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16. 복학생(4)

많이 기다리셨죠... 늦었지만 돌아왔습니다🍻

2022.09.22 | 조회 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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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B는 술집에 앉아 A를 기다리고 있다. 핸드폰을 켜보니 벌써 30분이 지났다. 대학가에서 고작 10분 거리에 살면서, 뭐가 이리 오래 걸리는지... B는 못마땅한 기분에 혀를 쯧, 차고 강냉이를 두어 개 주워 먹었다. 모서리가 깨진 얇은 나무 그릇에 담긴 강냉이는 어느새 옥수수 알갱이만 남은 채였다. B는 구석에 놓인 강냉이 봉지에서 한가득 강냉이를 펐다. 벌써 세 번째였다. B는 슬슬 눈치가 보여 맥주를 한 병 꺼내왔다. B는 다시 자리에 앉아 강냉이를 주워 먹으며 숟가락으로 병맥주를 땄다. 뚜껑이 날아가 옆 테이블 여자에게 맞았다. 자신을 휙 돌아보는데 별로 B의 스타일이 아니다. B는 자신에게 눈을 흘리는 여자를 같이 흘겨본 뒤 맥주를 병에 따른다.

 

때마침 A가 술집에 도착한다. BA에게 한 손을 들어 보이고, AB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미 후배들로부터 과잠남(커뮤니티에서 A에게 사람들이 붙인 별명이다)A라는 사실을 알게 된 터라 그 여파이겠거니, 하고 만다. BA의 술잔에 맥주를 따르며 슬쩍 그의 눈치를 본다.

 

- , 드실래요?

- 맛있는 거 시켜, 형이 쏠게.

- ~ 정말요? 그럼 저 치킨 먹어요?

- 치킨이랑 국수도 시켜. 나 국수 먹고싶다.

- . 주문하고 옵니다~

 

B는 가벼운 걸음으로 메뉴 주문을 하고, 강냉이를 한 바가지 더 퍼 온다. AB는 이 술집에 올 때마다 11강냉이를 놓고 먹는 버릇이 있다. A는 여전히 조금 멍한 상태다. BA의 어깨를 툭툭 치며 강냉이를 앞에 놔 준다.

 

- , 남자가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오히려 멋있어요, 고백하는 거.

- 고백?

- 오늘 꽃 갖다 준 게 형이라면서요. 요즘 것들은 낭만을 몰라. 과잠은 과방에 놔뒀는데... 내일 갖다 드릴게요.

- , 고맙다.

 

  Photo by Matthew Sleeper on Unsplash
  Photo by Matthew Sleeper on Unsplash

A는 무의식적으로 강냉이를 하나 둘 집어 먹는다. BA을 부추겨 풀 스토리를 듣고 싶어 근질근질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AB가 잔을 비우자 곧바로 맥주를 한 잔 가득 따라준다. 맥주가 떨어지자 다시 한 병을 가지고 와 숟가락으로 뚜껑을 딴다. 다시 옆 테이블로 날아갔다. B는 아까의 여자가 있겠지 싶어 힐끔 보는데, 그새 테이블이 회전되어 덩치 좋은 남자가 앉아 있다. 체육 전공인지 상당한 어깨의 장정 셋이 앉아 있다. 병뚜껑에 제대로 맞은 듯, 한 명이 인상을 쓰자 A는 재빨리 무해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헤헤 웃으며 허공에 손을 모으는 동작까지 보이자 세 남자는 다시 그들의 대화에 집중한다. 그런 B를 물끄러미 보던 A가 문득 혼잣말처럼 말을 내뱉는다.

 

- , 고백했다. 이소연한테.

- ?!!!!

- 근데 걔 친구가 전화 대신 받아서 X나 뭐라고 하던데? 어이가 없어서. X 이름 뭐냐? 싸가지 없이.

- , . 걔 원래 싸가지 X나 없기로 유명해요. 근데 얼굴은 예쁘니까 다들 넘어가 주는 거지. 여자들은 좋겠어요~ 얼굴 예쁘면 인생 X나 편하잖아.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예쁜 X도 만날 수가 없고. 다 돈 밝히잖아요. 더러운 세상.

- 근데 나 걔 봤다? 겉담배?

- 겉담배? ! 저번에 걔?

- , 다시 보니까 예쁘게 생겼던데.

- 예뻐도 담배피면 별로. 아니다, ... 잘 놀 것 같죠? 쉬울 것 같기도 하고?

 

B가 키득거리며 하는 말에 A는 내심 기분이 상한다. 방금 골목에서 마주친 겉담녀는 담배는 피우고 있지만 무척 순수해 보였다. 짙은 화장도 하지 않고, 푹 파이거나 짧은 옷을 입지도 않은, 청순한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래, 담배는 기호 식품이니까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저속한 농담을 하며 낄낄대는 B를 경멸의 눈으로 보았다. 나는 너와 다르다. 너는 사랑도 모르는 저속한 놈이고, 나는 진짜 사랑을 할 줄 아는 어른이니까.

 

B의 시시껄렁하고 질 낮은 농담에 웃으면서도(솔직히 웃기긴 했다, 물론 여전히 B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A는 용기가 없어 말 걸어보지 못하고 떠나보낸 겉담녀를 계속 생각했다. 눈이 마주쳤던 순간, 그녀의 눈빛도 흔들린 것 같았는데. A는 마음이 다시 부풀어 오름을 느낀다. 다시, 심장이 뛴다.

BA와 이야기를 하던 도중 A가 점점 자기만의 세계로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금 이야기한 겉담녀 때문이겠지? 대단한 사랑꾼인 척 하지만 저 형도 결국 같은 남자에 불과하다. 걔가 쉬워 보여서 저러는 거겠지. 사실은 본인이 먼저 찜해 놓았는데, 영 거슬린다. B는 새삼스럽게 A를 찬찬히 뜯어본다. 그냥, 안경 돼지네. 차라리 나처럼 마른 게 낫지. B는 벌써 이긴 기분이다.

 

 

 

 

 

 

 

 

당신의 심심한 목...요일에 까먹을,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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