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객원필자 잠실마감노동자입니다. 술 취한 뉴스레터 주인장이 내일 아침 7시에 보낼 원고가 없다며 밤 12시에 저에게 SOS를 쳤습니다. 오늘은 저의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하나 털어놓을게요.
“매달 이만큼 돈 쓰시면 신용카드를 발급하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2016년, 학부 2학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금 흐름이 많은 동아리의 회계를 맡았더니 은행 실적이 쌓였나봅니다. 분실한 체크카드를 만들러 간 캠퍼스의 은행 점원이 신용카드 발급을 권하더군요. 차라리 매달 포인트가 들어오고 체크카드보다 할인 혜택이 많은 신용카드가 나을 것 같다고. 신용카드 회사에선 22살 아가에게 신용카드를 내주지 않았겠으나, 나름의 수입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은행이라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 당시 동아리에도 “회계 한번 하면 신용카드 나온다”라는 말이 기수 대대로 돌기도 했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자는 ’제 인생을 망치러온 나의 구원자‘라는 말에 딱 맞는 이었습니다.
그녀의 꼬임에 넘어가 첫 신용카드를 발급했고, 약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의 불행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게 남은 건 매달 300만 원에 달하는 신용카드 청구서. 그리고 그에 비례해 늘어나는 신용한도. 지금도 친구들에게 ”나한테는 6700만 원의 신용한도가 있어“라고 우스갯소리로 건네곤 합니다. 신용거래를 일찍해서 또래보단 신용등급이 좀 더 높다는 점도 나중에 집을 사는 등 큰 대출이 필요할 때 유리할 수도 있겠네요.
신용카드에 대한 개념이 1도 없었던 아가였던 터라 그녀의 말을 듣고 “진짜 이게 더 경제적이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에 혹했던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 당시 저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2) 동기들 중 1명씩 있는 소위 ‘과외왕’ 그게 저였습니다.
당시 집안 사정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았습니다. 괜찮은 전자기기, 좋은 옷을 사기에는 꽤나 망설여졌습니다. 그렇지만 대학에 와서도 대치동을 떠나지 못한 망령이 돼 과외로 어느정도 소득을 내고 있었습니다. 큰 돈이 들어갈 때는 할부를 활용하면서 나름대로 갚아나갈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렇게 무식하고 용감하게 발급 받은 신용카드. 처음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사고 싶었던 아이폰도 사고 당시 유행하던 따뜻한 롱패딩도 6~24개월 할부로 척척 끊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미친 짓이었구나를 깨달았지만 적어도 그때는 행복했습니다. 솔직히 이 버릇은 지금도 못 고친 것 같고, 지금도 할부로 끊은 아가들이 제 손에 들어오면 1주일은 헤벌쭉합니다.
그런데 차차 나의 구원자였던 신용카드가 제 인생을 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과외 1년차였던 제가 크게 간과했던 부분들이 있습니다.
1) 장기할부의 이자율은 생각 이상으로 높습니다.2) 과외 소득을 일정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자율까지 생각하며 할부를 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장기할부의 이자율은 어지간한 13~19%. 요즘 60개월로 차를 사도 이자율이 5~8%입니다. 어지간한 금융 프로그램을 훨씬 웃돌며, 사실 이 정도면 제2 금융권에 버금갑니다. 그리고 과외 수입이 이렇게 일정하지 않을 줄 몰랐습니다. 특히, 고3, 재수생을 주로 수입한 대입 강사는 11월 이후 수입이 훅 빠집니다. 백그라운드가 없던 초보 강사였기에 그 타격이 더 컸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할부에만 신용카드를 쓰자는 나름의 결심은 뚝 끊어졌습니다. ”다음 달에는 사정이 좀 더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일시불에도 손을 댔습니다. 할부 빚도 일시불 빚도 쌓여나갔습니다. 매달 얼마나 빚이 쌓이는지도 모른채 착실하게 말이죠. 혹시나 저와 같이 신용카드 발급을 고려하는 대학생, 사회초년생이 계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꼭 고려해보세요.
1) 나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 일정하게 들어오는가.2) 포인트, 할인과 같은 혜택뿐만이 아니라 이자율 등 신용카드에 대해 충분하게 이해하고 있는가.
친구들에게 ”내가 인생을 열심히 살게 해준 최고의 원동력은 신용카드였어“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기왕이면 주택 대출이면 좀 더 좋지 않을까도 싶은데요. 월급과 상여금을 모아 꼬박꼬박 갚다보니 지금은 숨통이 좀 트였습니다, 하하하! 여러분께서 올 한해 현명한 소비 생활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모두 풍요로운 2024년 되세요!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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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막 뉴스레터를 읽고 다른 뉴스테러를 읽는데 정은길 작가의 <돈만 모으는 여자는 위험하다> 책 링크가... 우연치고는 참. 고맙습니다. ^_^
조잘조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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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앗;;; 아침 부터 제가 테러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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