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느려도 괜찮다, 어차피 해낼 거니까

느려도 괜찮다, 어차피 해낼 거니까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부터 나는 잠에서 깨면, 손이 먼저 스마트폰을 찾는다. ‘또 어떤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인지, 습관처럼 SNS를 열곤 한다. 그러면 남들이 만든 별거 아닌 바이럴성 릴스가 100만 조회수를 달성한 것을 본다. 처음에는 부러움에 눈이 반짝하다가, 곧바로 내 현실을 떠올리면 시큰둥해진다. ‘하, 그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근데 나는 왜 이 모양이지?’ 하고 스스로를 구겨 넣기 일쑤다.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뒤로 늘 이런 식이다. 눈 뜨자마자 달리는 토끼를 쫓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그 토끼는 여러마리가 겅중겅중 내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다. 나는 어떤 토끼를 먼저 잡아야 할지, 이 토끼를 잡는 것이 맞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다. 이리저리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고 있긴 한데, 토끼들은 가까워지는 듯 멀어진다. 남들의 손에는 이미 여러마리의 토끼가 잡혀있다. 그래도 멈추기는 싫으니까, ‘어떡하든 계속 달려야 해!’ 하며 나를 다그친다. 넌 지금 쉴 시간도 없어. 

그러다 문득 며칠 전,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감각이 나를 지배했다. '지쳤어'도 아니고 '하기싫어'였다. 그 때 이렇게 번아웃이 오는구나 싶었다. 친구에게 이런 내 상태를 이야기하자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너 제대로 쉬고 있긴 해?'

뭐랄까,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 빨리 결과물을 내야한다는 조바심에, 심지어는 내 일이기 때문에 '헌신'하겠다는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그렇게 휴일 없이 나를 몰아넣은 결과는 언제 다가온지도 모르게 가까워진 번아웃이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내 상태를 인지하자 갑자기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거다. 달리기를 잠시 멈추고 숨이라도 고르라는 신호 같았다. 쓸데없는 불안에 팔려 다니는 게 지겨워서, 그날 이후로는 일주일에 최소한 하루는 회복을 위한 쉼을 가지고 있다.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일 생각만 하는 머리를 비우려고 그동안 꿈꿔왔던 드럼도 배우기 시작했다. 

쉰다는게 별건가. 드럼 수업을 들으며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 그게 나에게 주는 쉼의 시간이다. 회사 일을 할 때도 그랬지만 잘 하고 싶은 일 하나에 꽂히면 낮이나 밤이나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린다. 그러면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게 재밌다가도 서서히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아이디어는 많지만 내 몸은 하나고 내 하루는 24시간이라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생긴다. 머릿속 아이디어들을 현실화했다면 이미 나는 이것보다 더 나은 상태여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되기 힘들다. 그래서 계속 돌아가는 생각 공장을 멈추는 시간이 필요했다.

조금 늦으면 어떤가. 뛰다가 더 다쳐버리면 오히려 손해다. 바지 무릎이라도 찢어지면 꿰매야 하고, 깁스를 할지도 모른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빠르게 성공했다’고 해서 내가 꼭 똑같은 속도로 달려야 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는 나라는 말을 모르면 안 된다. 듣기엔 참 식상하고 진부하지만, 직접 겪고 나니 이만큼 진리인 말도 없다. '느려도 괜찮아, 어차피 난 해낼거니까' 요즘 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해주는 말이다.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심장이 뛰고 재미있는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조바심이 나 봤자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남들과 똑같은 24시간을 최대한 생산적으로 사는 것 뿐이다. 조급해져봤자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지진 않는다. 길게 생각하자.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겠다고 생각하자 '비교'라는 손님도 슬그머니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남의 성과에 질투하는 순간은 여전히 찾아오긴 하지만, 이젠 그럴 때마다 “어차피 내 길은 따로 있지”라고 애써 중얼거린다. 속으로 ‘한 번 사는 인생, 내 속도대로 해보자’ 하고 다짐하는 셈이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안다고 하지 않나.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이 사업을 왜 시작했고, 앞으로 어디까지 가져가고 싶은가에 대한 나만의 답이다. 정답은 누가 대신 알려줄 수도 없고, 짧은 시간 안에 뚝딱 찍혀나오지도 않는다. 남들보다 좀 더 느리면 또 어떤가. 어차피 사업이든 인생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해내는 것’이니까. 시간을 충분히 들이더라도, 결국은 내가 원하던 대로 만들어낸다면 그걸로 된 거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를 썼다. 의식적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지금 잘 하고 있어'를 되내인다. 지금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인다. 사실 내가 일어난 그 순간도 이미 세상은 조용히 돌아가고 있다. 더 이상 남들은 어떤 콘텐츠로 대박이 났는지 궁금해서 스마트폰을 집어 들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나에게 집중하는 모닝페이지를 쓴다. 달리기를 이어갈 힘을 모으기 위해서, 숨을 고르는 내 작은 의식 같은 거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그제야 “아, 나도 나름 잘하고 있구나” 하는 묘한 뿌듯함이 생긴다. 아무도 나를 칭찬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내 안에 내가 있으니까, 나는 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해내면 그만이다. 이렇게 홀가분하게 생각하니까, 참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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