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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 바꿨다는데, 스타트업의 거의 모든 것은 그대로다

Y Combinator 공동창업자 폴 그레이엄 인터뷰

2026.09.09 | 조회 4.0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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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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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그레이엄은 21년 동안 같은 강연을 47번 했는데, 매번 빈 텍스트 파일을 열고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Y Combinator(이하 YC, 에어비앤비·드롭박스·스트라이프를 배출한 실리콘밸리 대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를 만든 그는 지금도 매 배치(YC가 한 기수로 묶어 3개월간 함께 육성하는 스타트업 그룹) 창업자들 앞에서 강연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매번 새로 써도 결국 같은 말을 하게 된다고 해요.

요즘 "AI가 다 바꿨다"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데, 20년 넘게 수천 개 스타트업을 지켜본 사람은 반대로 말합니다. 2026년 9월 YC 채널에 공개된, 마운틴뷰의 YC 원래 사무실에서 비비언 미다 셴(YC W18 배치 출신 주니 러닝 공동창업자)이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했어요.

이미지 출처 : Youtube 'Paul Graham On Startups, Ambition, and Great Founders' by Y Combinator
이미지 출처 : Youtube 'Paul Graham On Startups, Ambition, and Great Founders' by Y Combinator

 


 

 

요즘 YC 스타트업이 훨씬 진지해진 이유

Q. YC 배치 앞에서 하는 이 강연, 이번이 47번째라고 하더라고요. 지난 겨울 배치 이후 새로 추가된 내용이 있나요?

없어요. 사실 저는 이 강연을 매번 처음부터 만들거든요. 아마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을 텐데, 그래도 매번 "몇 시간 뒤에 YC에서 얘기해야 하니까 미리 생각은 좀 해두자" 싶어서 텍스트 파일을 열고 타이핑을 시작해요. 항상 그런 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요. 새로 추가할 게 없는 이유는,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일의 대부분이 항상 똑같기 때문이에요. 마이크로프로세서든, AI든, 내연기관이든 상관없이 창업의 대부분은 늘 같은 내용입니다.

강연 후 창업자들에게 둘러싸인 폴 그레이엄.이미지 출처 : @bosmeny, X
강연 후 창업자들에게 둘러싸인 폴 그레이엄.
이미지 출처 : @bosmeny, X

 

 

Q. 최근에 "요즘 YC가 뽑는 스타트업은 '그 좋았다는 옛날'보다 훨씬 진지하다"고 쓰셨죠. '그 좋았다는 옛날'이라는 표현에 담긴 뜻이 뭔가요?

사람들은 늘 "YC는 이제 한물갔다"고 말하거든요. 제 기억에 이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게 2008년쯤이에요. YC는 항상 "예전에는 대단했는데 지금은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YC는 처음부터 별로였다"고는 말할 수 없거든요. 한때 대단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하니까, 공격하려면 "예전엔 좋았는데 지금은 떨어졌다"고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YC는 언제나 '더는 좋지 않은' 상태예요. 제가 '그 좋았다는 옛날'이라고 쓴 이유가 그겁니다. 사람들이 좋았다고 주장하는 그 옛날이라는 뜻이에요.

이미지 출처 : @paulg, X
이미지 출처 : @paulg, X

그런데 실제로 그 옛날에 있었던 게 뭐냐면, 예를 들어 레딧(Reddit)이에요. 물론 지금은 가치 있는 회사가 됐지만, 요즘 배치에 있는 '대륙간 탄도 화물' 같은 스타트업에 비하면 진지하다고 하긴 어렵잖아요.

 

 

Q. 대륙간 탄도 화물이요?

최근에 제가 오피스 아워(YC 파트너가 창업자와 1:1로 사업을 논의하는 시간)를 진행한 스타트업이 하는 일이에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인데 폭발하는 대신 착륙해서 화물을 내려놓는 거죠. 야심찬 아이디어예요. 이 정도면 진지하다고 할 수 있죠. 대륙간 탄도 화물보다 더 진지해지기는 어려워요.

폴 그레이엄이 말한 '대륙간 탄도 화물' 스타트업, Hop Aero. 폭발 대신 착륙해서 화물을 내려놓는 로켓을 만든다.
이미지 출처 : hopaero.com
폴 그레이엄이 말한 '대륙간 탄도 화물' 스타트업, Hop Aero.
폭발 대신 착륙해서 화물을 내려놓는 로켓을 만든다.
이미지 출처 : hopaero.com

 

 

Q. 그 밖에 진지한 스타트업으로는 어떤 게 있었나요?

암 치료요. 이번 배치에 암을 치료하는 스타트업이 있어요. 암 치료에는 정말 다양한 접근법이 있는데, 저는 그중 여러 개에 투자하자는 입장입니다. 어느 하나만 성공해도 좋은 일이니까요.

