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휴대폰 메모장에 많은 걸 기록했습니다. 일정을 적기도 했지만 그때그때 느낀 감정이나 일기를 적기도 했고, 업무에서 배운 것들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할 따에만 찾아봤는데 오랜만에 예전의 메모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이야, 별 얘기를 다 써놨더라고요. 들었던 기분 좋은 칭찬, 누구를 향한지도 모르겠는 비난.. 우울의 이유를 분석하기도 했고 보내지 못할 편지들도 무수했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더군요. 지금의 저보다 훨씬 선명하고 더 열정적인데 고닥 3년 전이라는 게 놀랍기도 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나 삶에 대한 가치는 어쩐지 지금보다 성숙한 것 같기도 했습니다. 한참 사회 문제에 관심 많고 예민하던 시기였기도 했고요.
그런데 조금 놀란 것도 있었습니다. 2020년에 쓴 일기 중에서 이런 문장을 봤습니다. "지금껏 순탄했던 하루들에 처음으로 물방아가 찧어진 것 뿐이다." 이외에도 힘들 때에 쓴 일기마다 지금껏 온실 속에서 살다가 처음으로 갈등을 마주하니 힘든 것이라는 뉘앙스의 글들이 꼬박꼬박 있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나름의 힘듦을 마주해 놓고서도 스스로 계속 그간 평온한 나날을 보냈다고 생각해온 것이죠.
요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평탄하게 살아서 작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하거든요. 떠올려 보면 이런 생각을 20살이 된 이후로 매년 한번은 꼭 했었는데도 불구하고요. 분명 20살 때 인생 첫 알바를 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지금껏 화초로 살아온 나를 반성한다며 엉엉 울기도 했고 그 이후로도 매번 나름의 챌린지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새까맣게 잊고, 매년 저는 온실 속 화초로 되돌아갑니다.
왤까요. 잠시 흔들렸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 다른 좋은 기억들로 덮여 미화되면서 다시끔 평온한 하루로 남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뒤에 찾아온 고난이 너무 커서 앞의 것은 고난 축에도 못낀다고 스스로 잘라내버린 걸까요.
이유는 알 수 없다만 기분은 조금 좋아졌습니다. 이대로라면 매번 힘든 순간이 있어도 언젠가 돌아보면 순탄한 나날로 기억될 것 같아서요.
아마 죽기 전 마지막 눈을 감을 때에도 인생이 참 온실 같았고 드디어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마주하는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좋겠네요. 전 현실이 어쨌든 간에 최소한 저 스스로에게만큼은 제 삶이 온실 같기를 바라거든요. 남들이 봤을 때는 폭풍우 한가운데에서 휘몰아치는 인생일지라도 제게 있어서만큼은 늘 그랬듯이 평탄한 삶이라고 믿고 살려고 합니다. 정신 건강에 좋더라고요.
또, 이건 제 팁인데 "세상에서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라고 생각하면 끝도 없이 불행해집니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는 정말 최악의 단어 조합이에요. 저도 여전히 삶이 버거울 때마다 종종 쓰는데 그럴 때면 이 슬픔이 보편적이라는 것을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수백수천 년 전의 사람들도 겪은 슬픔이고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경험한 일이지만 극복하고 다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요. 차라리 오, 이런, 일이, 드디어, 내게도, 일어났군, 이라고 생각하는 편에 한 표 던집니다.
아마 저는 또 몇 개월 뒤면 새까맣게 모든 걸 잊고 인생이 너무 순탄하다고 믿고 있을 게 뻔합니다. 10년 뒤에도 마찬가지겠죠. 그때에도 다시 한번, '그래, 지금껏 인생이 너무 순탄했지'라며 다시 마음을 다잡길 희망합니다. 그러면 정말 죽을 때까지 (제게 있어서만큼은) 평온한 나날들로 기억할 수 있겠죠.
구독자님, 오늘도 평온하고 다정한 하루를 보내봅시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