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렁크를 열고서 낚싯대나 간이 의자 같은 것들을 차례대로 꺼내 놓았다. 아버지는 아직 잠에서 깨질 않았는지 조수석에 앉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뒷좌석 사이에 끼어 버린 비닐봉투를 꺼내려 손에 힘을 주자, 어설프게 묶어 놓은 입구가 터지면서 봉지라면이나 식기류 같은 게 쏟아져 나왔다. 코를 찌르는 흙냄새가 나고 손바닥이 축축 해졌다. 오는 길에 아버지가 산 미끼통이 쏟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쾌함에 괜히 신경질이 나, 봉투를 바닥에 던져두고서 조수석을 향해 걸어갔다.
오른 손바닥을 바지춤에 닦으며 창문을 두드렸다. 선팅으로 흐릿한 창문 안을 얼핏 들여다보자, 그제서야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먹구름이 드리운 듯 퀘퀘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나는 차 문을 열고서,
“도착했어요, 일어나세요 이제”라고 말했다.
아직 비몽사몽 한 아버지를 그대로 두고서 다시 트렁크로 향했다. 자갈 바닥에 떨어진 봉지 라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쏟아진 미끼 상자 만을 갈무리해서 봉투 안에 주워 담았다. 다른 물건들이 담긴 종이박스 안에 그걸 던져 넣고는, 간이 의자를 집어서 어깨에 둘러메고, 낚싯대를 잡았다. 조수석 쪽에서 자갈 밟는 걸음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괜히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낚시꾼들이 발끝으로 눌러 놓은 갈대밭에 자리를 잡았다. 낚싯대를 조립하려 했지만, 간만에 잡아보는 것이라 가물가물한 기억에 손이 이리저리 헤매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아버지가 갈대를 헤쳐 나오고 있었다. 손에 봉지 라면을 들고 있었고,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낚싯대에 열중한 척, 시선을 돌렸다.
미리 펼쳐놓은 간이의자에 앉은 아버지는 타이어에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곧이어 숨이 좀 잦아들자, 챙이 짧은 모자를 들어 올리면서 하늘을 쳐다봤다.
“비가 올 것 같은데, 파라솔은 챙긴 거야?”
“그냥 흐린 것 같은데, 비는 안 오겠죠. 오늘 예보에도 없었어요.”
아버지는 이미 주름이 많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면서
“그래도, 비가 올 것 같은데”
“요새는 날씨 같은 거 잘 안 틀려요. 그래도 혹시 비가 오면. 그때 가져올게요.”
“.. 비가 오고 나서 가져오면 무슨 소용 이야, 이미 다 젖을 텐데.”
나는 입을 다물고, 조립하려 애쓰던 낚싯대를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일부러 멀쩡한 갈대들을 밟으며 걸어갔다. 우두둑- 억센 갈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파라솔을 가지고 돌아오자 아버지는 이미 다 조립해놓은 낚싯대를 강물에 드리워 놓고 있었다. 나는 파라솔을 땅에 박아 넣고 의자에 앉았다. 아무 말 없이 앉아서 수면을 바라보고 있자, 강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갈대밭과 강둑 사이. 어딘가에 틀어박혀 있을 두꺼비 우는 소리가 이따금씩 박자를 맞추어 아버지와 숨소리를 주고받았다. 묘한 박자에 잠시 빠져드는데,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예전에 내가 너한테 금붕어를 사줬던 거, 기억나냐.”
“.. 금붕어요? 아니, 그런 기억은 없는데.”
“눈에 선한 붉은색이고, 그때 네 주먹만 한 놈이었는데. 아예 기억이 나질 않아?”
“글쎄, 금붕어 같은 걸 키웠던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네요. 강아지도 아니고.”
“네가 이름도 붙여주고 매일 그 어항을 들여다보던 게 기억나는데. 그래 너는 기억을 못 하는구나.”
알듯 모를 듯, 서운함이 담긴 말투에 나는 의아함이 들어,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가만히 앉아 수면을 쳐다보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면 회상에 잠긴 묘한 표정이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 얼굴이 노을에 물들었다. 문득 아버지가 원래 저런 안색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노을 같이 붉은 안색. 붉은색의 금붕어.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 나는 매일 TV 앞에서 퇴근하는 아버지를 맞이하곤 했다. 내가 좋아했던 만화 프로가 아버지의 퇴근 시간과 겹쳤기 때문이었다. 처음 방영을 시작하고서 며칠은,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엄마에게 잔뜩 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꺼져있는 TV에서도 눈을 떼지 못하자. 어느 날 아버지는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말했고, 엄마도 그 말에 따랐다.