암 치료 스타트업, Omanta. 환자 한 명을 위한 연구소를 표방한다.
이미지 출처 : omanta.com
암 치료 스타트업, Omanta. 환자 한 명을 위한 연구소를 표방한다.
이미지 출처 : omanta.com

암 치료의 한쪽 끝에는 백신이 있고, 반대쪽 끝에는 치료법이 있어요. 이번 배치의 스타트업은 암 환자를 위한 맞춤형 연구를 요청받는 즉시 수행해 주는 일을 합니다. 제가 이 회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암에 '천 번의 칼질로 죽이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이에요. 암은 누군가 하루아침에 치료법을 딱 하나 내놓아서 끝나는 종류의 질병이 아닌 걸로 유명하잖아요. 물론 백신이 성공하면 그렇게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암과 싸우는 방식은 어쩌면 한 번에 끝내는 게 아니라 작은 상처를 천 번 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Q. 그 팀은 실제로 다른 YC 창업자를 도운 이력이 있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YC 커뮤니티 전체가 얽힌 이야기인데, 이 팀이 깃랩(GitLab, 개발자용 소스코드 협업 플랫폼) 공동창업자 시드(Sid Sijbrandij)의 암 치료를 도왔거든요. 시드는 암을 아주 성공적으로 이겨냈어요. 그는 암을 스타트업처럼 접근했고, 이 팀은 사실상 그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였던 셈입니다.

'시드를 도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만든 Omanta. 폴 그레이엄이 트윗을 인용해 소개했다.
이미지 출처 : @paulg, X
'시드를 도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 만든 Omanta. 폴 그레이엄이 트윗을 인용해 소개했다.
이미지 출처 : @paulg, X

재미있는 건, 저는 늘 머릿속에서 "좋은 스타트업 아이디어가 뭘까" 하는 생각을 굴리고 있는데, 시드의 이야기를 보고 난 뒤에 "누군가가 시드가 자기 자신에게 해준 일을 모든 사람에게 해주는 스타트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지금 그 스타트업이 생겼을 뿐 아니라, 만든 사람들이 실제로 시드를 도왔던 바로 그 사람들이에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죠. 이 회사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정말 기뻤어요.

시드가 쓴 글에서 "내 암에 파운더 모드로 임했다"고 표현했는데, 그가 한 일을 아주 잘 설명하는 말이에요. YC에서 나온 용어(폴 그레이엄이 2024년 에세이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창업자가 위임에 의존하는 '매니저 모드'가 아니라 세부까지 직접 파고드는 경영 방식)를 자기 암에 그대로 적용한 거죠.

 

 

Q. 2012년에 쓰신 에세이에서 '무섭도록 야심찬 아이디어(frighteningly ambitious ideas)'라는 표현을 만드셨잖아요. 다시 읽어봤는데, 지금 보면 어떠세요?

그중 많은 게 실제로 이뤄졌어요. 예를 들어 '새로운 구글'이 그중 하나였어요. 제가 그때 예측한 대로, 새로운 구글을 만드는 방법은 구글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이 너무 많이 변해서 구글의 모델 자체가 낡아버릴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때가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OpenAI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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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OpenAI를 쓰고 나서 꽤 일찍 깨달았어요. "어, 나 구글을 더 안 쓰네." 제가 검색에서 정말 원했던 건 웹페이지가 아니라 정보였거든요. 그럼 AI에게 정보를 바로 물어보면 되는 거잖아요. 지금은 다들 이 경험을 해봤을 거예요.

 

 

창업자를 움직이는 건 억만장자의 꿈이 아니다

Q. '야심'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어서 묻고 싶은데, 창업자는 재능만 뛰어나서는 안 되고 진짜 야심이 있어야 한다는 걸 언제 깨달으셨나요?

창업자에게 야심이 필요하다는 건 YC를 시작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YC를 만들 때 저희는 이미 직접 스타트업을 해본 경험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창업이 얼마나 지독하게 힘든지, 그 많은 장애물을 뚫고 나가려면 뭔가 나를 밀어주는 힘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똑똑한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장애물이 너무 무서워서 똑똑함만으로는 못 넘어요. 그래서 반드시 뭔가가 그 사람을 밀어붙여야 하는데, 그걸 '야심'이라고 부르는 거죠.

