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음악 들으시나요?
안녕하세요. 오늘 하루 여행 간 주인장을 대신해 조잘거릴 잠실마감노동자입니다. 제가 가장 애용하는 아이스 브레이킹 질문으로 글을 열었습니다. 아직까지 “난 음악 안 좋아해!”라는 갑분싸 대답은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그만큼 음악은 처음 본 사람들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주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구독자님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제 사회 생활 필살기 질문을 꺼냈습니다. 구독자님은 요즘 어떤 음악을 들으시나요?
요즘 제 애플 뮤직 알고리즘에 부쩍 많이 등장하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 음악, 즉 J팝(제이팝)입니다. 사실 음악 앱에 앞서 제이팝을 띄운 알고리즘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인데요. imase(이마세)의 ‘NIGHT DANCER’가 대표적입니다. 간드러지게 꺾이는 가성과 키보드 사운드로 시작하는 이 노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챌린지로 접하셨을겁니다. 온갖 숏폼 영상들의 단골 배경음악이기도 했죠. 최근에는 ‘Ai Wo Tsutaetaidatoka’ 등 aimyon(아이묭)의 노래도 많이 보이는 듯 하네요.
그런데 이들 제이팝 음악들의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4월6일 기준 애플 뮤직 ‘오늘의 TOP 100: 대한민국’ 차트에 NIGHT DANCER가 10위, Ai Wo Tsutaetaidatoka가 14위에 차트인했습니다. ‘스즈메의 문 단속’ OST인 ‘すずめ(feat.十明)’도 11위네요. NIGHT DANCER는 멜론 차트 26위인데요. 멜론 차트 100에 제이팝 음악이 처음 진입한 사례라고 해요. 한창 한국에서 일본 음악에 대한 관심이 싹트기 시작했던 2000년대 초중반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사람들이 제이팝을 듣고 있단 거죠.
알고리즘을 통해 알려진 제이팝 음악들이 사람들의 플레이리스트에 까지 침투하는 데 성공한 건데요. 제이팝 음악의 인기에 대해 검색해보니 보통 알고리즘의 강력함으로 이 현상을 해석하는 듯 합니다. 정말 알고리즘이 강력한 마케팅 채널이라 생긴 일일까요?
익숙한데 신선하다? 돌판에 싱송라 뿌리기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짜치는‘ 영상을 명륜진사갈비 마냥 무한으로 즐기다보면 늘 쓰이는 배경 음악만 들어도 짜증이 확 밀려옵니다. 신호등, 새삥 등이 억울하게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음악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곡들은 알고리즘 타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많이 듣던 곡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 갑은 제목도 알 수 없는 중국 노래들과 실패작 소녀 시리즈 노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이팝 음악들이 사람들의 발작 버튼이 아닌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했다는 건 사람들이 제이팝 음악에 음악으로서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겠죠. 숏폼 콘텐츠로 무한정 바이럴을 타기 이전에 말이에요. 과연 2023년 제이팝이 어떻게 한국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는 걸까요?
우선 제이팝이 한국에서 꽤나 익숙한, 큰 거부감 없는 음악이 됐다는 점이 한 몫 하는 듯 합니다. 이마세, 아이묭의 음악이 엄청나게 낯설고 새롭게 다가오는 건 아닙니다. 모던락을 기반으로 한 아이묭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잔나비가 떠오르기도 하고, 작년 말 역주행 신화를 쓴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 역시 제목, 가사, 멜로디 등 노래 전반에 제이팝스러운 느낌이 물씬 납니다. 윤하가 어릴 적부터 일본에서 활동한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고요. 최근 몇 년 인기를 시티팝 장르가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좀 더 근본적인 힌트는 차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플 뮤직 차트에서 1~9위까지 모든 노래들이 아이돌 노래입니다. 사용자가 더 많고 다양한 멜론의 경우에는 1~7위까지가 아이돌 노래였으며 8위, 9위, 10위를 각각 임영웅, 윤하, 찰리 푸스가 차지했네요. 매일, 매주, 매달 바뀌는 차트이지만 현재 한국의 음악 시장을 K팝(케이팝)의 주역 아이돌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 아이돌 노래가 별로라는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저도 눈치는 있어요. 이번 지민 신곡 ‘Like Crazy’의 속삭이며 주문을 거는 듯한 도입부는 정말 인상적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문화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한국 아이돌들의 노래도 저마다 다 다른 매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매일 매일 같은 음식만 먹고 살 수는 없는 법. 여행 간 엄마가 대야째로 끓여 놓은 곰탕을 3일째 먹으면 파스타, 치킨 등 다른 음식이 간절해지기 마련입니다. 한국의 음악 차트를 뚫은 이마세, 아이묭 등 제이팝 아티스트들은 아이돌이 아닌 싱어송라이터입니다. 일본에서는 싱어송라이터나 밴드의 입지가 한국보다 더 큽니다. 아이돌 노래가 주류인 한국에서 일본 싱어송라이터들의 음악이 완전 새롭지는 않아도 꽤나 신선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죠.
