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귤레터] 02. Fantasy 1

오늘은 단편 소설입니다. 분량 조절 실패로 다음에 이어집니다!🍭

2022.06.15 | 조회 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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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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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창문 열지 말랬는데.

속삭이는 말은 아이들의 소음 사이로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별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열린 창문으로 거센 바람이 들어와 커튼이 크게 부풀었다. 창가에 앉은 아이들이 와, 소리를 질렀고 어수선한 분위기에 반장의 미간에 주름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때였다. 창가에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커튼은 도로 잠잠해졌고, 아이들은 그제야 일사분란하게 창문을 닫았다.

 

흥미거리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또 금방 서로에게 집중했다. 시덥잖은 이야기로 낄낄 웃으며 무료한 수업시간이 다가오는 것에 온몸으로 저항하는 중이었다. 나 또한 그랬지만 누군가와 시시껄렁한 대화로 낄낄대는 건 질색이었다. 공연히 창가를 보았다. 분명, 반짝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때였다.

또다시, 반짝. 또, 반짝. 또또, 반짝. 이상한 점이 있다면 점점 내게 가까워진다는 것 정도?

"안녕?"

"어?"

대뜸 다가와 말을 거는 애는 어느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연습생이라는 우리 반 한새리다. 가까이서 봐도 피부에 흠결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잠시 멍하게 새리를 올려다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얘가 나를 알던가?

"네 손 안에 있는 거, 나 줄 수 있어?"

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얘가 내 이름을 안다는 것도 놀랄 일이지만, 집도 잘 산다는 애가 이토록 애절하게 바랄 정도로 귀한 것을 내 왼손이 쥐고 있을 리가 없다. 새리가 가리킨 손은 정확히 내 왼손이었고, 오른손에는 볼펜이 쥐여있을지언정 왼손은 맹세코 아무 것도 쥐고 있지 않은 맨주먹이었다.

"나, 아무 것도..."

이상하다. 결백을 증명하고자 왼손을 쫙 펴보려고 했는데, 그 간단한 동작이 묘령의 존재에 의해 거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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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한새리는 커다랗고 예쁜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고, 점점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이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 왼손을 펴 보이는 것만은 하고 싶지가 않다. 정말, 이상하게도.

"나 아무 것도 없어, 새리야."

"거짓말."

"정말...인데?"

"...나은. 거짓말 잘 하는구나."

새리는 생긋 웃으면서 감탄스럽다는 듯 말했다. 새리와 눈을 맞추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긋한 말투, 표정과는 달리 새리의 눈에는 전에 없던 싸늘함이 서려 있었다. 얘 무섭네. 반발심을 무기 삼아 새리의 눈을 마주 보았다. 왼손을 더 단단하게 움켜쥐고. 새리는 잠시 나를 보다가, 꾹 쥔 왼손을 한 번 보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긴장이 풀렸는지 비틀거리는 다리를 겨우 움직여 복도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아, 일단 화장실로 들어갔다. 전등이 고장났는지 위쪽에 난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외에는 어두웠다. 나는 얼른 칸 안으로 들어가 왼손을 펼쳤다. 이번에는 저항 없이 순순히 손바닥이 보였고, 손바닥 가운데에는 기기묘묘한 빛을 은은하게 뿜는 생명체가 있었다. 뭐? 생명체? 나는 깜짝 놀라 왼손을 털어버렸고, 그 생명체는 금세 균형을 잡고 허공에 떠올랐다.

 

조막만한 날개를 이용해 내 시야각 안으로 들어온 생명체는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으로 첫 인사를 건넸다. 이것은 나와 녀석의 첫만남이었다.

 

 

 

당신의 심심한 수요일에 까먹을 간식,

줄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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