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커피처럼 기호식품이라는 것을 불현듯 깨닫게 된 시점이 있었다. 얼마 전, 나는 언제나처럼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 내가 정성 들여 내린 드립 커피였다. 한때는 캐러멜마키아토 아니면 모카 말고는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막 카페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카페베네를 비롯한 엔제리너스 매장이 우리나라에서 막 물꼬를 튼 시점이었다. 그때 가장 좋아했던 메뉴는 카페모카였는데, 양껏 쌓아 올린 휘핑크림과 약간의 쓴맛 뒤에 오는 달달한 초콜릿 맛이 좋았다. 사실 커피 특유의 쓴맛이 거의 안 느껴져서 좋았던 것. 커피를 마신 다기보다 커피 맛이 나는 음료를 마신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고단하게만 느껴졌던 대학 시절. 한참 국시 공부에 골몰해있을 때 한 잔의 카페모카는 마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당이 너무 많이 들어간 커피는 마시지 못하게 됐다. 그렇게 좋아하던 바닐라 라테, 아인슈페너, 크림 커피 같은 것들은 아주 가끔만 즐기게 되어버린 것이다. 커피를 마시면 마실수록 커피 본연의 맛이 더 좋아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달달한 커피였다가 다음으로는 당이 첨가되지 않은 일반 라테였다가 지금은 아메리카노 아니면 드립 커피, 혹은 플랫 화이트를 가장 많이 마신다. 술도 마찬가지다. 술을 몰랐을 때는 그냥 남들이 먹는 대로 소주를 마셨다가 그다음으로는 소맥에 빠졌다가, 지금은 와인이나 위스키를 즐겨마시게 되었다. 술도, 커피도 취향이 생겨버린 것이었고, 그것은 책에도 예외가 없었다.
책을 전혀 읽지 않을 때는 읽기 쉽고 재밌는 판타지 소설 아니면 아주 가벼운 에세이들을 즐겨 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다양한 책들에 관심이 갔고 지금은 고전 소설 아니면 인문학, 심리학 같은 책들에 관심이 많이 간다. 확실한 사실은 더는 예전과는 같은 책을 읽기가 힘들다는 것인데 너무 깊이가 없고 가벼운 책들은 읽을 수가 없어졌다. 우선 그런 책들에 더는 흥미가 가지 않는다. 진부한 이야기, 정확한 메시지가 없는 이야기, 맥락 없는 이야기, 아무런 통찰 없이 그저 감정적이기만 한 책들은 읽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꼭 그런 책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카페모카나 마키아토가 건강에 안 좋다고 해서 꼭 나쁜 것은 아니듯이. 종종 그런 책이나 커피가 당길 때가 있을 뿐.
다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내가 그것들을 얼마나 꾸준히 접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 가볍고 감성적이기만 한 책도 어느 순간에는 분명 힘이 되어준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내게 그 책이 맞았던 것일 뿐. 좋고 나쁨은 없다. 나는 점점 나만의 취향이 확고해지고, 신념과 가치관들을 내 삶의 기준에 맞게 다져나가는 중에 있다. 전에만 해도 남들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 하는 사람이었던 반면,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싶지만, 후회해 봤자 달라지는 것은 없으므로 지금이라도 달라져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산다. 오히려 옛날에는 심오하고 이해할 수 없는 책들을 싫어한 적이 있다. 특히 역사에 관한 책이나, 타인의 아픔을 낱낱이 파헤친 책이면 더 기피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런 책들을 더 가까이하게 된다. 내 삶이 팍팍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공감할 시간 따윈 없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내 삶을 더 위태롭게 만드는 생각들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그때의 나는 간장 종지보다도 못한 마음의 그릇을 지닌 한 인간이었으므로, 삶의 의미나 행적, 혹은 더 심오한 것들을 다룬 책을 읽기가 불가능했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릇의 크기를 넓혀가고 있다. 원하는 그릇의 크기만큼 늘리려면 수없이 많은 상처의 경험들과 나를 겸손케 만드는 경험들을 반복해야 할 테지만, 여전히 나는 쉽고 편안하게만 살고자 하는 욕망에 갇혀 있다. 내 욕망들은 어찌나 크고, 많고, 다채로운지. 나는 그것들을 헤아리는 데만 해도 숱한 시간들을 소요했다.
인간은 어떻게든 변화하는 존재이니, 또 어떤 식으로 취향이 바뀌고 어떤 책이나 커피를 좋아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미래의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런 것들을 즐기고 있을지 상상해 보는 일은 꽤 즐거운 일이다. 나는 기호식품과 같은 것들이 좋고, 그것들은 나를 충분히 즐겁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도 좋아할 무언가가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나 마찬가지다.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는 게 없어져서 무기력해지고, 우울감에 빠져들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기호식품 같은 것들이 다양하게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삶이 언제나 열정적이기를 원하는 건 아니지만, 주어진 삶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다. 나는 삶이 좋다. 삶이 주는 다양한 경험이 좋고,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좋다. 내게 여전히 즐거움과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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