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의) 조우

금요일의 제목 없는 일기

2025.11.14 | 조회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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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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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하다.mail only.S2

무명 작가 조우가 유명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 직관하기.

1.

폭풍 같은 나날이 지나고 한동안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감사함. 여기서 말하는 감사함이란 별로인 삶에 일단 가져보는 기본값이 아니다. 진심으로, 온몸을 다해, 격렬하게 감사하는 중이다.

 

지금은 오전 9시 28분. 지저분한 베란다로 깨끗한 직선의 볕이 들어오는 중. 소파에 앉아 엄마 폰을 만지작거리는 여름이의 맨 다리를 뺨에 비비며 행복을 만끽했다. 식물이 되어 끝내주게 광합성하는 기분처럼.

 

태생이 비딱한 조우는 어찌 이렇게 깊이 감사하고 있는고. 그건 지금의 평온이 저 변덕스러운 아가에게 순전히 달려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잘 자주고. 잘 먹어주고. 잘 놀아주고. 아기의 급성장과 그에 따른 몸부림으로 언제든지 끝날 수 있는 평화라는 걸 알기에! 그래서 더 감사하다. 갈 때 가더라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다시 가져도 꼭 오실 것을 알고 있으니 미리 더 감사합니다.

 

 

2.

오전에는 주로 집을 치운다. 저녁에 치우고 자는 날은 드물다. 속으로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거실을 싹 치운다고 생각하는데 내 자아가 만들어낸 거짓부렁이다. 여름이가 잠들면 신나게 육아 퇴근! 을 외치며 이불로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 그러다 일에 발동이 걸리면 벌떡 일어나 방으로 향하고. 그러다 또 피로해지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작은 아이폰으로 마저 작업하고. 그러고 나서 미적미적 일어나 전날 못다 치운 방을 치운다.

 

엄마와 아기의 기상 시간은 동기화되어 있기에 어차피 어질러질 거실이긴 하다. 그래도 닦고 정리한다. 한 번은 잘 정돈된 꼴을 보아야 어질러져도 아쉽지 않다.

 

 

3.

그 사이사이 아침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 어제는 메일이 조금 늦게 갔는데 실은 오전에 다 써두고 오후에 보낸 것이다. 어제의 글은 늦은 밤에 읽어주시길 바라서 부러 발송을 늦게 보냈다. 다 써놓고도. 너무 늦나? 펑크 났다고 생각하시려나? 하다가.

 

 

4.

보통 글을 반쯤 써두거나 다 쓰고 첫 외출을 시도한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재우거나 잠을 안 자면 푼크툼까지 다녀온다. 어떤 날은 산책을 생략하고 집에서 내내 보내는 날도 있다.

 

그럴 때 조우는 씻을 힘조차 없어서 그냥 널브러져 불평하는 꼴이 되는데. 그 상태로 오후를 맞이하면 몸과 마음이 훨씬 나빠진다. 사람을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고 고심해 고른 옷을 입고 나가고 싶은(사실 늘 비슷비슷한 차림이지만) 마음이 나를 찌르는 것이다. 피로한 날이면 찔리는 줄도 모르고 그냥 고꾸라지고. 그런 이유로 하루 한 번에서 두 번의 외출은 생존 필수 전략이 되었다.

 

그렇게 외출하고, 점심을 먹고, 오후 외출을 또 감행하는 게 보통의 스케줄이다. 푼크툼에 가서 일단 테이크아웃을 한 후에 여름과 나의 컨디션이나 카페 상황, 혼잡한지 한가한지 정도를 파악하고 머무름의 여부를 결정한다. 여름이가 너무 활개치고 다니거나 그걸 통제할 엄마의 체력이 부족할 때면 일찍 올 수밖에. 어제와 같은 목요일 오후의 방문은 즐거웠다. 손님이 적고, 여름이를 이뻐해 주시는 아르바이트 누나가 계시고, 아기가 곧잘 아기 의자에 앉아 있는 날이면 오래 머무를 수 있다. 어제는 거의 두 시간 반을 있다 왔나 보다.

 

 

5.

여름은 무럭무럭 자란다. 아랫니가 거의 다 나온 상태고 못 하던 발음도 제법 한다. 크, 크, 크, 코, 코, 그런 걸 자주 연습하고. 우우 하고 노래도 부르고. 표정도 제스처도 다양해지고 있다.

 

엄마 된 입장에서 귀엽고 기특한 마음이 들기는 하나 이 안에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이 작은 인간이 이렇게 해서 크는구나, 온 세상 사람 중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인간이 없구나, 다들 이렇게 작았고 비슷비슷한 과정을 거쳐 말하고 듣고 표현하고. 그런 걸 직관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내게는 전생 같은 유아기 시절이 부모님에게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시간이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내게 그런 것처럼 그냥 슝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하루, 하루, 하루, 하루. 그렇게 천 일 이천 일 삼천 일 만 일이 지나서 다다른 게 지금이라는 것. 지금이었다는 것. 눈앞의 여름이가 지금 있는 것처럼 어린 나도 부모님 앞에 지금 있었다는 것. 그런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6.

어젯밤에는 에세이 원고를 모으다 잤다. 그간 참 많은 고민을 써놓았더라. 소설이 잘 써지던 날. 엉망이던 날. 뭐든 잘 될 것 같던 날. 뭣도 안 되던 날. 그런 글을 싹싹 모았다. 다 모은 다음 대표님과 방향을 함께 정할 것이고 그러고 나면 새 원고를 써서 채워 넣어야지. 분량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왜인지 벽돌 책 가능할 듯하다. 파이팅!

 

 

7.

그리고 조용하지만 큰 변화에 관한 이야기. 

 

어제 푼크툼에서 팬 레터를 두 개나 받았다. 하나는 직원분이 <누가 전해달라고 하셔서요>하고 카운터 아래서 꺼내 건넸다. 연필이 든 엽서였다. 푼크툼에 방문한 구독자 겸 친구 겸 이웃분이 맡기고 같던 거였다. 또 다른 하나는 카페를 나올 때 두 명의 여성분 중 한 분이 <팬이에요>하며 건넨 것. 너무 신이 나고 부끄럽고 기뻐서 '어머나 감사해요'하고 어리바리했다. 아오 이런. 얼른 따라나가서 손이라도 잡아드렸어야 했는데.

 

올해는 감사한 마주침과 만남이 잦다. 사람은 사람 없이 못 산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정신 건강 의학과에 내려고 쥐고 있던 돈을 아지트인 카페에 내고 있는 지금. 효과가 아주 좋다. 가서 좋은 사람들과 경쾌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낙엽을 줍다 올 뿐인데. 하루의 기운을 다 채우고 온다. 

 

 

8.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금요일의 사진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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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질이 왜 이러지!

 

블로그 글을 모으는 중인데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글과 관련이 깊은 이야기만 추리는 데도 한참이다. 2019년에 블로그를 한 번 옮겨서 2020, 2021, 2022년의 글만 있는데도 그렇다. 한 해에 300개 넘는 글이 있으니 거의 매일 쓴 셈이다. 쓰지 않은 날도 있고 하루에 두 번 쓴 날도 있다. 이 길고 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길. 어딘가에서 십 년 가까이 꿈을 지킨 사람의 일기가 쓸모 있길 바라며 작업하는 중이다.

 

 

9.

오늘은 금요일. 주말에는 쉬고 다음 주 월요일에 또 만나요. 원고는 원고이고 매일 돌아올 곳은 이곳이기에. 더 풍성한 이야기와 사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저는 어딘가에서 늘 쓰고 있으니 편한 만큼 머무르다 가셔요.

 

 

10.

그럼 정말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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