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내게 피하고만 싶은 상태였다. 홀로 있다는 것. 그것만큼 두려운 게 없었으므로. 나는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와 꼭 함께 있어야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TV없이는, 혹은 누군가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하는 사람. 나는 혼자인 시간을 잘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의 성장은 얼마나 고독 속에 잘 스며드냐에 따라 달라진다. 고독을 사랑하고 난 후에는 고독을 경멸하던 때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 고독은 방황하게도 하지만, 또한 방황을 마주할 수 있게 하므로. 그래서 나는 이제 고독을 떼어놓은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때때로 삶에서 치열한 고독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가령 무언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그것은 꼭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나는 퇴사 후 꽤 느슨한 고독 속에 지냈다. 혼자 있으면서, 혼자가 아닌 시간들. 하루종일 네모난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갔던 날들. 내면의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영상과 그에 따른 도파민의 과분비는 치열한 고독을 방해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육체는 홀로 있을지언정,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느슨한 고독은 오히려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
내가 생각하는 치열한 고독이란, 책에 깊이 빠져드는 행위 혹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는 일에 속한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들은 그런 순간을 결코 오래 누리지 못한다. 언제나 정신을 방해하는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느슨한 고독에 중독된 이들은 자신을 향해 가는 길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상태인지 모른 채로 평생을 살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 앞에 앉은 이에게서 나는 향기, 웃을 때 더 작아지는 왼쪽 눈, 생각에 잠길 때면 나타나는 그만의 표정 같은 것들을 놓친다. 그리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면은 언제나 소란스럽기만 하다.
나는 혼자 있기를 원했으나, 혼자 있기를 실패했다. 내가 혼자 한 모든 행위를 SNS에 올려두고,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하며, '나는 이만큼 '치열한 고독'을 보낸 꽤 괜찮은 사람입니다'를 시전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정말로 치열한 고독이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닌, 내가 보내는 나와의 시간에 흠뻑 빠져 SNS에 올릴 생각조차 않는 상태 임을 알면서도 나는 그 행위를 놓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고독을 두려워하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완전한 자기자신에 가까워진 이들은 치열한 고독을 습관으로 만든 이들이었다. 나는 그렇지 못한 인간이니, 여전히 그 길이 멀게 느껴질 수밖에.
가지각색의 피로함이 나를 엄습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쇼핑 생각, 잔뜩 사랑 받고 싶은 마음, 넘쳐나는 일들, 해야할 일과 해야만 할 일, 지나간 과거를 비롯한 다가올 미래에 관한 쓸데없는 걱정과 같은 것들. 나를 가득 채운 쓸모 없는 것들의 향연이 치열한 고독에서 나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이 내 안에 '있음'을 관조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직시하며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간다.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며, 요가를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행위들을 하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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