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없지만 종교적인 장소에 가는 것은 좋아합니다. 수십 수백년 간 오가며 무언가를 진실된 마음으로 믿고 소망하는 이들의 기운이 모여 있어서일까요.
얼마전 템플스테이를 다녀 왔습니다. 휴식형으로 신청해서 고된 프로그램은 없었습니다. 예불과 명상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유시간이었습니다. 산 속에 위치한 절까지 오르는 게 가장 힘들었네요.
친구와 함께 갔는데 산을 누비다가 작은 폭포 옆 돌계단에 주저 앉았습니다. 물소리 들으면서 멍하니 물길을 보다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을 모조리 쏟아 냈는데요. 둘 다 요즘 하는 고민이 비슷해서인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직 어려운 것도 많지만 슬슬 익숙한 것도 늘어가는 시점의 사회초년생들의 고민은 얼추 비슷하죠, 뭐.
일은 하고 있고 싫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재미있지는 않고, 그럭저럭 사는 것말고 가치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등등에 대한 이야기. 각자 이미 자신만의 답은 있지만 바깥에다 명확히 말하기엔 자신이 없어서 되뇌이기만 하고요. 이대로 '그냥' 살게 될까봐 무서워서 발버둥치면서도 '그냥' 사는 게 편하기는 해서 안주하고도 싶고요.
자리를 옮겨 다른 돌바닥에 앉아 얘기를 나눴습니다. 속세와 동떨어진 곳에서는 세속적인 고민 대신 본질적인 나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아니더군요. 오히려 그 맑고 청아한 공간 속에서 속세가 덕지덕지 묻은 스스로를 한번 더 확인하고 왔습니다. 즐거운 일을 하고 싶으면서 몸이 편했으면 하는 욕심,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으면서 쾌적한 집에 살고 싶은 욕망. 겉으로는 고고한 척 하지만 어쨌든 돈 신경 안 쓰고 원하는 거 누리면서 살 정도로 돈을 벌고 싶다는 바람. 괜히 산 속에서 그런 열망을 나누고 있자니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또, 시계도 필요없이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악착같이 살 필요가 있나. 영 안 되면 산에 들어와서 살자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스님과 명상을 하는데 머리를 비우라고 하시는데도 저는 내려가서 하고 싶은 것들이 그득그득 생각이 나더군요. 오히려 바깥에서는 '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차마 떠올리지 못했던 진짜 하고 싶은 것들이요. 명상 끝나고 버킷리스트를 세 가지 정도 더 추가했습니다.
직업병이 도져서 스님께 언제 출가하셨는지도 여쭈었습니다. 꽤나 속세에 오래 계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처음 입산하고자 했을 때, 절에서 오히려 더 사회를 경험하고 들어오라고 하셨다네요. 스님도 금융감각(!)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는데요. 산 속이고 모두 종교인들이시지만 여전히 이런 저런 갈등과 고뇌를 하고 산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모든 걸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렴풋이는 알 것 같았습니다. 더불어 세속적인 것에 미련이 가득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도 조금은 덜어냈고요.
어쩌면 종교적인 장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가 영영 닿지 못할 초월성에 대한 동경때문이지 않을까요. 마음을 비우려 갔다가 되려 가득 채워 돌아나온 이의 부끄러운 회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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