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잡그사를 시작하며
일잡그사 - 일기와 잡지 그 사이 어디쯤.
매달 두 번, 일상과 여행에 대한 담백한 기록을 보내드립니다. 때로는 엄선된, 때로는 주절주절 ...
구독해주시면 수많은 스팸 메일 틈새로 재미진 소식 들고 찾아가겠습니다.
"다합의 3대 바보가 있어"
1. 아이다2 (프리다이빙 자격증) 못 따는 사람
2. 연애 못하는 사람 (?)
3. 비행기표 찢는 사람
비행기표 찢은 사람이 왜 바보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찢었기 때문입니다. 집 나올 때의 계획은 이집트, 베를린, 몬트리올이었는데 .. 베를린은 가지도 못하고 한 달을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차차 알려드릴게요.
"다합에 놀러왔냐" 분명 놀러왔는데 ... 이런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만큼 할거리가 많아 바쁜 곳입니다. 오죽하면 다합에 짧게 있는 사람들을 '다다맨'이라 부를까요.
[다다맨: 다합에서 제일 다급한 사람을 일컫는 말.]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
다합은 다이빙의 성지로도 알려져 있죠. 저 또한 프리다이빙과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3주간 물에 안 들어간 날이 손에 꼽습니다. 매일 훈련과 펀다이빙을 나갔어요. 지구 표면의 약 70%가 바다라는데, 바닷속이 편해진다는 건 꽤나 큰 이점 같습니다. 물 속은 또 다른 세상이거든요.
| 구분 | 프리다이빙 | 스쿠버 다이빙 |
|---|---|---|
| 호흡 | 숨 참기 | 공기통 사용 |
| 느낌 | 조용하고 단순 | 무겁고 안정적 |
| 힘든 점 | 귀압력 조절, 멘탈 컨트롤 | 장비 세팅, 중성부력 균형 유지 |
| 재밌는 점 | 몸만으로 깊이 들어가는 감각 | 오래 머무를 수 있는 탐험 느낌 |
| 추천 대상 | 명상 좋아하는 사람 | 관찰 좋아하는 사람 |
프리다이빙은 스포츠 같고, 스쿠버 다이빙은 레저 같습니다. 프리다이빙할 땐 마음껏 숨쉬는 스쿠버 다이버들이 부럽고, 스쿠버 다이빙할 땐 장비 없이 자유롭게 헤엄치는 프리다이버들이 부럽습니다.
세계 3대 난파선 다이빙 포인트, 시슬곰(SS Thistlegorm)
다합에는 블루홀, 캐년, 일가든 등 여러 다이빙 포인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시슬곰은 색다른 매력을 가진 곳이에요.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공습으로 침몰한 영국 화물선이 지금은 바다 밑 거대한 박물관이 되었답니다.
선체 안에는 아직도 오토바이와 트럭, 무기와 군수품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사이로 물고기 떼가 스쳐 지나갑니다. 녹슨 철골과 살아 있는 바다 생명들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곳이에요.
참고로 시슬곰에 들어가려면 스쿠버다이빙 경험 20깡 이상이 필요해요. 여기서 ‘한 깡’은 공기통 하나를 다이빙에 사용하는 단위를 뜻하죠. 그만큼 난이도 있는 포인트라, 준비된 다이버만 들어갈 수 있어요.
여행자들의 블랙홀 혹은 무덤이라 불리는 다합에는 특이한 이력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계여행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에 있다가 현실로 돌아가게 되면 멀미가 날 지경이에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 갈림길에 놓여질 때마다 갈팡질팡 고민하는 스스로에게 왜 더 단호하지 못하냐며 질책?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거의 여행 시작하자마자 큰 갈림길에 놓여버렸습니다. 아프리카 종단이라는 꿈을 미룬 상태로 나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기회가 찾아와버린거죠 ... 종이에 하나씩 적으며 생각을 정리하고 고민을 마쳤습니다. 결국 현재 케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네요.
.
.
.
—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기준은 뭐야?
