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쪽짜리 모범생으로 살아남기

2023.03.16 | 조회 2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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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매일 아침, 당신 곁의 이야기

구독자님은 학교 다닐 때,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는 9할 9푼은 모범생으로 살았습니다. 반에 꼭 있는 감투쓰기 좋아하고, 혼나는 거 싫어서 말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1푼은 나사 빠진 반항을 했습니다. 자제하려고 노력하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납득'하기 위해 애써온 만큼 항상 이 납득할 수 없는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상의 모든 규칙과 규율은 제 납득의 유무와는 딱히 상관이 없는데도 말이죠.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교문 밖을 나갈 때는 항상 교복을 입어야 했습니다. 교문 바로 앞에 있는 문구점에 갈 때도 교복을 입어야 했죠. 아마 대부분 그러셨을 겁니다.

당시 전 학교에선 거의 체육복만 입고 있었고, 등교할 때도 교복 입기 싫어서 새벽에 등교하곤 했습니다. 당시 사고회로는 어차피 학교 오자마자 갈아 입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었네요. 그 상태로 등교하면 집은 무조건 야자 끝나고 가야 했습니다. 애초에 교복을 안 가져와서 밖에 못나가니까요.

그러다가 집에 일찍 가야 하는 날이 있었습니다. 그때 교문을 나가는 차 옆으로 숨었는지, 선생님이 다른 데 볼 때 뛰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도망쳤습니다. 뒤에서 뭐라뭐라 소리가 들려도 냅다 뛰었죠.

그렇게 집으로 가는데 뒤에서 선생님이 차로 따라오신 겁니다. 너 멈추라고 하시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습니다. 심지어 엄마랑 같이 있었는데 영문을 모르는 엄마께도 뒤돌지 말고 빨리 가자고 이끌었죠.

즐거운 저녁을 보내고 다음날 등교했는데, 글쎄 그 선생님께서 저희 반 앞에서 저를 호출하더군요. 심지어 다른 학년에 신규 부임한 선생님이라 저를 모르셨는데도요. 저 찾으려고 2학년 전체 반을 돌아다녔다면서 엄청 화가 나셨습니다.

도통 이해가 안 된다면서 왜 도망갔냐고 물으셨고, 제가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엄청 죄송하다며 용서를 구했겠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어차피 옷도 안 가져 왔으니 죄송하다 하고 벌점 받으면 끝날 일을 왜 그렇게까지 했나 싶네요.

이 요상한 심보는 나이가 든 지금도 은연 중에 남아 있습니다. 납득이 안 되면 불퉁한 반발심이 새어 나오는 것이죠.

이제는 그 뒷일이 귀찮아서 그러려니 납죽 하는 법을 배우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은 깎여야 할 구석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여러모로. 그래도 어째저째 사이좋게 세상 사람들과 잘 살고 있습니다. 9할 9푼의 승리입니다.

구독자님은 어떠신가요? 모나있는 마음을 잘 숨기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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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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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은

    0
    over 1 year 전

    꼭 교복을 입고 학교를 나서라는 교칙도 교복 안입고 학교 문밖을 나섰다고 차를 끌고 와서까지 학생을 잡으러온 선생님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지만.. 세상은 이해안되는 거 투성이니까요 그러려니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아 지윤님 어쩌면 이렇게 이해 안되는 세상을 살아가려면 1푼은 나사가 빠진 채여야만 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ㄴ 답글 (1)
  • 나무야

    0
    over 1 year 전

    "당신은 예전에 세모라서 굴려도 굴러가지 않았는데, 요즘은 오각형이 된 것 같아! 굴러가~" 오래 전, 동갑인 직장동료가 술자리에서 제게 해준 말입니다. 네, 시간이 지나니 풍화(?)가 되어 많이 깍이긴 하더라구요! 깍여진 제 모습이 좋기도 싫기도 합니다. ^^ God, give me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which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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