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피레터 2.0 - 추억 한켠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추억 한켠에만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세상을 살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지금 내 곁엔 없지만, 오직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그런 사람들. 그들에 대한 감정은 다양하다—그리움, 아쉬움, 분노, 후회, 애뜻함.

학창 시절부터 배운 것은 현재 내 옆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나를 거쳐 간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과 허전함이었다. 어리숙했고 이기적이었던 20대 초반의 어느 가을날, 가장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에게 '우리는 가치관이 맞지 않는다'며 칼같이 연락처를 차단했던 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인간관계에서 솔직한 대화보다는 내가 참는 것이 편하다면 사소한 서운함이 쌓여 한번에 폭발해버렸던 그 순간. 친구의 이해할 수 없다는 문자와 전화를 무시한 채 내 인생에서 다시는 너를 볼 일이 없을거라 생각했다. 내가 무조건 맞다고 생각했고, 그 친구와 함께 한 시간이 모두 아깝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집과 회사를 오가며 반복되는 재미없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내 마음이 지칠 때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오르면, 그들과 함께 했던 그 시절이 더욱 그리워진다. 사실 추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는 내 마음속에 서운함이 남아있는 사람들인데 신기하게도 추억을 떠올리면 그때가 좋았었는데, 재미있었는데 하는 긍정적인 감정과 아쉬움이 생겨난다. 세상에 정답은 없는데, 차라리 서운함을 표현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지 말걸하는 후회까지도.  잘 지내다가도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면 칼같이 손절했던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내가 이렇게 추억에 잠겨있을 줄 몰랐을테지. 

과거에 대한 후회를 붙잡고 살아가는 나에게, 추억과 한 세트로 연상되는 그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은 후회와 반성을 가져다 준다. 오죽했으면 어제는 꿈에서 오랜 친구에게 손절당하는 꿈을 꿨다. 나의 사소한 실수로 손절당하는 꿈.. 그리고 출근길에 사람의 작은 실수를 너무 크게 해석해서 인관관계의 맺고 끊음에 영향주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간관계란 어려워서 매 순간 새로운 교훈을 얻는 것 같다.

떠나간 사람들과의 추억은 내게 오래된 편지처럼 마음 어느 한 구석에 먼지가 쌓여 있지만 여전히 간직한 채, 때때로 그 페이지를 넘기며 그때의 감정들을 다시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늘 그랬듯, 이 편지를 덮을 때면,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내게 남긴 교훈들을 가슴에 새긴다. 미성숙하고 부족한 나의 모습이 있엇더라도,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바래지진 않으니까. 

불교에서 말하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은 업과 연이 쌓여 만들어지는 인연을 의미한다. 모든 일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이제는 내게 왠지 모를 위안을 준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언젠가 인연이 다 하여 내 곁을 떠나더라도, 그들과 함께 했던 추억은 내 속에 오랫동안 남겠지. 이미 지나간 인연도 아쉬울 것 없고 언젠가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 지금 곁에 있는 인연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자유로운 코멘트 혹은 답신을 주세요!

오늘의 감상이나 떠오르는 것을 공유해주세요 😄

남겨주신 답장은 필진에게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