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일상이 단조로울 때는 사이드 퀘스트를

매달 새로운 주제로 에세이를 보내드리는 에피레터의 3월 주제는 모험입니다

유튜브를 보다보면 채널을 구독하고 있지는 않지만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 첫 화면에 자주 뜨는 계정이 몇 가지 있다. 작업할 때 듣기 좋은 음악을 자주 들었을 때는 AI로 만든 로파이 음악 채널이 자주 등장했고, 잠이 오지 않았던 어느 늦은 새벽에는 채널명도 동영상 제목도 없는 신기한 플레이리스트 영상이 자주 떴다. (이렇게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아야만 등장하는 플레이리스트 영상이 요즘 유행이라는 건 몇 주가 지난 뒤에야 처음 알았다)

이런 식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얼굴만 겨우 알게된 채널 중에는 더 열심히, 생산적으로 하루를 보내는 비결을 알려주는 생산성 유튜브 채널도 있다. 그중에는 알리 압달(Ali Abdaal)의 채널도 있었는데, 그의 영상을 너무 자주 추천 받다보니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잘 알지 못해도 그의 최신 영상과는 늘 마주쳤다.

그런데 최근들어 그의 발자취를 온라인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출판한 도서가 한국에도 번역이 된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그의 이름, 그리고 그가 채널에 올리는 주된 관심사는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호기심에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책표지에는 ‘모든 성공은 좋은 기분에서 시작된다’라는 문장도 있었는데, 안그래도 삶이 힘들고 팍팍한데 ‘무지렁이같이 살지 말고 더 열심히 노력해라’라는 거센 동기부여를 삶에 들여놓을 여유는 없었던 참이었다. 왠지 이 책을 읽으면 ‘좋은 기분’을 일상에서 더 자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책을 집어든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단지 이 책의 메시지대로 일상을 바꾸려면 일단 책을 덮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할 것 같아서 책을 도중에 덮어야만 했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주된 메시지는 직관적이다. 억지로 애를 쓰며 열심히 할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분 좋게 할 때 훨씬 생산성이 높아지니, 해야 할 일을 어떻게 기분 좋게 수행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을 일상에서 직접 실험해보자고 말한다.

그래서 책의 초반부에는 일을 놀이처럼 만들 수 있는 실험을 소개한다. 실험의 일환으로 마치 게임을 하듯 자신의 캐릭터를 설정해보거나, 그 캐릭터에 알맞은 ‘사이드 퀘스트’ 만드는 법을 소개한다. 이야기꾼 캐릭터로 자신을 설정했다면 지루한 이메일을 흥미롭게 작성해보는 시도를 하거나, 혹은 창작자 캐릭터를 설정했다면 단조로운 스프레드시트에 눈에 띄는 인포그래픽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한다.

저자는 사이드퀘스트를 ‘게임의 메인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플레이어의 호기심에서 시작되는 퀘스트’라고 정의한다. 여기까지 책을 읽으니 나도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수 있고, 나는 어떤 사이드 퀘스트를 추가할 수 있을까?

이전까지만 해도 목표를 달성하는데 별 도움이 안되는 일을 ‘시간낭비’로 치부하곤 했지만, 사실은 이런 일들이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는 ‘사이드 퀘스트’가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돌이켜보니 그동안 그저 ‘시간 낭비’로만 취급했던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돌아보았다. 버스를 타야 할 긴 거리를 굳이 걸어서 가보았던 순간, 누군가로부터 추천 받은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마시러 일부러 다른 지역까지 갔던 순간, 큰 고민 없이 호기심에 무턱대고 신청했지만 결국 내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던 크고 작은 단체 활동이나 강연, 수업, 이 떠올랐다.

어떤 모험은 경험치를 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반대로 나 자신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그저그런 결말을 맞은 모험도 있긴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간 낭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은 최악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런 식으로 장기적인 인생의 목표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일에 마음껏 시간을 허비하고 방황하는 일 또한 사이드퀘스트의 특유의 매력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을 할 때 사이드 퀘스트를 꼭 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많이 하면 할수록 게임을 더 오랜 시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듯 인생의 지향점과는 빗나가는 사이드 퀘스트도 삶을 조금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주에는 또다시 나만의 작은 사이드 퀘스트에 시도해보려고 한다. 얼어 붙었던 긴 겨울의 끝이 다가오는 것을 기념하여, 일주일에 5번은 몸을 움직여보는 시간 가져보기! 산책을 하든, 가볍게 뛰든, 정적인 스트레칭을 하든 일단 1시간은 무조건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움직여보는 퀘스트를 수행해보려고 한다.

고작 1시간의 가벼운 운동 시간만으로는 아마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상관 없지 않을까? 이건 사이드 퀘스트일 뿐이니까. 인생의 목표와는 큰 관련은 없을지라도, 삶이라는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흥미를 더해주는 것만으로도 이 퀘스트를 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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