재능보다 결단력이 중요하다는 폴 그레이엄의 2023년 트윗. 본문에서 '야심'이라고 부른 그 힘이다.
이미지 출처 : @paulg, X
재능보다 결단력이 중요하다는 폴 그레이엄의 2023년 트윗. 본문에서 '야심'이라고 부른 그 힘이다.
이미지 출처 : @paulg, X

 

Q. 그 야심의 일부는 언젠가 억만장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일 텐데요.

놀라실 텐데, 아니에요. 창업자를 매일매일 움직이는 게 뭔지 아세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에요.

성공하면 엄청난 부자가 될 일을 하고 있으니, 그게 동기가 되기는 해요. 하지만 어느 특정 순간에 그 사람을 움직이는 건 재앙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바보처럼 보일까 하는 두려움, 서버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 거요. 온라인 서비스를 운영하다가 서버가 죽어가고 있을 때 "이걸 해결하면 억만장자가 될 테니 처리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안 돼, 서버 죽는다, 큰일 났다" 이렇게 생각하죠. 비유하자면 "내 모형 기차의 기관차가 책상 끄트머리에서 떨어지려고 한다, 얼른 가서 구해야 한다"는 심정이에요. 어느 순간에나 창업자 머릿속엔 그 생각밖에 없어요. 그냥 내 모형 기차 세트가 망가지는 게 싫은 거예요.

폴 그레이엄이 2007년 에세이 'How Not to Die'에 쓴 문장. 창업자는 돈보다 '망신당할 두려움'에 움직인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 : paulgraham.com
폴 그레이엄이 2007년 에세이 'How Not to Die'에 쓴 문장.
창업자는 돈보다 '망신당할 두려움'에 움직인다고 했다.
이미지 출처 : paulgraham.com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10년 동안 모형 기차만 만지다가 어느 날 고개를 들어보면, "잠깐, 마지막 라운드 밸류에이션(투자 유치 시 평가된 기업 가치) 기준으로 내 지분을 다 더하면 나 억만장자잖아?" 하는 거죠. 그 순간이 오면 당사자도 놀라요. 가끔은 제가 제일 먼저 알려주는 사람이 될 때도 있어요. 제가 계산을 해보고 "잠깐, 마지막 라운드 기준으로 당신 억만장자인데요?" 하면 "아, 그렇네요" 하는 거예요. 저희는 그런 식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러면 반대 경우도 있었나요? YC에 들어올 때는 야심이 부족했는데 배치 기간 중에 크게 야심이 커진 창업자 이야기가 있다면요.

그런 사례는 드물어요. 이 자질은 대부분 타고나는 거거든요. 샘 올트먼이 대표적인데, 저희가 그를 뽑기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미 유명할 정도로 포미더블(formidable)했어요. 그게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이미지 출처 : paulgraham.com
이미지 출처 : paulgraham.com

다만 이런 경우는 있어요. 야심이 없는 게 아니라, 야심을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에요. 어릴 때는 순종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잖아요. 가서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게 아니라,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상황이요. 부모가 자기 뜻대로 하라고 강하게 밀어붙이는 집이었을 수도 있고요. 그러면 한 번도 자기 뜻대로 마음껏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게 유일한 경우인데, 그마저도 저는 그 사람이 원래 야심이 있었다고 봐요. 단지 드러내지 말라고 훈련받았을 뿐이죠.

 

 

Q. 좋은 지적이에요. 요즘은 많은 사람이 스타트업을 이력서에 하나 더 붙이는 배지처럼 생각하는 것 같거든요.

실패했을 때만 배지가 돼요. 성공하면 그게 인생의 일이 되니까 더 이상 배지 같은 건 없거든요. 그런데 실패한 스타트업이 무슨 배지가 되겠어요? 대단한 배지는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끝까지 생각을 안 해본 겁니다.

솔직히 YC 역사에서 꽤 초기부터 사람들이 명성을 위해 YC에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하버드에 들어가고 싶어서 지원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하버드는 붙으면 가는 게 맞아요. 아무리 머리가 안 좋아도 쉬운 전공을 골라서 슬슬 미끄러져 나가면 하버드 학위가 나오고 다들 감탄해 주니까요. 스타트업에는 쉬운 전공이 없어요. 하버드에 지원했는데 이론물리학을 강제로 전공해야 하는 상황과 같아요. 엄청나게 부지런하고 영리하고 끈질기지 않으면 정말 힘듭니다. 그러니까 YC를 이력 한 줄로 쓰려고 지원한 사람들은 자기가 뭘 요청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거예요. 이게 얼마나 이력에 어울리지 않는 것인지 깨닫지 못한 거죠.

