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올해의 영수증을 또 한 번 만들어볼까? (음악편)

올해의 영수증을 또 한 번 만들어볼까? (음악편)

지난 몇 년간 멜론, 유튜브 뮤직,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 등 그동안 다양한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험 삼아 사용해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이 중에서 스포티파이만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스포티파이가 알고리즘으로 추천해 주는 음악이 가장 내 취향에 맞기도 하고, 스포티파이에서 자체적으로 생성하는 연말 결산 콘텐츠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포티파이 계정으로 할 수 있는 숨겨진 연말 결산 방법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스포티파이에서 자주 들은 음악 내역을 영수증으로 만들어주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

RECEIPTIFY 사이트에서 스포티파이 계정을 연동하면 1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내가 자주 들은 음악 목록을 영수증으로 만들 수 있다. 물론 스포티파이에서 제공하는 연말 결산 콘텐츠를 확인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하고 재미있기도 있지만, 구겨진 흰 종이 위에 글씨만 적혀있는 영수증 이미지도 나름대로 멋이 있다.

연말을 맞아 오랜만에 다시 방문해 보니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독특한 기능도 눈에 띄었다. 자주 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자주 들은 가수, 자주 들은 장르, 음악 통계 (Stats)도 영수증으로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올해 내가 들은 음악을 토대로 ‘음악 통계 영수증’을 만들어보았다. 내가 들은 음악은 최신 유행을 잘 반영했는지, 어떤 템포의 노래를 주로 들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6개월 동안 들은 음악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니 위와 같은 수치가 나왔다. 챗지피티에게 이 수치에 대한 자세한 내역을 물어보니 물어보니 ‘평균 곡 연령(Average track age)’은 현재를 기점으로 몇 년 전에 발매된 음악을 주로 들었는지를 뜻하고, 약 108 BPM의 템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아 편안하면서도 약간의 리듬감을 가진 음악에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템포를 가진 음악의 예시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Blank Space, 애드 시런의 Shape of you를 소개해 주었다)

2000년대 초반의 노래를 자주 듣는 건 사실이라서 평균 곡 연령이 9살로 나온 건 놀랍지 않지만, 자주 듣는 노래의 행복도를 수치화하면 100점 만점에 약 92점이 나온다는 사실은 전혀 의식한적이 없이 없어서 의외였다. 사람들 앞에서 때때로 농담 삼아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신나는 노래만 듣는다’라는 말을 한 적 있지만, 이 농담이 정말로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 될 줄은 몰랐다.

영수증을 확인한 후에는 최근 스포티파이에서 들은 플레이리스트들을 떠올려보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힘을 내서 내 목소리를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화가날 때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여러 번 들었다.

기득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사회적인 행동을 일삼는 아티스트가 만든 곡이나, 반항적인 이미지로 소문난 아티스트의 노래나, 속이 뻥 뚫릴 정도로 시원시원하게 소리를 지르는 시끄러운 노래 같은 것. 오늘 만든 음악 영수증에 나온 대로 108 BPM은 아니었지만 내가 나아가고 싶은 삶에 대한 약간의 힌트가 될 것 같기는 했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순간순간 무심코 선택한 음악이 모여 한 사람을 나타내는 데이터가 된다는 점이 놀랍다. 내가 선택한 곡들이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내 감정의 파편, 나의 고민, 내가 바라는 모습을 반영한다니. 그런데 이는 진지하고 신중한 고민 끝에 선택된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순간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니.

그렇다면 매일 특별한 의미를 찾아 나서기 보다는 그저 자연스럽게 하루를 살아도 이 하루는 언제나 나다운 모습으로 구성되겠구나 싶다. 때로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게 남는 것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충분히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맹렬하게 무언가를 쫓아다니지 않고 그저 가볍게 선택한 것도 내 일부가 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기록이 아닐까 싶다. 내년에도 매일의 작은 선택을 즐기고, 이 소소한 선택으로도 내 삶을 충분히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즐기며 살고 싶다.

자유로운 코멘트 혹은 답신을 주세요!

오늘의 감상이나 떠오르는 것을 공유해주세요 😄

남겨주신 답장은 필진에게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