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후]동네의 인상들

'추후'의 뉴스레터

2021.04.07 | 조회 1.2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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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후

우리는 서른살이 됐고,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나를 알게 된 사람들은 꼭 고향이 어디인지를 묻는다. 내가 서울 사람일 거라는 예상을 잘하지 못해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의 외모에서 경상도나 강원도쯤을 떠올린다. 하긴 내가 봐도, 내가 서울깍쟁이처럼 생긴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서울 토박이다. 직업 특성상 많은 곳을 돌아다니긴 하지만, 서울이 아닌 다른 곳에서 거주해본 적은 없다. 언젠가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다만 서울 안에서는 나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아봤다. 여기 내가 살아왔던, 그리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 동네들이 있다.

마포구 합정동 / 강남구 신사동 / 용산구 보광동 / 관악구 신림동

새로운 곳에 이사를 가면, 꼭 그 동네를 걸음으로 돌아다녀본다. 걸어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고, 주변에 어떤 장소들이 있는지, 그 동네의 분위기가 어떤지 둘러본다. 그러면서 살게 될 장소의 정서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느껴본다. 그러다 보면 사는 곳에 따라, 나의 정서도 조금씩 영향을 받는다.

 모든 동네는 각자의 특성이 있고, 장단점이 있고,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쉽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동네들의 순위가 있다. 나에게 맞는, 살기 좋은 동네들의 기준이 있었다.

 내가 가장 살기 힘들었던 곳은 신사동이었다. 서울의 중심지이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 정도의 장소이기 때문에 언뜻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동네이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막상 나에겐 가장 살기 힘든 동네였다. 나는 집 안에서도 일하는 곳과 쉬는 곳의 구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다. 공간을 통해서 최소한의 구분이 있어야만, 휴식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느낀다. 

하지만 신사동은 동네 단위로서도 그 구분이 명확히 되어있지 않은 곳이었다. 주거공간과 문화공간의 경계가 거의 없다시피 한 곳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신사동 안에서 2번의 이사를 하며 살았는데, 어느 위치에서든 그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쉬는 날, 집 밖으로 나서면 전국에서 모인 듯한 화려한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이곳에 오기 위해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자신을 꾸민 듯했다. 반면에 나는 슬리퍼를 끌고 편의점에 다녀오는 식이었는데, 실상 이 곳이 나에게는 거주 동네라지만 집 밖으로 나올 때마다 매번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 사는 주민인데도, 항상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반면 나에게 가장 살기 좋았던 동네는 합정동이었다. 합정동에는 앞서 말했던 기준들을 충족시켜주는 조건들이 있었다. 그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단지와 사람들이 찾아드는 번화가의 구분이 명확했다. 때문에 일상은 평범하고 조용한 동네에서 보낼 수 있었고, 어느 날인가 조금 들뜬 기분이 드는 날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번화가에 갈 수도 있었다. 근처에는 상수동이라던가 연남동, 망원동 또는 홍대, 신촌 등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멀지 않게 그곳들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한강 또한 가까웠기에 느긋하게 걸어 다니고 싶은 날이면, 한강공원에 갈 수도 있었다. 대체적으로 주거, 문화, 휴식의 균형이 조화로운 동네였다. 번잡하지도 않고, 너무 동 떨어있지도 않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는 동네였다. 

 내가 살기에 최악과 최고의 동네 이외에도, 나는 나름의 특색이 있는 동네들 또한 거쳐 왔는데, 그곳은 보광동과 신림동이었다. 

 보광동은 흔히들 알고 있는 이태원이 위치한 곳이었다. 이태원에 살기 전에 나는 그곳의 인상을 외국인과 성소수자들, 그리고 클럽이 많은 지역으로, 조금은 단순한 이미지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 살아보니, 생각보다 이태원은 더 많은 다양성의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외국인과 성소수자들뿐만 아니라, 원래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과 새로 들어온 젊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았고, 그 모습은 굉장히 이색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길을 걷다 보면, 그곳에 오래 살고 있는 노인들과 온몸에 문신을 하고 독특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 이주 노동자들과 유학생들, 트랜스젠더와 게이들을 모두 한 걸음에 마주 칠 수 있었다. 

여러 가지의 다양성이 뭉치면 각 개성의 합이 아닌 오히려 단 하나의 풍경으로만 느껴지는데, 그건 나의 평범함이 이곳에는 부족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내 생각에 그들을 하나의 풍경으로 묶어주는 공통점은 다들 이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주류가 아닌 각자의 개성이 어우러져 오히려 하나의 주류가 된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신림동, 사실 이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이 언덕이 많은 동네에 집을 샀고, 그곳에서 나와 형을 낳고 키웠다. 어렸을 적 우리 부모님은 하숙 비슷한 걸 하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생 형, 누나들을 돌봐주기도 했다.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에는 뒤늦게 생긴 삼촌 이모들이 많았다. 나는 이곳에서 어린 시절의 흉터가 생기기도 했고, 많은 책을 읽었고, 세발자전거를 탔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신림동은 고향 중의 고향 같은 곳인데, 최근에 신림동으로 다시 돌아와 살게 됐다. 신기하게도 이곳은 변함이 없다. 최초의 정서가 이 곳에 머물고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에게는 가장 평범한 곳이었고 지금에 돌아와서도 이곳은 그 평범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이 나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학생, 주부, 아르바이트생, 직장인, 자영업자들이 모두 빠짐없이 모여 살고 있는 듯한 곳인데, 어떤 이에게는 지나치게 서민적인 풍경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이 나라의 가장 평범한 풍경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처럼 지역과 공간에는 여러 가지 특유의 정서가 존재한다. 나라는 사람의 관점이 주는 영향도 있겠지만,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만들어진 정서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 공간의 아우라는 나의 시간과 만나서 또 다른 형태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러 동네들을 거쳐가며, 내 안에 이 공간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생겼다. 하지만 만약 이곳에서 적극적으로 살지 않았다면, 이곳들을 그저 머무는 곳으로 인식했다면, 이토록 다양한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의 나에게 존재하는 여러 동네의 정서들 또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동네들 또한 열린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다. 어떤 새로운 모습과 정서들로 나에게 영향을 줄지 기대하고 있다.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월/수/금]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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