이 인터뷰에서의 발언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businessinsider
이 인터뷰에서의 발언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 businessinsider

멋있어 보이고 싶다면, 스타트업 창업은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이에요. 지독하게 힘들고, 누가 당신을 멋있다고 생각해 주기까지 몇 년 동안 지독한 고생을 견뎌야 하니까요. 경력 한 줄 만드는 데는 훨씬 쉬운 길이 많습니다.

 

 

Q. 방금 샘 올트먼을 설명하실 때 '포미더블'이라는 단어를 쓰셨죠. 그 말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뜻으로 쓰시는지 궁금해요.

YC에서 쓰는 언어의 상당 부분은 원래 저와 제시카(제시카 리빙스턴, YC 공동창업자이자 폴 그레이엄의 아내)가 둘이서만 쓰던 말이에요. YC를 시작하기 전부터 특정한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 단어를 쓰고 있었죠.

제가 에세이에서 이렇게 설명했어요. 포미더블한 사람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사람이다. 그게 기준이에요. 원하는 걸 손에 넣습니까? 원하는 걸 못 얻는데 얼마나 포미더블하겠어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폴 그레이엄이 2013년 에세이 'How to Convince Investors'에 쓴 '포미더블'의 정의.이미지 출처 : paulgraham.com
폴 그레이엄이 2013년 에세이 'How to Convince Investors'에 쓴 '포미더블'의 정의.
이미지 출처 : paulgraham.com

투자자가 이런 사람을 원하는 이유는 명확해요. 그 사람에게 투자해서 회사 지분을 갖고 있고, 그 사람도 같은 회사 지분을 갖고 있으면 이해관계가 일치하잖아요. 그 사람이 원하는 걸 얻으면 투자자도 원하는 걸 얻어요. 창업자가 얻는 것의 일부를 투자자가 나눠 받는 구조니까요.

 

 

적은 돈으로 시작하는 건 여전히 가능하다

Q. 주제를 조금 바꿔볼게요. 최근 스타트업 스쿨(YC가 운영하는 예비 창업자 대상 무료 교육 프로그램)에서 패트릭 콜리슨(스트라이프 공동창업자 겸 CEO)이 "린 스타트업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요즘은 돈 모으기가 쉽고, AI 덕분에 에이전트를 여러 개 돌려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다는 게 근거였는데요. 동의하시나요?

저는 '린 스타트업'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어요. YC에는 이미 저희가 투자하는 특정한 종류의 스타트업이 있었고, 아마 『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과 많이 겹칠 텐데, 저는 그 책을 읽어본 적이 없거든요. 읽을 이유가 있었겠어요? 톨킨도 다른 사람들이 쓴 판타지 소설을 다 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러니까 린 스타트업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지만, 어떤 특성이 낡아버렸다고 생각하시는지 말해주시면 거기에 답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Q에서 언급한 패트릭 콜리슨의 스타트업 스쿨 2026 대담.
이미지 출처 : Youtube 'In conversation with Patrick Collison', by Y Combinator
Q에서 언급한 패트릭 콜리슨의 스타트업 스쿨 2026 대담.
이미지 출처 : Youtube 'In conversation with Patrick Collison', by Y Combinator

 

 

Q. 그러면 이렇게 물어볼게요. 아주 적은 돈으로, 좁은 영역에 집중해서 시작하는 방식은 낡았을까요?

적은 돈으로 시작하는 게 죽었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싸게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아요.

물론 지금 토큰 가격이 아주 높긴 해요. 하지만 그건 GPU가 부족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같은 수준의 추론 성능 기준으로 보면 토큰 가격은 1년에 30배씩 떨어지게 될 거예요.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질 좋은 토큰을 받게 되니까, 지금 토큰 가격을 보고 판단하는 건 오해를 부를 수 있어요. 기술은 항상 싸지거든요. 그러니 지금도 큰돈 없이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로켓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도요?

로켓 스타트업을 돈 없이 시작하는 건 더 어렵죠. 하지만 로켓 스타트업도 큰돈 없이 시작할 수 있어요. 방법은 가진 돈에 맞춰서 할 일을 조정하는 겁니다. 실제 로켓을 만들 수는 없지만, 로켓 설계는 만들 수 있잖아요. 설계를 시뮬레이션하거나 전문가에게 보여줄 수 있고, 그게 충분히 설득력이 있으면 투자자를 찾아가 다음 단계에 필요한 돈을 조금 받을 수 있어요. 그리고 그다음 라운드를 또 받을 수 있죠.

