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
매번 지각을 하는 아이가 있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데도,
발랄한 종소리가 울린 다음에야 허겁지겁 교실에 들어서곤 했다
그 아이의 자리는 내 앞이었다
휑하니 비어 있던 곳이 그 아이로 채워지면
무심결에 그 뒷모습을 빤히 응시했다
그 아이가 야무진 뒤통수와 동그랗게 똑 떨어지는 어깨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오롯이 나 뿐이리라 생각하면서
/
초조하게 시계를 본다. 미닫이 문도 본다. 둘을 번갈아 보다 보면 마침내, 요란한 드르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 애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요란하게 자리로 뛰다시피 온다. 그 애는 내 앞자리에 앉는다. 까만색 가방이 눈 앞에서 요란하게 흔들리다가 의자 등받이 위에 양 어깨를 올리고 자리잡는다. 그 애가 자리에 앉아 호흡을 고르기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 종소리가 울린다. 나는 비로소 평온하게 읽던 책을 마저 읽는다.
내 아침의 루틴은 그 애를 기다리는 것이다. 눈 앞에 책을 펼쳐들고 있기는 하지만 한 번도 집중해서 읽은 적이 없다. 그 애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책을 거꾸로 들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그 애는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산다고 했는데-지각을 자주 해서 혼날 때 선생님이 하신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찍 오는 일이 손에 꼽을 정도다. 용케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오기는 하지만, 대개 아침 조회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 가끔, 어쩌다 한 번쯤 뒤로 돌아 나에게 아침 조회 내용을 물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심장이 터질 듯 뛰는 것을 들킬까 봐 일부러 더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곤 했다.
그 애는 수업 시간에 대개 존다. 처음에는 바로 앞에 앉아서 하루 종일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거슬려서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 문득 그 애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지나칠 정도로 동그래서 신기했다. 마치 모난 부분을 두고 못 보는 고집스러운 장인이 며칠 밤낮을 새 가며 깎아둔 것처럼.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동그란 두 어깨가 퍽 귀여웠다.
이후로는 뻔한 이야기다. 처음에는 어깨를, 그 다음에는 역시나 동그란 뒤통수를, 이마를, 콧망울을, 손가락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의 집합인 그 애도. 어릴 때 엄마 몰래 동네 강아지를 매일 보러 갔던 그 마음처럼. 그 동그랗고 귀여운 것이 마음에 버겁게 남았다. 이제는 강아지 대신, 툭하면 그 애가 떠올랐다. 동그랗게 웃고, 동그랗게 말하고, 동그랗게 움직이는 그 애. 강아지가 따끈하고 작은 혀로 내 코를 핥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어떤 존재에게 듬직하고 싶었는데 그 애에게도 그랬다. 내가 그 애에게 미더웠으면.
그 애의 뒤통수와 어깨를 보다가 하교를 하는 길은 무척 쓸쓸했다. 간혹 그 애와 같은 동네라면 좋을 텐데, 생각하다가 수줍음에 몸서리를 치는 나날이었다. 곁에 있으면 뭐, 말이라도 걸 건가? 생각만 해도 우습다. 혼자 씨익 웃다가 누군가 내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휘청했다.
- 뭐냐, 비실거리긴.
곰살맞게 웃는 그 애가 보였다.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는데 그 애가 내 얼굴 앞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어 동그란 눈과 정면으로 맞부딪혔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태어나 처음 겪는 아찔한 감각이었다.
- 너 누리 오빠 동생이라며? 그래서 그런가, 키 크다.
- 응... 김누리, 우리 오빠야.
그 애는 김누리 이야기를 하며 스스럼없이 팔짱을 꼈다. 설마 김누리를 좋아하나? 철렁하는 마음에 그 애를 보니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김누리가 저를 놀리고 괴롭혀서 귀찮다고 했다. 그 말에 웃음이 났다. 김누리, 보는 눈 있네.
- 김누리가 너를 좋아하나 봐.
- 으, 말도 안 돼!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자 그 애가 나를 물끄러미 보았다. 내 웃는 얼굴은 처음 봤다고, 예쁘니까 자주 웃으라고 했다. 심장이 거침없이 곤두박질쳤다. 이 애는 뭘 믿고 이렇게 말갛지? 정말이지 무참한 기분이었다. 조금 슬펐고, 많이 좋았고, 약간 불안했다.
내 첫사랑은 나를 하염없이 돌팔매질하는 존재였다.
일 주일에 한 번, 종잡을 수 없는 글을 띄웁니다.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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