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41. MEMENTO MORI

(명사) 죽음의 상징-죽음을 상기시키는·경고하는 사물이나 상징-

2023.11.06 | 조회 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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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귤처럼 까먹는 줄글을 보내드립니다.

사는 것이 영 녹록치가 않네요. 그렇죠?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에게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저 또한 요즈음의 근황을 묻는다면 그리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부쩍 해가 짧아지고 추운 바람이 주저 없이 뺨을 훑고 가는 때가 오면 빚을 갚아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남아 있는 사람은 먼저 떠난 이에게 빚을 지는 셈입니다. 반드시 그들을 기억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이 여의치 않았지만, 심적으로도 글을 쓰는 일이 부담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감정이 과열되지 않으면서도 또 너무 삭막하지 않게 단어들을 엮어갈 수 있을까 고민했거든요. 감정에 치우쳐 주절거리는 일을 오래토록 반복해 왔습니다.

요즈음 나의 가족과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떠난 이들이 그리울 때 저는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Defying Gravity>를 듣습니다. 특히 두 번째 곡의 경우, 드라마 'Glee'Kurt 역을 맡았던 Chris Colfer의 솔로 버전을 선호합니다. 그의 깨어질 듯 여린 미성이 실은 단단하게 고음으로 뻗어나갈 때, 떠나보낸 이들이 마침내 중력을 벗어나 부피를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 같아서요.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무게를 매일 지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종종 버겁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도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해 버렸구나, 라는 비탄 섞인 깨달음으로 이부자리에서 뭉그적대는 경우가 많은데요. 또 가끔은 도통 움직일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슬픔은 늘 무기력을 동반하니까요. 그럼에도 우리가 무심코 잊는 이들을 떠올리자면 원래보다도 더 무거운 부채감으로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어집니다. 열심히 살고, 자주 떠올려야죠. 우리는 빚을 졌으니까요.

고등학생 때 논술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신문을 따라 읽었는데요. 그때 신문을 읽으며 느낀 점은 '너무 부정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실은 여기저기 기워야 할 곳이 많은 누더기 같은 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어요. 왜냐하면, 저에게는 당연한 것처럼 주어진 울타리가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가여워하게 키워졌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불합리하잖아요. 또 그때의 저는 얼마나 어리고 어리석었는지요. 괜한 자존심에 신문은 또 며칠 만에 덮어놓고 읽지도 않았습니다.

 

  Unsplash, lilartsy
  Unsplash, lilartsy

지금은 제가 얼마나 눈을 가리고 있었는지 여실히 깨달은 상태입니다. 짙게 드리워져 있던 가림막을 하나 하나 치우고 나니 신문을 앞에 두면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비뚤어져서 굴러가고 있는지를 매일 목도하고, 결코 잊으면 안 될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습니다.

저는 2014년 4월 16일 이후 왼쪽 손목에서 노란 팔찌를 빼본 적이 없는데요. 용케 끊어지지 않고 깨끗한 상태로 잘 끼워져 있습니다. 그리고 자주 걷어냅니다. 무책임하고 어리석은 권력자들이 드리운 장막을요. 물론 가려져 있는 상태가 안락하겠죠, 인간답게 살 수는 없겠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공감 지능으로 나와 우리가 효과적으로 지낼 수 있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벌써 10주기를 바라보는 와중, 우리는 얼마나 달라져 있나요? 거짓 슬픔이 스치듯 나타나거나 그마저도 꾸며내지 않는 무성의함이 가상의 물결에서 일렁입니다. 문득 그들의 얼굴을 보노라면 욕지기가 치밀 때도 있습니다. 나의 무력함이 슬프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꿈이 갈수록 비범해집니다. 어릴 때부터 존재감 없이, 어디에서나 있는 듯 없는 듯 희끄무레했던 것을 떠올리면 다소 놀라운 변화일 겁니다.

저는 매일 아침 억지로 눈을 뜨고 하품을 끊임없이 하며 버스에 오르는 노동자입니다. 도저히 제 힘으로는 멎지 않는 글을 쉼 없이 써대는 창작자이기도 합니다. 이따금 글을 쓰는 일이 왜 좋은지, 저마다 글을 자주 쓸 수 있을 법한 방법은 무엇인지 안내하는 가이드이기도 합니다. 내 주위와 전혀 알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은 한 여성입니다. 우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살고 있어요.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매일을 지겹도록 살아내고 반드시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또 누군가의 스러짐을 가끔은 떠올리며 적요한 시간을 가져 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울타리가 충분히 튼튼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이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 작은 울타리들이 늘어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간혹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누구든 탓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그 손가락 끝이 서로에게 향하게 됩니다. 스스로를 갉아먹거나 비슷한 눈높이의 상대에게 언성을 높일 때, 우리 눈앞에는 짙은 장막이 일렁입니다. 반드시 그 장막을 피해 맑은 눈을 뜨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맑은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할 테니까요. 바람이 거세게 불고 비가 오는 동안 당신이 보송한 상태로 따끈한 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졌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얼추 끝나가고 있네요.

 

고맙습니다.

또 만나요.

 

 

 

 

 

 

 

 

원래 에세이를 쓸 때 몇 시간, 혹은 하루를 넘기지 않는 편인데

이 글만은 일 주일이 걸렸습니다.

뒤늦은 기억의 목소리를 보탭니다.

 

당신의,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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