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내가 만약 ‘여행자들의 쉼터’를 만든다면?

내가 만약 ‘여행자들의 쉼터’를 만든다면?

언제나 늘 비슷비슷하기만 했던 유튜브 첫 화면이 바뀌었다.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자꾸만 내게 중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역사 콘텐츠를 추천해 주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관광지를 탐방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게 화근이었을까? 그 이후로는 중세 시대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을 소개하는 음식 채널, 유명한 노래들을 중세 악기로 편곡한 음악 채널, 중세 시대 기사들의 전투를 재현하는 다큐 채널, 중세 시대를 테마로 한 ASMR 채널이 자꾸만 유튜브의 추천을 받았다.

너무 낯선 주제이지만 흥미로운 제목과 섬네일, 그리고 몇백만을 넘어가는 조회수에 끌려 중세 시대와 관련한 콘텐츠를 하나씩 맛본 결과, 어느새 21세기 사람치고 중세에 너무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 거듭났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중세 시대의 생활상은 너무 흥미로웠다!

그 덕분에 알아둬도 별 쓸모는 없지만 확실히 재미있는 소소한 지식도 조금씩 쌓였다. 어젯밤 잠들기 전 유튜브의 추천으로 보게 된 영상은 ‘중세 시대 선술집에서는 어떤 경험을 할 수 있는가?’였는데 이 영상에서는 너무 놀랍게도 중세 시대의 술집에는 ‘영원히 끓는 수프’가 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중세에는 스튜를 계속 끓여놓고, 국물을 떠낸 뒤에는 다시 새 재료를 넣어 보충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수프의 양이 줄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서 이를 ‘영원히 끓는 수프’라고 부른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이나 프랑스 같은 일부 지역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요리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정보도 소개해 줘서 매우 놀랐다.

그 밖에도 중세 시대의 술집은 Inn, Tavern, Alehouse로 나뉘어져 있다는 흥미로운 지식도 알게 되었다. Alehouse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술집으로 주인이 직접 맥주를 양조하는 곳이며, 음식은 거의 없거나 간단한 안주 정도만 있어 주로 마을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 Tavern은 와인, 맥주,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고 주로 도시 지역에 위치해 상인이나 여행자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며 도박이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곳, Inn은 음식뿐만 아니라 숙박도 제공하며 주로 상인, 귀족,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동안 중세의 생활상은 책이나 영화에서만 접할 수 있는 생소한 지식이라서 그런 걸까? 중세 시대에 대한 정보는 알면 알수록 무척 흥미로웠고 새로운 정보를 익힐 때면 마치 그 시대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완전히 몰입하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술집에 대한 지식을 얻고 나니, 뜬금없지만 재미있는 질문도 몇 가지 떠올랐다.

그동안은 항상 누군가와 공간을 나눠서 사용하는 생활을 해왔기 떄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나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은 잘 상상되지 않기는 하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만약 정말로 내가 세계 곳곳의 여행자들을 위해 중세 시대 컨셉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면 맛있는 음식과 음료, 그리고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태번Tavern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졌다.

게다가 요일별로 테마도 정해보고 싶다. 월요일은 각자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독서의 날, 수요일은 손님들과 다 같이 영화 감상하는 날, 금요일은 보드 게임을 하는 날로 지정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주일이 금방 지나가지 않을까?

특제 메뉴로는 ‘영원히 끓는 수프’ 대신 치즈 토핑이 무겁게 얹어진 페페로니 피자를 선보이면 좋을 것 같다. 피자는 나의 소울 푸드이고, 정말로 맛있고, 한손으로 간단하게 먹기에도 좋으니까. 추가로 치즈 대신 버섯, 가지, 토마토, 양파 등을 넣은 비건 피자 레시피도 개발하고 싶다.

생각해 보니, 중세 시대는 그동안 내가 보았던 온갖 판타지 소설, 영화, 게임의 주된 배경이 되어주었다. 갑자기 중세 이야기에 흥미를 갖게 된 것도 판타지 영화를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취향 덕분인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중세의 이야기는 현대인인 나와 전혀 상관없는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내 어린 시절의 일부라고 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진짜 현실적인 중세 시대의 생활상을 알면 알수록 판타지 영화 속 중세의 모습은 정말로 비현실적이라는 걸 느끼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중세 시대를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사이의 연결점을 재발견하는 흥미로운 여행 같기도 하다.

오늘은 유튜브 첫 화면을 새로고침하니, 이번에는 중세 시대 컨셉으로 주방을 꾸민 유튜버가 실제 중세 시대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영상이 추천 영상으로 떠올랐다. 중세 시대를 충실하게 재현한 이 유튜버와는 달리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도 없고, 흉내 내기도 어려운 평범한 현대인이지만 그래도 옛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꿈을 품어보는 것쯤은 가능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나의 오래전 관심사였던 판타지 영화 속 배경처럼 나만의 공간을 꾸미고, 다양한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과 게임을 즐기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고, 어설퍼도 괜찮으니, 중세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게 흥미로운 모험의 배경이 되어주었다는 걸 기억하며 언젠가는 내 방식대로 꾸민 선술집을 만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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