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와의) 조우

내 몸은 주로 이렇다

2025.08.03 | 조회 3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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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하다.mail only.S2

무명 작가 조우가 유명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 직관하기.

1. 

지금 내 몸에서는 악취가 난다. 진동하는 것까진 아닌데, 거의 그러려고 한다.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낮잠을 자는 동안 땀을 뻘뻘 흘려서 그렇다. 팔을 살짝만 들어올려도 쉰내가 나는 것만 같다. 오른쪽 쌍꺼풀은 없어지고. 샤워는 고사하고 머리도 못 감아서 제일 싫어하는 머리 스타일이 되었고. (정수리는 눌리고 아래는 자갈치처럼 뻗쳤다.) 아기 엄마로서는 좀처럼 누리기 어려운 긴 긴 낮잠을 잤음에도 몸과 마음은 여전히 흐트러진 상태다. 그리고 이게 다 그것 때문이다. 거르지도 않고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그것. 

 

2.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이고 대부분 한 명 낳는 시대에 꼬박꼬박 월경이 찾아온다는 게 어처구니 없다. 몸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어처구니 없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인 내 입장에서는 몸도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태생의 (혹은 태초의, 최초의, 초기의) 인간과 그만큼 멀어졌다는 의미일까? 아기를 가지고 낳고 기르고 모유수유를 한창 할 때는 <이제 처음으로 몸을 제대로 써먹는다!>는 느낌이 있었다. 왜 달려 있는지 사실 잘 모르고 지내는 몸 곳곳을 한껏 활용하는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새로웠다. 쓰잘데 없던 나의 몸이 이런 용도일 줄이야~ 하는 노랫말도 떠오르고. 딱히 사회에서 환영받지도, 쓰임이 있지도 않다고 생각하던 나인지라. 육체가 불러오는 그 강력한 쓰임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훌쩍 9수생이 되어버린 내게 임신 단기 합격은 자존감도 제법 채워주었다. 나도 한 번에 되는 일이 있긴 하네, 하고. 그러나 그 기쁨은 (여전히 내 삶을 관통하긴 하나) 당장 찾아오는 고됨에 잊히곤 한다. 

이제는 남성들도 흔히들 아는 사실일 거다. 월경 2주 전부터 시작되는 배란일, 그때부터 찾아오는 온갖 통증과 호르몬 변화로 인한 기분 장애, 그 외의 부수적인 것들을 포함하면 거진 한 달 중 반을 이 짓에 할애해야 한다. 상처받지 않고 다치지도 않았는데 그냥 몸이 아플 수 있다는 게 참 이상하다고 여겼던 게 몇 년 전의 일. 

하여간. 

새로운 스테이지를 열심히 깨면서 불쑥 시작된 월경은 맵의 난이도를 더 올려주었다. 확실하게! 책임지고! 올려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올라간 어려움은 폐경이 다가올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3. 

그러나 오늘은 한탄하려고 쓴 글은 아니고. 결론은 여기에 있다. 내가 왜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야 했을까? 결혼과 동시에 던져보기 시작한 질문이었다. 결혼하지 않는 것도 출산하지 않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려서, 그쪽을 선택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면 나는 왜? 왜 이런 선택을 했지? 좀 더 나아가서 고차원적인(?) 질문으로 올라가서 묻고 싶었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 다만 나는 마음에 드는 답을 찾지 못해서 계속 물었던 거다. 내 여러 욕구와 자기애와 예술성향, 소수욕구 (소수자가 되고 싶은 욕구) 등등을 채워주는 대답을 찾았던 거다. 

글은 그 답을 위한 것이다. 

나는 배우기 위해 이 장에 접어들었다. 때때로 괴롭다는 것은 배우고 있다는 것. 

부모님과 평택에서 살던 시절의 내게는 더 배울 게 없었다. 서른 살의 내가 가장 잘 알지 않았나.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나 내일부터… 뭐 하지? 자문했던 순간. 역시 나의 주님께서 이 어린양 마리나의 부름을 들으셨고! 바로 다음 단계로 나를 이끌어주셨다. (성당도 안 가면서ㅋ) 지금 느끼는 불편함 어려움 곤혹스러움 이물감 등등은 배움의 단계에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이제 조금 알겠다. 불편하고 싶은가? 그렇지는 않다. 배우고 싶은가? 성장하고 싶은가? 더 멋져지고 싶은가? 

네! 

그렇다면 계속 불편하거라. 

네ㅠ 

 

4. 

오늘 이 글은 이 조용한 웹진을 두드려주신 한 분을 위한 것인 동시에, 마음으로 두드려주신 여러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좀 더 귀여운 글을 써보고 싶었으나 오늘의 실시간 몸 상태가 이러하여 이런 글이 나왔다. 미리 써두지 않고 바로 지금 보냈기에 가장 지금다운 글이다. 왼쪽에는 에스프레소에 싱하 탄산수를 넣은 커피가 (의외로 맛있다), 오른쪽에는 가나 다크 초콜릿이 있다. 그 앞에는 아기 여름이 먹다 남은 우유 컵이 있고. 뜻밖에도 집에 혼자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하루. 두드려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이렇게 한 통 보낸다. 오랜만의 일이다. 블로그? 한글 2020? 이렇게 이메일로? 쓸 때마다 무엇이 다른지 고민해보곤 하는데. 확실히 이메일은 이메일만의 무언가가 있다. 왜, 내가 좋아하는 어떤 시에서 <키스의 진면목은 둘이서만 한다는 것>이라더라. 이메일, 이 메일은 지금 당신의 시공간에서 당신 혼자 읽는다. 블로그처럼 여러 사람이 왔다가지 않는다. 당신의 이메일함에 들어가면 당신만 읽을 수 있다. 백 명이 읽든 이백 명이 읽든 우리는 일단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것이다. 

 

5.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의 청주다. 흐리고 조용하다. 요 며칠, 조카들이 바로 앞 동인 어머님아버님 댁에 놀러와서 여름이도 자주 놀러갔다. 그제 어제는 나도 가서 놀면서 밥 먹고 왔고 오늘은 잠시 혼자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설렌다. 아기가 더 크고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면 나 이렇게 사는 건가? 어제처럼 조우 조각글 모음집 (이하 조조모집)도 계속 내고 메일링 서비스도 하고 유튜브도 하고.. 그렇게 사는 건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가경동 (청주 터미널이 있는 곳이자 반려인과의 데이트 장소)을 드나들고.. 

몸은 축 늘어지는데 이런 생각 때문에 조금 들떠보는 요즘이다. 

평생 이때를 그리워할 걸 알면서도 지금은 지나가고 있음에 즐거워하는 나라니. 이 모순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기분은 좋다. 

 

 

냄새 안 나고 산뜻했던 어느 날. 
냄새 안 나고 산뜻했던 어느 날. 

 

<끝> 

 

 

 

조우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uhnyer

조우 조각글 모음집 1호 * https://maily.so/chung.noon/posts/5xrx69k7r2v

조각글 모음집 1호 미리보기 * https://m.blog.naver.com/uhnyer/223956114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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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라사이다

    0
    4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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