반대로 일본에선 아이돌 음악이 약세입니다.애플 뮤직 ‘오늘의 TOP 100: 일본’에선 5, 6위를 뉴진스가 차지했고 아이브, 트와이스 노래도 보이네요. 일본의 아이돌 음악이 힘을 잃기 시작한 데는 자니스, AKB와 같이 대형 프로덕션의 독과점이 이유로 꼽히기도 합니다. 남자 아이돌 시장을 이끌었던 자니스의 경우 최근 소속 아티스트, 연습생에 대한 성추문 등의 도덕적, 법적 문제가 터지기도 했죠. 성추행을 당했지만 자신을 키워준 자니에게 감사하다고 얘기하는 아티스트들의 인터뷰 영상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최근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려 시도하자 사람들이 “하이브가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다 잠식하면 어떡하냐”고 우려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탱고와 케이팝 아이돌
더 다양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듣고 싶은 건 모든 리스너들의 희망사항입니다. 그래야 시장이 건강하게 유지되기도 하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실험적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돌 앨범을 추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지을게요. 바로 2010년 10월에 발매한 가인의 첫 솔로 앨범 ‘Step 2/4’ 입니다. 2/4는 4분의 2박자를 나타내는데요, 탱고의 기본 박자를 뜻합니다. 타이틀인 ‘돌이킬 수 없는’을 들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앨범은 전곡을 탱고 음악으로 구성했습니다. 윤상, 이민수, 김이나 등 내로라 하는 케이팝 장인들은 물론 한국 최고의 반도네온 연주자로 꼽히는 고상지까지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민자들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하층민으로서의 설움을 담은 음악입니다. 한국의 한의 정서와도 통하는 게 있다고들 이야기하는데요. 쇳소리 섞여 구슬프면서도 관능적인 가인의 음색이 탱고 음악에도 착 달라 붙습니다. 아이돌 아티스트가 월드 뮤직을 재해석한 이 앨범, 너무 신박하지 않나요?
탱고 음악의 매력에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신다면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도 보시길 추천드릴게요.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하고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의 음악이 감각적으로 쓰였습니다. 양조위, 장국영의 탱고 씬은 이 영화를 모르는 분들도 한번쯤 클립으로 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보통 기업에 대한 사실을 글로 쓰는 사람입니다. 평소 잘 다루지 않던 저의 취향과 생각을 나누는, 소위 오타쿠 토크를 글로 쓰는 일도 재밌네요. 구독자님도 나만 듣기는 아까운 실험적인 음악과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을 댓글로 추천해주세요. 원래 긴 글에 익숙하기도 하고, 막상 쓰다보니 욕심이 생겨서 분량 조절도 실패한 듯 하네요. 저의 낭낭한 조잘조잘거림에 함께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이틀 후면 주인장이 짧은 휴식을 마치고 돌아옵니다. 다시금 집필의 구렁텅이에 빠져 고통과 희열을 고루 느끼게 될 주인장을 따뜻하게 반겨주세요.
💌4월 7일(금) ~ 4월 12일(수) 조잘조잘은 객원 필자들이 보내주는 편지로 운영됩니다.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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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야
최신을 지향하진 않지만, 음악 장르에 편견 없이 듣는 편입니다. <잡식>이라는 표현이... 벅스를 열면 늘 Top 100을 듣고는 했었는데, 언젠가 부터 그러지 않는 저를 보면서 "아~ 나이가 들었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실험적인 음악은 모르지만, 요즘 즐겨 듣는 음악은 <포크>입니다. 최근엔 영화 <오늘은 좀 매울지도몰라>를 보고는 OST를 부른 '정밀아'라는 가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엔 콘서트에도 다녀왔구요~ ^^ 그 전엔는 '시와'라는 가수의 노래를 즐겨 들었습니다. 같은 장르지만 두 가수의 음악은 전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편지 고맙습니다.
조잘조잘
*잠실마감노동자님이 전달 부탁한 댓글을 대신 남겨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잠실마감노동자입니다. 말씀주신 노래들을 들어봤습니다. 차분하고 따뜻한 노래들이네요. 매번 조잘조잘에 따뜻한 댓글 남겨주시는 나무야님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렇게 나무야님께서 요즘 듣는 노래를 공유해주신 덕에 나무야님과 한발자국 더 가까워진 기분이네요.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글과 댓글로 조잘거리며 더 가까워져요! 좋은 오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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