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 이야기 2탄입니다. 시리즈로 쓰는 건 처음이라 신나는데요. 상경계가 너무 싫었던 저는 전공이 정말 안 맞았습니다. 수학을 되게 좋아했는데도 그냥 돈 얘기하는 게 싫었습니다. (하지만 구독자님, 돈 싫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입학하고도 영 정을 못붙여서 검도부, 밴드부, 교지 등 바깥 동아리로 나돌았죠. 과 동기들에게 공공연히 난 경제학과 오기 싫었다고도 말합니다.
전공은 아니나다를까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희 과는 모든 강의를 영어로만 들어야 했는데 전공 혐오를 가중시켰습니다. 게다가 이미 고등학교에서! 영어로! 경제! 공부를 하고 온 친구들도 몇 있더라고요. 그런 친구들이 심지어 경제학을 좋아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훨훨 날았겠습니까. 일찌감치 전공 성적을 포기했습니다.
입학한지 얼마 안 돼 학과장님과 모든 신입생이 일대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대학와서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설문지에 저는 '한강에서 기타치기'를 적었었고, 학과장님은 혹시 영화찍냐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황당하긴 하네요.
그렇게 전공 싫다고 외치고 다녀도 똑똑한 친구들과 선배들이 과외하다시피 공부를 알려준 덕분에 어째저째 중간(보다 아래)은 갔습니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3학년 때, 저는 대차게 철학과를 복전합니다. 동양철학을요.
적성에 맞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오죽하면 원전공과 복전의 학점 차이가 1.0이 날 정도입니다. 강의도 맨날 젤 앞에 앉아서 듣고 교수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습니다. 눈 피하기 바빴던 경제 강의와는 달랐죠. 진지하게 이걸로 대학원에 갈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보다는 기자가 하고 싶어서 생각에서 끝냈습니다.
놀랍게도 공부에 흥미를 붙인 덕분인지 4학년 때는 원전공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요. 재정학 중간고사를 치고 친구들과 우루루 몰려가 성적 확인을 하는데, 교수님께서 모르는 거 있으면 이 친구한테 물어보라고 절 가리키셨습니다. 아주 깜짝 놀랐지 뭡니까. 나머지 친구들이 다 제 선생님이었는데 말이죠. 기말고사는 말아 먹었습니다.
졸업즈음에 와서야 경제학도 공부하면 재밌는 학문이구나~를 깨달았죠. 더 일찍 동기부여가 됐다면 좋았겠다 싶지만 이제라도 하는 게 어딘가 생각합니다. 긴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주말 동안 2탄을 기다리셨나요? 그랬다면 좋겠습니다.
구독자님, 이번주 시작도 화이팅입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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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대입을 앞두고 <전공선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 입시는 어쩌면 인생에서 처음 겪은 시련(?)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수학을 좋아하지 않는 이과생, 지금 생각해도 왜 이과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어요. 형제들이 모두 문과였기 때문일까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공선택, 수학이 싫었기에 수학을 피하자는 기준 정도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공부하자고 하면 수학을 피해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번도 만난적 없는, 어머님만 아시는 분의 자제분(교수님)이 재직 중인 학과를 선택했지요.(왜?) 여기서 반전은 입학 후에 다른 교수님 연구실에서 4년을 지냈습니다. 덕분에 학부 때 전공공부는 원없이 했습니다. 그리고 잘 한 편이었습니다. 또 반전은 전공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사회생활은 IT로 시작을 했다는.... 또 반전은 지금은 IT일을 하지 않습니다. 쓰고 보니 반전에 반전에 반전... (내 인생 왜이래~) 스무 살 이후 삼십년이 지나가 버렸네요! 그럭저럭 잘 살아온 것이 다행이자 행복한 일이네요. 덕분에 반전 스토리를 기억해 냈습니다. ㅎㅎㅎㅎ
조잘조잘 (317)
이과 전공에서 수학을 피하기란 정말 쉽지 않죠.. ㅎㅎㅎ이상하게 피하려고 하면 피하고 싶은 방향으로 또 굴러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지나치게 미운 것은 오히려 미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무야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과연 제 인생은 또 몇년 뒤에 어떻게 어디로 굴러가고 있을지 궁금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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