여러 가지를 따져보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본능이야. 결과가 예상보다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겠지만 후회는 남기고 싶지 않아. 그 순간 내가 정말 원하면 ‘Go’,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해도 내가 원치 않으면 ‘No’야.
누구한테 물어봐도 답이 없는 문제들이 있잖아. “뭘 하면 행복할까요?” 같은 건 결국 본인만 알 수 있지. 그런 고민은 얘기 나눌 수는 있어도, 누가 답을 대신 줄 순 없어. 그래서 혼자 시간을 갖고 내 마음이 뭘 원하는지 들여다봐. 선택이 가져올 변화를 그려보고, 그대로 유지됐을 때의 삶도 그려보는 거지. 그중 변화된 삶이 더 기대된다면 도전해. 물론 터무니없는 미래가 아니라면 말이야.
주의할 건 본능과 충동을 헷갈리지 않는 거야. 충동은 지금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 착각할 때가 많아. 반면 본능은 계속해서 신호를 보내. 비슷한 고민이 반복된다면, 아마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거겠지. 난 늘 이런 식으로 본능을 따라왔고, 그걸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결과가 어떻든 내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해.
(정호열, 에디터의 스쿠버다이빙 버디1)
사이인터뷰.
호열. 단호하고 웃긴 사람. 태어나서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무동력 보트를 타고 김승진 선장님과 세계여행한 적 있으며, 현재 장기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다시 나왔다.
— 여행을 ‘숙제 같다’고 했잖아. 그게 무슨 뜻이야?
사람들이 “여행 참 좋아하시나봐요”라고 말할 때마다 나도 의문이 들어. 사실 난 여행을 좋아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준비하면서 크게 설렌 적도, 여정 중에 벅찬 감동을 느낀 적도 없거든. 그런데도 왜 계속 떠날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그걸 많이 고민했어.
결론은 나는 여행을 특별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야. 낯선 음식, 환경, 사람 모두 까칠한 나한테는 스트레스야.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내가 던진 농담이 실례가 되진 않을지 늘 신경 쓰이고. 사실 나는 큰 변화보다 소소한 일상을 지키는 게 더 즐겁다고 생각해.
그런데 나한테는 ‘성장 욕구’가 있어.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하루를 보내자”는 다짐을 자주 하지. 익숙한 곳에만 있으면 금세 안주할 것 같아. 하지만 여행은 늘 새로움과 불편함을 주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 나를 새롭게 알게 돼. 여행은 편안함과 불편함, 익숙함과 낯섦 속에서 내가 어떤 취향과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확인하는 시간이야. 그렇게 나에 대한 데이터를 계속 쌓아가는 거지.
그래서 난 편한 곳보다 불편한 여행지를 더 선호해. 힘들수록 얻는 게 많다고 생각하거든. 예를 들어 여행 중엔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즐겁기도 하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아. 그렇다고 피할 순 없으니 결국 부딪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나를 돌아볼 기회가 생겨. 예전엔 내가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도 날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그건 착각이었더라. 모두에게 인정받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그 속에서 늘 버거워했어. 이제는 그걸 알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해.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좋아하려고 애쓰지 않아.
여행은 그렇게 나의 오류를 찾고 수정해가는 과정이야. 문제를 풀다 보면 조금씩 이해가 깊어지듯, 그래서 내겐 여행이 숙제 같은 거야.
— 무동력 배 여행에 나서게 된 계기가 뭐야?
스물두 살에 자퇴를 결심하면서 마음먹은 게 있었어. 이십 대에는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보자, 그리고 서른이 되면 그중 진짜 좋아하는 한 가지를 정해 매진하자.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스물여덟, 경험은 쌓을 만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이십 대의 마무리로 세계일주를 가볼까 했어. 뭔가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근데 뻔한 여행은 싫었어. 나만의 방식으로 멋있게 다녀오고 싶었는데, 그때 우연히 김승진 선장님의 여행기를 알게 된 거야. 모든 걸 걸고 홀로 항해에 나선 그 도전이 너무 멋있어 보였고, 가슴이 뛰었지. “나도 내 모험을 시작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더라. 이후 몇 달 동안 선장님이 나온 방송, 강연, 책을 전부 찾아보고 나만의 모험 계획까지 세웠어. 마지막엔 감사 인사와 함께 조언을 얻고 싶어 메일을 보냈는데, 그날 저녁 바로 답장이 온 거야. 다음 날 홍대에서 만나 얘기까지 나누게 됐고, 그렇게 어찌저찌하다 보니 선장님의 배에 올라타 결국 크루로 합류하게 됐지.
