을 짜는 게 귀찮은 것도 이유고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곳이라는 생각도 한몫했습니다.
그렇다고 여행을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색다른 곳에 가면 머리가 환기되기도 하고, 말마따나 사람 사는 곳인 만큼 꼭 내가 한국, 서울에서 사는 방식대로 안 살아도 되는구나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이런저런 이유를 차치하고 일상에서 벗어나 다니는 건 재미있고 즐거운 일인 것도 맞고요.
여행을 자발적으로 마구 떠나지 않은 이유는 늘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 계획하고 있는 n개월, 또 n년 안의 내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시점에 여행은 사치라고 느껴졌거든요. 이때 해내야 할 과제가 있고, 준비해야 할 시험이 있고, 마무리 지어야 할 일정이 있는데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부 시절 교환학생을 가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제가 그리던 미래를 향한 과정에는 6개월간 한국을 떠나 있는 게 없었거든요. 6학기에는 학원의 어떤 과정을 수강하고, 7학기에는 인턴을 하고, 8학기에는 입사 시험을 치러 다니는 모습만이 있었죠.
그때는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만들어갈 미래가 너무 기대됐고, 하루빨리 그 날이 오기만을 바랐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어째서인지 요즘들어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커집니다. 해야 할 것들과 하면 좋은 것들에서 벗어나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들을 누리고 싶습니다. 지금의 제가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은 결국 의무와 권유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어느 순간에 도움이 될 것들만을 그리고 사는 게 피곤해졌나 봅니다.
이래서 일탈도 일찍이 해야 하나 봅니다. 아마 작년부터 농담반 진담반으로 30이 되면 몰타에서 3개월 살다 오고 싶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처음엔 농담이 반이었는데 이젠 진담이 90이 되고 있습니다. 몰타는 그냥 상징적인 어딘가에 불과하고, 그때가 되면 몰타가 아니더라도 어딘가로 떠나고 싶기는 합니다. 리 단위의 어느 곳에 가서 일년 살기를 할까 싶기도 하고요. 어디든 간에 지금의 제가 아닌, 저로서 존재하는 곳에 가고 싶네요.
어쩌면 지친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후회되는 게 하나 있다면 뭐든 너무 정석적으로 시작한 겁니다. 뭐든 딱딱 들어맞는 게 좋아서 삶도 그렇게 계획하고, 그 순서대로 살아가는 스스로가 좋았는데 문득 돌아보니 좀 삐뚤게도 가볼걸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탈을 말하면서도 또 언젠가의 내게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방향의 것들만 떠올리는 걸 보면 아직 멀었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일탈 겸사 오전 7시가 아닌 오후 7시에 보냅니다, 우하하. 오늘 하루도 편안히 보내셨길 바라며, 내일 아침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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