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평온하고 단조로울 때. 행복에 겨운 상태이거나 충만함을 느낄 때. 깊은 고요 속, 홀로 기쁨을 느낄 때는 글을 쓰지 않는다.
분노와 고통, 슬픈 마음을 가눌 수 없을 때. 감정이 북받쳐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공허하고 쓸쓸함을 감출 수 없을 때 나는 주로 글을 쓴다.
그 어떤 것으로도 마음을 가누지 못할 때, 나는 오직 글로써 마음을 다스린다.
내게 글을 쓴다는 건 영혼을 가다듬는 일이다. 어둡고 잡다한 것들로 영혼을 가득 채운 날이면 주저없이 글을 쓴다. 날카롭고 들쭉날쭉 모가 난 나의 영혼은 글을 씀으로써 조금씩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다. 둥글고, 매끈매끈하며, 부드러운 영혼 본연의 결을.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뾰족하고 날카로운 인간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글은 영혼을 가다듬는 동시에 불행에서 나를 건져 올린다. 불행은 스스로 만든 지옥이다.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오직 자신에게 달렸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 불행하기를 택한다. 그러는 편이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상황 탓을 하고, 주어진 운명을 원망하고, 상황이 알아서 바뀌어주기만을 바란다.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처를 가하며 그대로 놓아두기를 택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하기를 반복해왔고,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만든 불행에서 잠깐이나마 벗어날 수 있다.
언제나 글을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는 채 핸드폰 화면만을 들여다보기를 택한다. 화면 속에는 온갖 부정적이고,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들로 가득하지만 좀처럼 자각하지 못한다. 화면 속에서 얻을 수 있는 빠른 자극과 쾌감은 서서히 영혼을 잠식시킨다. 정확히는 부식시킨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늘 글보다 후자를 택한다. 역시 그게 훨씬 편하고 쉬운 길이므로. 글을 쓴다는 건, 쉽지 만은 않은 일이니까. 마음을 정돈하고, 집중력을 한데 모으고, 어떤 단어와 문장들을 쏟아놓을지 몇 번이고 고민해야하므로. 글이 술술 써진다는 누군가를 볼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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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면 오직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다. 다른 것들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다른 무엇도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글을 쓰는 이 순간만이, 글을 끝내야만 한다는 마음만이 가득할 뿐이다. 이 짧고도 긴 시간을 가지지 못해 허비한 날들이 수두룩하다. 부식된 영혼을 그대로 방치해 둔 날들이. 나는 써야만 낫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내뱉고, 토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 겉보기에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보이지 않는 곳엔 많은 감정 덩어리와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쌓여만 간다. 글을 쓴다는 건 분리수거와도 같다. 내가 쌓아온 쓰레기 더미들을 하나 하나 분류해서 버려두는 일. 어떤 글은 리싸이클링 제품과도 같다. 쓸모없다고만 생각했던 버려진 기억들로 완전히 새로운 글을 써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글을 써서 해가 되었던 적은 없다. 글이 내게 해를 가할 때는 거짓이 섞였거나,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상처주려는 의도가 섞였거나, 자기과시로 만연한 글을 쓸 때다. 한참 감정에 취해 그런 글들을 쓰고 난 후, 다시 읽어볼 때면 낯이 뜨거워진다. 내가 쓴 글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면 주저없이 글을 지운다. 그런 글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도움도, 아무런 성장도 가져오지 못한다. 그 어떤 기쁨조차도.
여전히 글로써 밥 벌어먹는 일은 어렵게만 느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쓰는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밥벌이 외에 글쓰기가 내게 가져다주는 유익함이 훨씬 크니까. 밥이야 내가 하고 있는 일로도 충분히 해결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정신적인 문제는 다르다.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나의 정신적인 면들을 다스려주진 않는다. 오히려 직장이 해가 될 때도 있다. 그러나 쓰는 일은 다르다. 언제나 나를 불행 속에서 건져낸 것은 글쓰기였다. 한 줄을 쓰든 두 줄을 쓰든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어떻게든 쓰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귀찮음을 이겨내고, 편안함을 포기하고 써낸 글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특히 어렵고 힘든 순간에는 더욱.
매일 쓰고 싶다. 매일 쓰지 못하기에 매일 써내고 싶다. 일주일에 세네번 겨우 써내는 나지만,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노력해왔고,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매일 수련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아직 매일 무언가를 해내기에는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우러러보는 사람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을 조금은 객관적으로 직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무지하고 부식한 상태의 영혼에서 나는 온갖 교만을 떨며 세상을 다 아는 줄 착각하며 살아갔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 다행이다 싶다. 그런 상태로 살아갔더라면, 죽음 앞에 서서 얼마나 큰 후회와 부끄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왔을까 싶다. 내게 주어진 재능을 무시하지 않고, 지금껏 지켜낼 수 있도록 도와준 내 곁의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낀다. 글을 계속 쓸 수 있도록 해준 해준 몇몇 이들이 너무나 고맙다. 글을 쓴다는 건,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글은 나를 계속 살아가게 만든다. 삶을, 삶이라 부를 수 있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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