* 무동력 배는 별도의 엔진이나 동력 장치 없이 자연적인 힘으로 움직이는 배이다.
.
.
.
- 2025/8/10 -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이 사람. 자녀들에게 들려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삶의 주도권을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 줏대 있게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닮고 싶은 부분. (...) 인터뷰하고 확실하게 느낀 것. 나도 역시 '내 일'을 해야 한다. (...) 올해까지는 하고 싶은 것 하고 내년에는 현실과 타협할 의향이 있었는데, 몇 년은 더 버텨봐도 되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이집트에서의 한 달
여행하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알게 된다는데, 저는 제가 알던 저와 요즘의 제가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습니다.
- 2025/8/? -
그러니까 나는 생각보다 무미건조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웃음과 눈물은 크로아티아의 노을이어서가 아니라 chris와 jeanne이어서, 포르투의 버스킹이어서가 아니라 선주여서, 바베큐여서가 아니라 아싸하우스여서, 거북이여서가 아니라 버디들이어서였던 것이다.
"다들 여행을 왜 해?"
S: 비커즈. 아이라잌유. 같이 여행하는 사람들때매 ^^
H: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하고 싶음. 안하는게 아까워 우리나라 너무 작아
L: 하고싶었던거라 못하면 평생 후회할 거 같아서. 먹고 놀고 돈 쓰는건데도 못하면 진짜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 같아서. 내가 막 시작하고 끝이 흐지부지 되는게 대부분이였어서 이번 여행은 잘 마무리 짓는게 목표야!
Y: 나는 새로운사람 만나서 다양한 얘기 들으면 즐겁더라궁 ㅋㅋㅋ
C: 제일 큰 이유는 내가 매체를 통해서 본 곳들, 들은 것들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경험하고 싶어서! 그렇게 다니다보니까 여행하면서 내 시야가 넓어지는게 좋아서 계속해서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찾아다니게 된 것 같아!
K: 난 새로운거에 도전하는걸 좋아하기도 하고 해외에 나가면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풍경들이나 사람들 경험들 이런걸 다른걸 통해서 보는게 아니라 내 몸으로 느끼는게 너무 좋아서 다니는거 같애
제가 사람 때문에, 또 사람에 의해 여행을 다닌다는 것을 새삼 깊게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동안 느낀 벅찬 감정이 무엇 때문인가 다시 생각해보니, 사람 98%이더군요.
일잡그사에 대해서는 부디 기대를 많이 하지 마세요. 그냥 하는 겁니다. 제가 전하는 정보가 스팸 메일과 다를 바 없을 수 있고, 저의 일기는 횡설수설에 부끄러운 흑역사가 될지 모르죠.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완벽한 것을 만들고 싶어 재료만 뒤죽박죽 쌓아두는 답답한 짓을 끝내고 '그냥' 하는 겁니다. 그럼 이만 다음 편으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달라.
P.S. 카이로 시와 카이로 다합 카이로 다합 요르단 다합 ... 망한 동선 대회에 참가하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
헤이
아 카도 빨리 한국 왔으면 조켓다.. 다합 얘기 하구싶다.... 아싸 하우스 얘기랑 망한 동선 얘기 백 번 듣구싶다..... 그리고 금방금방 새로운 창구를 찾아서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을 시도하는 카도가 느무 멋있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느좋이야 🪼
헤이
그리고 비행기 안 찢는 사람이 바보 아님? (나)
의견을 남겨주세요
나마에와
아 너무재밌다 한달에 두번!? 일주일에 두번 안되나요..? , 많은걸 생각하게하는 글이네요 다들 인생에 한번쯤은 여행의 바보가되어 가슴이 시키는 여행을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수도..?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