Hop Aero가 공개한 소형 프로토타입 계류 테스트. 실물 로켓 대신 이 '중간 목표 지점'으로 공군 계약과 YC 투자를 받았다.
이미지 출처 : ycombinator.com
Hop Aero가 공개한 소형 프로토타입 계류 테스트.
실물 로켓 대신 이 '중간 목표 지점'으로 공군 계약과 YC 투자를 받았다.
이미지 출처 : ycombinator.com

핵심은 가진 돈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는 거예요. 어떤 형태든 중간 목표 지점(마일스톤)에 도달할 수만 있으면, 투자자에게 더 많은 돈을 달라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Q. 스타클라우드(Starcloud, 우주에 데이터센터를 띄우는 YC 출신 스타트업)의 필립(필립 존스턴, CEO)이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백서 한 편을 쓰고 발사 일정을 예약한 것만으로 투자를 받았다고요.

발사 예약만큼 설득력 있는 게 없죠. 발사를 예약했으면 그 일은 반드시 일어나야 하니까요. 다만 필립은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 아주 유명한 전문가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자동으로 신뢰가 따라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창업자보다 필립 같은 사람이 그렇게 하기가 훨씬 쉬워요.

폴 그레이엄이 9월 2일에 올린 스타클라우드 트윗.
이미지 출처 : @paulg, X
폴 그레이엄이 9월 2일에 올린 스타클라우드 트윗.
이미지 출처 : @paulg, X

 

 

AI, 파리에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인간에서 시작했다

Q. AI 이야기를 좀 더 넓게 해볼게요. AI에서 무엇이 가장 놀라웠나요?

놀라웠던 건 AI가 발전한 방향이 제 예상과 정반대였다는 거예요. 저는 1980년대에 AI를 공부했어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절대 작동할 리 없는 종류의 AI였죠. 농담 같은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AI가 결국 어떤 모습이 될지 오래 생각해 왔습니다.

당시 저희가 생각한 전개는 이랬어요. 먼저 완벽한 파리를 만든다. 별로 하는 건 없어요. 파리 뇌 수준이니까 파리가 하는 일만 할 수 있는데, 대신 그 일을 파리만큼 잘합니다. 그다음 파리에서 쥐로, 고양이로 올라가고, 결국 원숭이를 거쳐 인간에 도달하는 거예요. 매 단계에서 그 동물이 하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서요.

이미지 출처 : 나노바나나 제작
이미지 출처 : 나노바나나 제작

그런데 실제로 나온 건 완전히 인간인데 헛소리로 가득한 존재였어요. 초기 ChatGPT는 어떻게든 과제를 채워 넣으려고 그럴싸한 소리를 늘어놓는 대학생 같았죠. 파리 같은 정확한 단순함이 아니라, 완전히 인간의 형태인데 형편없는 인간이었어요. 완벽함에서 시작해 인간을 향해 올라가는 게 아니라, 인간에서 시작해 완벽함을 향해 가게 된 거예요. 저희가 예상한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성질이 최적화된 겁니다. 처음 등장하는 그럴싸한 AI가 헛소리하는 대학생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슬롯머신 같은 거였죠.

 

 

Q. 그 느낌이 지금도 꽤 남아 있지 않나요? 어려운 일은 잘하면서 쉬운 일은 못하는 걸 '들쭉날쭉한 경계(jagged frontier)'라고 부르잖아요.

그렇죠. AI가 유명한 수학 난제를 풀고 있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는데, 저는 식당이 몇 시에 여는지 물어보면 답을 못 받아요. 수학 난제를 푸는 사람들은 제가 모르는 뭔가를 아는 게 분명해요. 아니면 연구용 버전을 쓰는 거겠죠. 그 버전이라면 식당 영업시간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AI 능력의 들쭉날쭉한 능력치'이미지 출처: Professor KL Substack
'AI 능력의 들쭉날쭉한 능력치'
이미지 출처: Professor KL Substack

 

 

Q. 복잡한 주제를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는 분으로 유명하신데, AGI(범용 인공지능)의 공식 정의를 내려달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솔직히 튜링 테스트(기계와 대화하는 사람이 상대가 기계인지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통과하는 판별 기준)보다 더 잘 정의할 수 있을까요? 튜링은 꽤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AGI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깨달은 방법 중 하나는, 제가 튜링 테스트 정의를 다시 찾아봐야 했다는 거예요. 그 자체가 증거인 거죠. "튜링 테스트가 뭐였지? 우리 벌써 거기 온 건가?"