그날도 어김없이 만화 프로의 방영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웬일인지 일찍 돌아온 아버지가 술에 취해 얼큰한 얼굴로 나에게 내민 것이 있었다. 그건 투명하고 두꺼운 비닐봉투 였는데. 그 안에 둥그렇게 일그러져 보이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불덩어리 인가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건 선명한 붉은색의 금붕어였다. 녀석은 부침개 끝자락 같은 지느러미를 나풀거리며 작은 봉투 안을 돌아다녔다. 가끔씩 내 얼굴을 마주 보며 입을 뻐끔거리기도 했다. 나는 커다란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고서 금붕어를 풀어주었다. 대야 앞에 무릎을 꿇고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아버지는 저 녀석 TV 좀 그만 보게 하려면 매일 새로운 금붕어를 사 와야겠다며, 취기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삐이- 귀가 따가운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낡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알람을 끄고서,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이러다 한 마리도 못 잡겠어.”
아버지는 바지춤에 있던 작은 가방의 지퍼를 열고, 안을 뒤적거렸다. 등 뒤로 돌아가버린 가방 안을 뒤지느라 잔뜩 젖힌 얼굴이 이내 시뻘게졌고, 나는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리 주세요, 제가 할게요.”
아버지는 나를 가만 쳐다보더니 의외로 순순히 몸을 틀어 가방을 내주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은색의 침통 같이 생긴 것을 꺼내었다. 작은 주사기 안에 약을 담고서 아버지의 상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허리춤에 주사기를 조심스럽게 찔러 넣었다.
“다 됐어요. 옷 내리세요.”
아버지는 등을 돌린 채 올라간 상의를 내리려 애썼다. 하지만 헛손질만 할 뿐이었다. 나는 아버지 대신 상의를 잡아 내려주었고, 얼핏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아버지의 배에 시선이 닿았다.
아버지는 메마른 손으로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더니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빈 주사기와 약병을 쥐고서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괜히 손에 쥔 약병을 만지작거렸다.
어느 주말 저녁, 나는 아버지와 함께 거실에 누워 만화 프로를 보고 있었다. 금붕어는 내 용돈을 모아서 산 어항에 담겨 있었는데. 나는 항상 TV를 볼 때 옆에 어항을 두고 누웠다. 아버지는 시력이 안 좋아진 후로, 집에서 안경을 쓰고 있기 귀찮다며 거실 앞 쪽에 누워 TV를 보았고 때문에 난 늘 어항을 껴안고서 아버지 뒤편에 앉아있었다.
만화 프로의 방영이 끝나고 광고가 나올 때쯤, 나는 흥미가 떨어져 어항 속 금붕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물속 너머 누워있는 아버지의 종아리를 바라보았다. 나는 금붕어의 불룩한 배와 아버지의 불룩한 종아리를 번갈아 쳐다보았고, 겹친 그 모습이 너무나 닮은 것 같아,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웃음을 터트리자, 누워있던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왜 웃어?”
나는 이미 웃음이 터져버려, 이유를 설명 하기에는 숨이 부족했고, 아버지는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거 참.. 하면서 웃어버리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쥐고 있던 약병을 강가 멀리 던져버렸다. 비어있는 약병이어서 그런지 가벼운 물소리가 났고, 금세 주변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는데, 잠이 오는지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시선을 내려 아버지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베이지색 면으로 된 반바지, 그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가 이제는 마른 나뭇가지처럼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어김없이 금붕어를 확인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잘 먹지 않고 영 기운이 없어 보이는 녀석이었기 때문에, 소나기가 내리는 것을 보고 학교가 파하자마자 달려온 것이었다. 역시나 평소보다 움직임이 덜하고 입도 천천히 뻐끔거리는 것 같아, 나는 먹이를 던져두고서 가만히 녀석을 지켜보았다. 어쩐지 빵빵하던 배도 조금 홀쭉해진 것만 같았다. 수면 위를 떠다니며 물에 젖어 가라앉는 사료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금붕어를 보면서 나는 조금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곧 만화 프로가 시작될 시간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항을 한번 톡톡 두들겨주고서 거실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금붕어는 배를 뒤집었다.
나는 녀석이 죽고 나서 닷새 동안 어항을 가려 두었다. 아버지나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며칠을 가려 두었다가 방안을 가득 채운 비린내를 외면할 수 없게 되자, 무작정 어항을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어릴 적 살던 그 동네에는 태화강이라는 이름의 강이 크게 흐르고 있었는데, 나는 가장 가까운 물가를 생각하다 그곳으로 향했다.
키보다 더 큰 갈대를 헤치고서 강가에 겨우 다다르자, 나는 어항을 내려놓고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해가 저물고, 하늘이 어둑 해지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항을 뒤집어 금붕어를 강에 풀어주었다. 둥둥 떠오른 금붕어는 물살을 타고서 천천히 멀어져 갔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한 붉은색이 아무리 멀어져도 눈에 걸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도저히 멀어지지 않자, 결국 먼저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툭- 빗방울이 떨어졌다. 하늘을 쳐다보자, 어둑한 구름들 사이로 비가 조금씩 쏟아졌다. 비는 갈수록 점점 거세어져 갔고,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 거봐. 내가 비가 올 거라고 했지.”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로 나지막하게 말했다.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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