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빛바랜 애장품

2023.04.29 | 조회 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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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

어둑한 그 밤에, 적어둔 글을 들고 방문할게요.

나는 애완이라고 붙일 수 있는 것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애완동물들을 학대하고 방치하는 나쁜 예시들을 보면서 

난 내 자신에게도 관심을 주지 못하는 사람인데, 

 만약 애완으로 데리고 있는 그 존재가 생긴다면

그에게도 그 관심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집 앞에는 어릴때부터 여러 화분들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다육이는 물론이고 허브 종류인 바질이나 로즈마리,

유칼립투스, 벤자민 같은 것들이 있었다.

엄마는 장에서 화분 구경을 하면 꼭 하나씩은 데려오더니

내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 즈음엔

성인 두명이 누워도 될 크기의 화분 군락이 생겨버렸다. 

 

 

엄마는 구름이 없는 날이면 아침 7시즈음에 대문을 열고

화분들에게 인사를 하며  

자신만의 규칙으로 화분들을 옮겨주었다. 

그 이후엔 수도꼭지를 반쯤 열고선 물이 나오는 구멍을 엄지로 막아 

조그만 틈을 만들어 물을 뿌려주었다.

 

엄마의 등쌀에 못이겨

나도 가끔씩은 화분들에게 물을 주는 날이 생겼다.

한 달에 한 번쯤만 주던 물주기는 

점차 내 의지로 일주일에 한 번으로 늘어났다.

화분들은 자신들의 주기가 있는지 잎을 새로이 내기도하고 

영양소가 부족하면 제일 아랫잎의 수분을 빼내어 조금씩 말라비틀어갔다.

나는 물을 줄때마다

그 말라비틀어진 잔해들을 어릴 적 내이름을 적어둔

빛바랜 플라스틱 화분에 모아두었다.

왜인지는 모르게 그 잔해들을 마냥 흙으로 되돌려 주기 싫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욕심이었다는 걸 말해주고 싶었는지

그 것 색을 진하게 바꿔가며 조금씩 얇아지기 시작하다

결국엔 낙엽이 되어 날아가 버렸다.

 

18살이 되던 해,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바람부는 가을의 날씨가 찾아올때 즈음

평소와 같이 화분들에게 물을 주고

잔해를 모아다가 화분에 담자,

바람들이 그 잔해들을 다 데리고 날아가버렸다.

그 광경을 보고선

내 얼굴에는 삐쭉 빼죽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화분을 바라보던 고개를 홱 돌려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왔다. 

바람때문에 문은 더 큰 소리로 닫히고 말았다. 

문을 살살 닫으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 한채 곧장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고꾸라져 머리를 박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었다.

 

 

 

그 이후부터는 화분에 물을 준 기억이 없다. 

수능 공부를 하느라 바빠서 였는지, 

아니면 엄마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는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화분에 물을 준 기억이 없다.

 

 

그렇게 시간은 야속하리만큼 빨리지나가서

나의 나이는 서른을 앞두고 있다. 

나는 유통업계 회사를 다니며 직장에서 치이고,

연인에게 치이고, 친구에게 치이고 가족에게 치이는.

어릴 적의 꿈보다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끔씩 머리가 아파올때는

그 빛바랜 화분이 높은 곳에서 떨어져 깨지는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만으로도 나는 그때처럼 얼굴이 일그러져서

그 기분을 풀어내기위해 욕조에서 반식욕을 하곤한다. 

욕조 안으로 머리까지 집어 넣고선 그 감정을 씻어내려고 흔들어댔다.

왜인지모르게 그런날에는 반신욕을 해도 몸이 평소보다 건조했다.

화분의 잔해들도 나와 같은 건조함을 느꼈을까.

가끔식 본가를 찾을때면 그 화분이 잘 있는지 눈길로 확인한다. 

아무에게도 묻지않고. 그냥 그렇게 깨지지않고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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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은 픽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추가적인 작가의말 (읽지않아도 충분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서글퍼지는 날이 있잖아요.

혼자 얼굴을 꾸깃꾸깃 접으며 

울어보려고 해도 울음은 안나오는 날.

그런 날들이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저는 '척'에 지친 나를 보게 되더라구요.

 

여러 사람들에게 보일 모습에 긴장하면서 사는 내 

속은 쓰리고 쓰린데도 꾸역꾸역 버텨나가죠.

그럼에도 위안이 되는 건 나와 비슷한 것 하나쯤은 존재한다는 것.

위 글의 주인공에게는 빛바랜 화분이 그 존재에요.

쓸쓸하게도 자리를 지키며 햇빛과 비와 바람을 맞아

색이 다 바뀌어버린. 열을 받으면 변형되어버리는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화분. 

 

결국엔 자신보다 더 그 화분을 아끼게 된 마음이 드러나버려

도망치려고 애쓰지만 결국엔 항상 안부를 들춰보게 된 것 입니다.

여러분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는 무엇일 지 궁금하네요.

그 존재를 되도록이면 많이 만들고, 자주 보며 살았으면 합니다.

모순점과 나의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하고 있는 우리를 응원해요.

 

 

 

 

 

 

 

 

 

 

늦은 밤,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안온한 밤 보내세요. 

 

+인스타그램 계정도 활성화하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만 올라가는 글도 생길 터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instagram: @knocks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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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목토오케이

    0
    12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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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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