폴 그레이엄이 정의를 다시 찾아봐야 했다는 튜링 테스트. 사람이 대화 상대가 기계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통과다. 이미지 출처 : @PhysInHistory, X 
폴 그레이엄이 정의를 다시 찾아봐야 했다는 튜링 테스트.
사람이 대화 상대가 기계인지 구분하지 못하면 통과다.
이미지 출처 : @PhysInHistory, X 

지금 벌어진 일은 이거예요. 옛날에는 AGI가 결승선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선을 넘으면 아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결승선 위에 실제로 서 보니, 그 선에 폭이 있는 거예요. 1980년대에 멀리서 보면 지평선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선처럼 보였는데, 여기 와서 보니 AI의 어떤 부분은 결승선을 훌쩍 넘어갔고, 어떤 부분은 선 중간쯤에 있어요. 선에 두께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결승선은 사실 얼룩처럼 넓게 퍼진 띠였고, 저희가 줄 수 있는 최선의 답은 "우리는 그 띠 위에 있다"는 겁니다. 제가 식당 영업시간을 못 받는 것도 그래서예요. 식당 영업시간은 띠의 안 좋은 구역에 있는 거죠. 반면 리만 가설(150년 넘게 풀리지 않은 수학계 최대 난제 중 하나) 같은 건 이미 넘어갔을지도 모르고요.

 

 

AI 시대에도 성공 예측 지표는 배포 속도

Q. 다시 스타트업으로 돌아올게요. 스타트업 성공을 가장 잘 예측하는 지표는 새 기능을 내놓는 속도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AI 시대에는 이게 바뀌나요? 새로운 지표가 필요할까요?

아니요. 저희에게 이 강력한 AI 도구가 다 있는데도, 이번 배치에 충분히 빨리 배포하지 못하는 스타트업이 여전히 많아요. 배포 속도에는 당연히 편차가 있습니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속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먼저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니까요.

다들 저한테 물어요. "AI가 이렇게 다 바뀌는데 아직 그대로인 게 있나요?" 제 답은, 지금까지는 거의 모든 게 정확히 그대로라는 거예요.

이미지 출처 : Youtube 'Paul Graham On Startups, Ambition, and Great Founders' by Y Combinator
이미지 출처 : Youtube 'Paul Graham On Startups, Ambition, and Great Founders' by Y Combinator

유일하게 이상하고 새로운 점은 회사들이 엄청난 AI 비용을 낸다는 거예요. 예전 스타트업의 큰 비용은 인건비였어요. 인건비가 전부였죠. 나머지는 노트북과 사람뿐이었으니 비교하면 다 싼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갑자기 GPU 비용을 내야 해요. 하루에 수만 달러씩 토큰 비용으로 나가는 겁니다.

 

 

Q. 그렇다면 다음 1조 달러 기업은 어디서 나올까요? 그 창업자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 창업자들은 포미더블합니다. 사실 그게 질문에 대한 답이에요. 다음 거대 기업이 어디서 나오냐는 질문의 답은, 올바른 창업자에게서 나온다는 거예요. 특정한 어떤 아이디어가 아니에요. 물론 아무 아이디어가 아니라 특정 아이디어들에서 나오겠죠. 아마 개 산책 서비스는 아닐 거예요. 누가 알겠어요,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아주 잘 변하니까요. 하지만 다음 1조 달러 기업은 다음 1조 달러 창업자에게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을 거예요. 그들이 하는 일이 뭐든 유망한 일일 겁니다.

"스타트업은 창업자가 성공시키기 때문에 성공한다."
이미지 출처 : @paulg, X

 

Q. 미래의 창업자들은 과거 창업자들과 많이 다른 모습일까요?

로봇이겠죠.

농담이에요, 그건 아니길 바랍니다. 아니에요, 창업자들은 지금 저희에게 20년치 데이터가 있는데, 20년 전과 정확히 똑같은 모습이에요. 그런데 20년 뒤에는 왜 달라져야 하죠?

이미지 출처 : Youtube 'Paul Graham On Startups, Ambition, and Great Founders' by Y Combinator
이미지 출처 : Youtube 'Paul Graham On Startups, Ambition, and Great Founders' by Y Combin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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