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은 말] ㅋ : 코이의 법칙
구독자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오늘은 코이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해요. 비단잉어의 한 종류인 '코이'는 환경에 따라 성장하는 크기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물고기인데도 작은 어항에서 키우면 10cm 내외지만 큰 강에서 자라면 1m도 넘게 자란다고 해요.
코이의 법칙은 사람의 꿈의 크기를 두고도 많이 비유됩니다. 스스로가 자신의 한계를 정해버리면 거기에 맞춰서만 꿈을 꾸고, 또 이루게 된다는 설명입니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고 싶은 아이와 세계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되고 싶은 아이가 만족하는 벌이의 규모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요즘 저는 꿈의 크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은 요즘입니다. 특정한 직업을 목표로 삼고 취업을 준비했던 대학생 때보다도 더 진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는데요. 고민이 깊은 이유는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고 싶은 일은 있는데 스스로 계속 검열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두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제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래는 지금 발붙이고 있는 현실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주변의 누군가가 살고 있는 삶이기도 했고, 이만하면 행복해 보이는 이들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더 하면, 저 정도로 살 수 있겠구나가 대략적으로나마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라 이루겠지만, 시간이 좀 더 필요한 미래를 그렸죠.
그런데 요즘은 자꾸 마음 속에서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아직 한 번도 못봐서 과연 이게 될까? 하는 의문을 자꾸만 품게 하는 꿈입니다. 스스로 입밖으로 주절대면서도 허황된 망상에 불과할까 싶어서 괜히 혼자 머쓱해지기도 합니다. 제가 그리는 삶의 모습에서는 여유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을 때면 기가 죽기도 합니다. 가끔은 주변인들이 배제된 꿈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한 죄책감이 들기도 합니다. 직업적, 학업적 성취와 함께 관계에서의 행복을 함께 쟁취하고 싶다는 말이 욕심이라는 말도 종종 듣습니다.
그래서 더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이렇게 꿈을 꾸고 입밖에 내는 것만으로도 욕심이라면 이제는 '공상'을 감히 꿈이라고 말해선 안 되는 건지. 그럴법한 꿈만을 꿔야 하는 건지. 동시에 주변의 말에 휘둘릴 정도라면 스스로도 꿈에 확신이 없는 것은 아닌지, 여러모로 복잡다난했습니다.
마음을 편안히 해준 것은 또다른 꿈을 꾸는 친구들입니다. 다행히 여전히 제 주변엔 꿈을 꾸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보통의 시선에서 봤을 땐 황당한 꿈일지라도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보면 진짜로 머지 않아 이룰 수만 있을 것 같습니다. 구름 위를 딛고 선 이야기들을 마구잡이로 나누는 게 아직도 왜 이리 재미있는지요. 그 구름이 마냥 수증기 덩이가 아니라 언젠가 단단히 자리잡을 땅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겠죠. 친구들이 말하는 꿈을 듣다 보면 망상이란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분명 그렇게들 살고 있을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제가 그리는 미래를 이야기할 때에도 진지하게 그 삶을 살고 있을 제 모습을 함께 상상해 줍니다. 그러고 있자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만 같아요.
어쩌면 제게 있어 어항은 제 꿈의 크기가 아니라 주변인들의 믿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제가 혹여나 하는 마음에 더 작은 꿈을 말하면 옆에서 넌 그보다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고, 그 말에 힘을 얻거든요. 물론 주변의 말에 아랑곳않고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은 전 그정도로 단단한 인간은 못되거든요🥹 등 뒤를 밀어줄 때에 더 멀리, 더 빨리 날 수 있습니다.
100의 꿈을 꾼다고 해서 100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않습니다. 다만 10이라도 이루기 위해서는 1을 꿈꾸는 것보다 100을 꿈꾸는 게 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죠. 하고 싶은 게 분명하고 살고 싶은 삶이 뚜렷하다면 굳이 스스로의 어항을 작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태평양을 헤엄치고 있다고 믿으며 갈 수 있는 한 끝까지 가보는 것이죠.
그러다가 끝까지 못가면 어떻고 알고보니 태평양이 아니라 작은 수족관이면 뭐 어떻습니까. 애초에 신포도라고 믿었던 것보다는 5000배 더 나은 삶이 아닐까요. 아직 오지 않은 실망감이 무서워 이르게 포기하는 것은 아깝습니다. 오늘 편지는 스스로에게 말하는 다짐 같기도 합니다. 종종 곱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 곱씹을 필요 없이 마음에 단단히 새겨두고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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