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막연한 걱정에서도 긍정을 찾을 수 있을까?

* 에피레터는 오늘의 레터를 마지막으로 잠시 발행을 쉬어갑니다.

매주 에피레터와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함께해주신 덕분에 저희 모두 꾸준히 일상을 정리하며 깊은 사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일상을 지켜주는 작은 상상이 계속 피어나길 바랍니다. 🙇‍♀️

막연한 걱정에서도 긍정을 찾을 수 있을까?

밤 10시에 잠들고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인 지 3주 차가 되었다. 이토록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지니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몹시 피곤했던 어느 날, 핸드폰을 들여다볼 시간도 내지 못한 채 일찍 잠들었더니 그다음 날 아침 6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고, 그 이후로는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너무 피곤해서 자꾸만 일찍 잠들다 보니 기상 시간도 빨라졌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깨어났다고 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평소에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다이어리를 쓰고, 몇 주째 책상 한구석에 보관만 하고 있던 책을 조금 읽는 정도의 소소한 활동만 할 뿐이다.

이처럼 규칙적인 생활 습관, 건전한 활동을 수행하다 보면 걱정거리도 사라지고 삶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는 하루를 일상적으로 보내도 때때로 괜한 걱정이 떠오르는 것까지는 막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생활이 심심하거나 지겨워서 그렇다기보다는, 지나치게 마음에 들었던 게 문제였다.

‘내가 언제까지 이런 평온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규칙적이고 정적인 활동을 지속하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모습인지 감을 잡고 나니 괜히 이런 질문이 떠올라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무엇 하나 예상대로 흘러가는 법이 있는데 나의 삶만 어제와 다를 바 없이 밍숭맹숭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도 정말로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들은 하루를 망칠 만큼 크진 않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틈을 남긴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때때로 그 틈 사이로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텅 빈 미래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따라잡지 못하면 언제든지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자꾸만 내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이처럼 막연하고 근거 없는 불안도 어쩌면 꽤 괜찮은 방향으로 삶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우연히 헤비메탈과 정신 건강의 상관관계를 다룬 기사를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헤비메탈이 유독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핀란드에서 실시한 연구를 소개한 기사였는데, 메탈 밴드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에 사는 주민일수록 입원율과 사망률이 타지역에 비해 낮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심지어 음주 문제나 폭력적인 행동이 발생하는 빈도도 낮았다는 의외의 결과도 있었다.

처음엔 ‘그 시끄러운 음악이 어떻게?’ 싶었는데 기사를 끝까지 읽어보니 왠지 이해되었다. 메탈은 우울증 완화에 도움이 되고, 팬덤과 함께 쌓는 공동체 의식도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적혔기 때문이다.

시끄럽고 무서운 사탄의 음악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받기도 했던 음악 장르가 사실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된다면, 쓸데없는 생각으로 치부되곤 하는 막연한 걱정과 불안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만약 있다면 그걸 어떻게 내 삶에 적용해 볼 수 있을까?

지금 누리는 평온함이나 소소한 행복이 어쩌다 생긴 우연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면, 분명 과거의 특정한 선택이나 태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선택, 어떤 행동, 어떤 말이 현재를 만들었는지 추적한다면 지금의 평온함이 ‘언제든 다시 떠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 기사를 본 바로 다음 날부터 매일 쓰는 다이어리에 소소한 관찰 일지를 추가해 보았다. 일지의 구성은 정말 단순하다. 오늘의 행복, 혹은 오늘의 감사한 일을 적기. 그리고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행동 한 가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적어보기.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걱정될 정도의 상상력이 있다면 반대로 그 상상력을 활용해 현재의 평온함을 지킬 수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상상을 상상에서만 끝내지 않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상상은 막연한 불안의 씨앗을 털어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조금씩 움직이게 하는 연료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어제의 ‘관찰 일지’에는 아침에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는 행복에 대해 적었다. 이는 행복이기도 하면서도 걱정거리였다. 기후 변화로 원두의 생산량은 줄어들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 지속되고 있으니 미래의 내가 맛있는 원두를 사 먹을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려나 불안한 생각이 언젠가부터 늘 마음 한구석에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제는 그 막연한 불안을 지연하고, 행복은 지켜내기 위한 대안을 상상해서 적어보았다. 애초에 내가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에 행복해했던 이유는 아침을 허둥지둥 시작하지 않는 여유를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여유있게 아침 시간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커피가 아닌 녹차 한 잔, 따뜻한 물 한 잔과 함께해도 행복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물이나 차로는 전혀 만족할 수 없다면? 만약 아침의 여유가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좋았던 거라면 언젠가 원두값이 지금보다 훨씬 오르는 미래가 다가오면 행복을 지키기가 좀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원두를 공동구매 한 뒤 소분해서 나눠 갖는 공동체를 형성해 보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좀 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원두를 시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커피 애호가를 위한 공동체를 미리 부지런히 탐색해둔다면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행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록밴드의 인기가 시들해진 요즘 같은 시기에도 메탈 밴드의 팬들은 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자신의 취향을 고수하는 것처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미래에 어떤 환경이 다가오든 커피에 대한 애정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상상을 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미래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기란 불가능하고, 행복하든 슬프든 불안은 언제나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평온을 지켜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많으면 많은 대로, 시끄러운 음악을 좋아하면 시끄러운 방식으로.

어떤 방식이든 그 뿌리에는 내가 사랑하는 걸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면 걱정과 불안은 막연히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똑바로 직면하고 꽤 상대해 볼 만한 적수일 것이다.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마음이 결국 우리를 지켜줄 테니까. 오늘은 이런 상상으로 미래의 막연한 불안을 달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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