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5
내가 일하고 있는 심야식당과 카페에 몇 차례 외국인들이 들어와
불안해하는 기색없이 주문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 이방인이 궁금해져 핸드폰에 있는 번역기를 켜고
그들의 앞으로 나타나고야만다.
"where are from?" 으로 시작되는 대화는
매끈하게 이어지지는 않지만, 웃음 가득한 대화가 성사되면
볼이 불긋게 변하지만, 그 얕은 긴장을 좋아한다.
그렇게 대화를 시작해놓고서는 고장난 로봇처럼
umm... wait.. 만 중얼거리다 번역기를 외치는 나는 후회한다.
'아 영어공부좀 해둘 걸'.
약 일 년간 제주에 있으면서
생각보다 제주를 여행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봄이 완연한 지금 이방인들은
컬러풀한 배낭과 햇빛을 가린 선글라스.
후줄근한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선 올레길을 걷는다.
아무런 눈치, 제약없이 걷고 있는 이방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한 나머지 비루한 영어실력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말을 건다.
"Hello. Where are you from?"
그 이방인들에게 사소한 선물을 건네는
여행의 행선지는 무엇인지 묻는 내 자신의
신기하고 머쓱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지만,
마음 한켠에는 그 궁금증으로 이어지는 대화가
누군가에겐 나도 이방인이라는 낙인이 찍혀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주는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는 카페에 한 이방인 커플이 들어와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가 가능하냐고 물었다.
가능하다는 말을 전하고 가격을 말해주었더니
자신들이 생각한 가격과는 다르다는 말을 하고 나가려던 찰나
나는 가는 길을 붙잡고 잠깐만 앉아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거품을 잔뜩만들어 하트가 그려진 따듯한 카푸치노를 만들고서는
없었으면 안 될 번역기에
'너희의 용기가 멋있어서 선물로 커피를 주고싶어
모든 여정을 응원해' 를 준비한 후
그들에게 커피를 전해주면서 번역된 화면을 돌려 보여주었다.
그들은 행복한 눈모양을 지으며 고맙다는 말을 연신 뱉었다.
"where are from?" 으로 시작된 대화는
매끈하게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들의 이번 여행계획까지 듣게 되었다.
2주의 휴가동안 지리산을 등정하고, 제주에서 올레길을 걷고,
부산으로 넘어가서 부산에서 후쿠오카로 배를 타는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사람이라면 시도해보지 않을 여행 노선을 만든 그들을 보고
"Very perfect travel plan! your see very very beautiful things!"
라고 외쳤다.
그러고서는 10월에 있을 내 유럽여행의 계획을 그들에게 말해주었고,
그렇게 다 말하고 나니
누군가에겐 나도 이방인. 그 두려움을 조금은 닦아낸 것 같았다.
용기있는 자들을 보면 나마저도 힘이나곤 한다.
힘이 나는 증거로써 볼이 불긋게 변하지만,
나의 그 발그스레한 쑥스러움을 좋아한다.
10월의 따스운 어느날 유럽 어디에선가
얇은 셔츠와 운동화, 그리고 체구만한 배낭을 들고 떠날
내가 정한 이방인의 날. 그날을 기약한다.
언어로는 다 표현 못 할 우리들의 감정, 그리고 경험을 응원해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