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의 종류는 다양하다. 관계에서 오는 상처, 내가 나에게 스스로 새긴 상처, 바람과 다르게 흘러가는 삶에 대한 배신감으로부터 오는 상처. 그것 말고도 인간은 다양한 경로로 상처를 받는다. 한 상처가 아물면 귀신같이 새로운 상처가 생겨나고, 그 새로운 상처가 아물 때쯤 또 다른 상처 받을 일이 뚜벅뚜벅 걸어온다. 거인과 같은 투박하고 무시무시한 걸음으로 나를 찾는다. 나는 삶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맑은 날 두둥실 떠가는 구름처럼 살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삶은, 나의 바람을 가뿐히 짓밟고서 새로운 상처들로 마구 나를 헤집고 지나갔으며, 무심한 듯 흘러갔다.
요즘처럼 편안한 날은 드물었다. 편안한 듯 공허한 상태에서 나는 지나간 날을 톺아본다. 상처의 돌들은 저마다의 모양을 지녔다.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뾰족하고 날카로운 돌 사이 둥글고 반짝이는 자갈 같은 돌이 가만히 자신의 존재를 뽐낸다. 어떤 날카로운 돌을 집는 순간, 나는 또 베이고 만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 돌을 다듬는 건, 내면의 힘과 그동안 내가 상처들을 다스려왔던 방식에 달려있다. 어떤 돌은 여전히 나를 아프게 하지만, 그 돌을 다듬을 조각도를 가지고 있는 건 내가 아닌 그 누구도 될 수 없다. 나는 상처라는 돌의 조각가. 돌은 예술품이자, 나와 타인을 향한 무기다.
누군가를 죽일 듯이 미워한 적이 몇 번 있다. 나는 미움의 칼로 돌을 조각했고, 돌은 더욱 날카롭고 예리한 창의 모양으로 거듭났다. 창의 끝은 대상이 아닌 나를 향했고, 나는 자주 그 끝에 베이고는 했다. 모든 자의식을 내려놓다시피 하고, 내가 가진 쓸모없는 자존심과 이기심 같은 것들을 전부 끌어내린 후,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 나는 용서의 칼을 들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용서의 칼로 조각해나간 돌은 마침내 둥글고, 빛나는 돌이 되었고 나는 그 후로 미움의 칼보다 용서의 칼을 조금 더 자주 들게 되었다. 여전히 나는 종종 미움의 칼을 들지만, 마지막에는 용서의 칼을 들고야 만다. 한 인간의 성숙이란 이렇게 이루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렇게 뾰족하고 예리한 창과 같은 돌 대신 둥글고 빛나는 자갈 같은 돌이 내 삶의 주춧돌이 되어주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어느새 삶의 기둥 아래 견고하게 자리 잡았다. 내 삶에 그런 상처와 다듬는 경험의 과정이 없었더라면, 삶의 기둥은 자주 흔들리고 붕괴되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주춧돌은 기둥 밑에 기초로 받쳐놓는 돌이다. 쉽게 말해 하중을 받치는 역할을 하는데, 이게 없으면 기둥이 바닥으로 꺼지는 현상이 생기고 어떤 구조물이 붕괴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주춧돌이라 한다. 내 삶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다양한 주춧돌이 있으나, 나는 상처로 인해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진 주춧돌이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상처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마음에 병이 들어 시들시들 말라가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상처라는 돌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그 돌은 결국 자신을 해하는 무기가 되고 만다. 상처가 주춧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 상처 앞에 더는 숨지 말고, 고개 숙이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볼 것. 용서와 자비, 사랑과 같은 조각도로 세심하게 깎아나갈 것. 내 인생은 상처라는 견고한 주춧돌 위에 새겨진 반석과도 같은 것. 예민하고 상처 입기 쉬운 성정으로 태어난 내게, 삶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조각도를 쥐여주었다. 언제나 삶은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나를 다룬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서 여실히 느끼게 된다. 앞으로 굴러들어 올 그 어떤 투박하고 무거운 돌들일지라도, 나만의 조각도로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다듬어내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그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힘이 우리 모두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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