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말은 날씨가 정말 완벽한 봄이었습니다. 학교 곳곳에도 나들이 온 가족들의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요. 스쳐 지나가다가 한 아버지께서 아이에게 "아빠가 나온 학교야"하면서 소개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꼭 학교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한 시절을 보낸 곳을 찾아 오는 건 의미가 깊으니까요.
노는 것에 관해선 늘 일가견이 있던 제가 유달리 실내에 있는 시간이 긴 봄입니다. 멀리 나가지도 않고 다니는 곳도 늘 한정돼 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가끔은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젊고 좋은 이 시기에 일, 공부, 잠만 반복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런 생활을 시작한 지는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엄살이죠, 하하. 차라리 적응이 되면 몰라도 아직은 이전의 생활에 대한 기억이 더 선명하다 보니 인지부조화가 오는 거겠죠.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금세 마음을 다잡기는 합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싶기도 하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만큼 할 수 있는 자격이나 역량을 키우는 게 당연하기도 하고요. 휴식의 비중이 적어져서 슬픈 거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나 일이 지옥같지도 않습니다. 물론 공부는 어렵긴 한데 남들도 다 어렵다는 걸 아니까 그냥 그러려니 되고요. 일은 양이 많기는 하지만 재미있습니다. 적응되고 나니까 오히려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을 구석도 많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일찍이 사전 투표를 하고 학교 라운지에서 공부하려고 아침부터 준비했습니다. 늘상 그렇듯 거지왕초처럼 보일 법한 옷을 걸쳐 입고 나가려다가 문득 날이 너무 좋은데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안 그래도 요즘 회사다닐 때 입을 수 있는 옷들만 옷장에 넣어놓고, 그마저도 세트로 몇 벌 맞춰두고 돌려입고만 있습니다. 교복처럼 입고 다니는 몇 벌이 있다 보니 쇼핑에도 무관심해졌고요.
그런데 이날따라 서글프더라고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좋은 나이에 이 산 속에서 (학교가 진짜 산 바로 아래입니다...) 이 거적데기를 입고 바로 도서관을 향해야 하나! 그래서 올해 한 번도 안 입은 옷을 입고 외출 준비를 하고 나섰습니다.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입고 다닐 수 있을 법한 옷만 입다가 오랜만에 좋아하는 옷을 입으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사전투표 하러 가는 길도 봄바람에 벚꽃잎이 살랑거리니 기분이 들떴습니다. 이렇게라도 소소하게 행복을 찾는 거죠.
또 늘 자기연민과 함께 과장을 잘하는 저는, 이렇게 고독하게 꿈을 위해 달려가는 청춘의 한 골목에서 바라 본 벚꽃이 유달리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믿음도 품었습니다. 언젠가 돌이켜보면 이 악물고 본 벚꽃이 더 인상적이게 남지 않을까요. 이 역시 자기합리화입니다, 하하하.
하나 웃픈 건 그와중에 신발은 크록스를 신고 나왔더라고요. 나와서 버스를 타고서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편한 건 포기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아무튼 이 좋은 시기를 또 저만의 방식으로 좋게 보내고 나면, 언젠가 nn년 뒤에 자식을 데리고 와서 엄마의 눈물겨운 청춘이 묻은 학교라고 생색내도 떳떳하겠지요? ^0^ 아무튼 봄입니다. 바쁜 가운데도 올해의 처음이자 마지막 봄을 충실히 즐깁시다.
+) 구독자님, 역시 남의 마음을 섣불리 짐작하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지난주 금요일에 보내드린 편지에서 취재원의 예상 못한 반응이 사실 무응답이었거든요. 편지를 보내드린 전날의 이야기였는데, 다음날 바로 장문의 카톡으로 긍정적인 답장을 받았습니다.
혼자 마음 졸인 시간이 참 괜한 시간이었다 싶더라고요. 제 손을 떠난 일을 두고,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말아야겠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최근 노심초사한 두 일이 모두 긍정적으로 잘 풀려서 마음 편안한 주말을 보냈습니다🫠 제가 궁예도 아니고 관심법을 연마하려고 애쓰지말고 나대로 최선을 다했다면 흘려 보내야겠습니다. 또 한 번 깨닫습니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