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치부 기자를 꿈꿨던 저는 진짜로 제가 정치외교학과에 갈 줄 알았거든요. 고2 때는 정치외교 토론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몇년 전 모교 소식을 들으니 아직 동아리가 건재하더군요.
당시 이미 토론 동아리가 있는데 본인 입시때문에 만든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지만... 사실이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일단 동아리를 만들어야 하니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모았는데요. 동아리를 만들고 나서 '너 쟤랑 친했냐'는 질문을 종종 받기도 했습니다. 여긴 무슨 조합이냐는 얘기도 들었고요. 정치외교 토론 동아리인데도 예체능, 이과까지 구성원이 다양하긴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졸업앨범 단체 사진을 보면 다른 동아리들은 전통이 있어서 다들 멋있게 찍었는데 저희만 자유분방하게 찍었더라고요. 몇몇은 아빠 다리하고, 누구는 브이하고, 동아리 회장인 저는 만세를 했더군요. 언뜻 합성같기도 합니다. 유일하게 까불거리는 동아리라서 여기서 어디가 제일 근본없냐고 물으면 다들 바로 저희 동아리를 가리킬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아주 노골적인 이름의 정치외교 토론 동아리지만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친구는 아무도 없다는 게 유머입니다.
그렇게나 정치외교학과에 진심이었던 저는 고등학생 때, 상경계만은 절대로 안 가겠다고 발악했습니다. 정외를 못가면 철학도 좋고 아랍어도 좋고 다 좋은데 상경계는 너무너무 싫다면서 악썼는데요. 귀신이라도 씌인 건지 수시를 쓸 때, 6개 원서 중 딱 하나 상경계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만 붙고 나머지는 다 떨어졌습니다.
어차피 정외 붙을 거니까 이 학교는 이 학교에서 제일 인기 있는 전공 중에 경쟁률 낮은 데 넣자는 심산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정말 몰랐네요. 이래서 입시는 신중해야 합니다.
경제학에서 탈출하기 위한 4년을 보냈는데 결국 취업도 비즈니스 분야의 글 쓰는 일을 하고 있는 게 또 하나의 코미디입니다. 제가 믿는 것 중에 하나가, 결국 삶은 내가 잘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는 것인데요. 제가 경제학과만 딱 붙은 게 결국 이런(?) 일을 하게 될 테니 더 도움되는 공부를 해라~는 무언의 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제는 회귀분석 모형을 공부하다가 문득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당했습니다. 이 재미를 학부생 때 느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사실 이 얘기를 쓰려고 시작했는데 영 옛날 얘기만 잔뜩 하고 말았네요.
이 얘기는 다음주에 이어서 하겠습니다.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가 되어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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