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은 어린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미취학 아동 때의 일들이 종종 떠오르고는 합니다. 의외로 그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 일들은 대단한 여행을 했거나 엄청난 사건이 있을 때가 아니라, 정말 사소한 순간입니다.
난생 처음 친구집에서 배추전을 먹고 너무 맛있어서 집에 와서 엄마한테 배추전을 묘사하며 만들어달라 했다거나, 크리스마스 때 엄마가 직접 만든 케이크가 분명 설탕을 엄청 넣었는데도 맛이 없어서 위에 올린 초콜릿만 긁어 먹었다거나, 아빠한테 머리띠를 씌우고는 귀엽다고 박수를 치던 일들이요.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쌓이고 모여서 삶의 결정적 순간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고향에 내려오면 어린 시절이 더 잘 기억납니다. 이번 설 연휴에 오랜만에 떠올린 기억은 동네에 오던 말타기 놀이를 하던 기억입니다. 구독자님은 말타기 놀이를 아시나요? 트럭에 회전목마 같은 말들 너덧마리가 줄지어 서 있고, 500원 내면 거기 타서 잠깐 흔들거리고 마는 것인데요.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요즘 대형마트 가면 있는 동전넣고 타는 흔들리는 인형말 같은 것입니다. 라떼는 트럭에 인형들을 달고 동네마다 돌아다녔거든요.
우리 동네에 오는 날이면 엄마한테 밖에 말 트럭 왔다고 나가자고 했습니다. 거기 타서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한테 손 흔들며 재밌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타고 나면 가끔은 한번 더 타고 싶다고 앵콜하기도 했습니다. 트럭 사장님께서 기분이 좋으시면 좀더 오래 태워주시기도 했고요. 평소보다 배로 높은 눈높이에서 흔들거리며 바라보는 세상이 왜 그리도 재밌었는지. 지금은 누가 돈 주고 하라고 해도 영 민망하다며 안 할 것 같은데 말이죠.
연휴에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전화를 매일같이 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나누지만 또 얼굴 보고 하는 얘기는 다르잖아요. 앞으로의 삶이나 이전의 삶이나 지금의 삶에 대해 말을 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의 나의 행복을 이렇게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도 없지만은, 앞으로의 내가 힘든 순간에도 버틸 수 있도록 행복의 순간을 이렇게 선물해 줌에 따른 감사함이요.
부모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해서 누구나 해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아닙니다. 저 역시 자식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해서 늘 좋은 자식이었는지 돌아보면 그렇진 않거든요. 당연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사는데, 자주 잊는 만큼 또 자주 떠올려야겠어요.
긴 연휴가 끝났습니다. 구독자님, 오랜만의 평일 다시 잘 보내봅시다. 오늘 하루도 착착 흘러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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