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일을 하다 보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길게는 몇 개월에서 짧게는 몇 주정도, 낯선 곳에서 지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낯선 기분과 동시에 설렘이 찾아온다. 이러나저러나 모든 것이 똑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풍경을 면밀히 살피다 보면, 그곳에도 이야기가 틈틈이 숨어있다. 이번에 찾아온 평창의 그늘에서도 어떤 말들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평창, 그중에서도 대관령면에서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평창이라는 지역명을 들어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쯤 일까. 새로운 시대의 슬로건이었던 남북평화회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거대한 행사. 당시에 올림픽을 잘 챙겨 보지도 못했지만, 나는 그때의 평창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3년 후인 지금의 평창에 도착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생각보다 잘 되어 있는걸?’이라는 것이었다. 막연히 지방이라 생각하며 내려간 곳에서 마주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건물들과 몇몇 프랜차이즈 가게들 때문이었을까. 이곳은 수도 어딘가의 풍경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그 익숙함과 이질감이 긍정적인 평가는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올림픽 직전에 새롭게 조성되었을 거리를 걷다 보니, 과거에 이곳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았을 사람들의 시선이 으슥한 바람처럼 쌀쌀하게 느껴졌다.
낮게 조성된 거리, 전투적으로 전시된 가게들 너머 낡은 풍경으로 남아있는 집들이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낡아빠진 정취로만 남아있었던 것인지, 과거는 새로운 시대의 껍데기에 가려져 있을 뿐이었다.
성화가 지나쳐갔을 광장에는 기념비 같은 만국기들이 정처 없는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올림픽에 쓰였을 빈 컨테이너만 남아 텅 비어버린 광장을 더욱 볼품없게 만들고 있었다. ‘비둘기 없는 광장’처럼 무척 낯선 풍경이었다.
어떠한 기념이 이어 지지도, 그렇다고 정리된 것도 아닌 애매한 풍경에서 우리 시대의 평화를 읽게 되었던 것은 그저 나의 과대해석일지도 모른다. 다만 나에게는 잊혀진 평창이, 잊혀진 평화의 시대처럼 느껴 지기만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함께 시작된 남북평화회담의 전설은 시대의 박차를 가해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올림픽이 떠난 평창처럼 휑휑 하게만 느껴진다. 평화라는 것은 한밤의 폭죽놀이처럼 화려하게 터지고 사라질 일이 아닐 텐데도, 이 나라의 평화는 이미 지나가버린 전설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면, 지나간 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 나라와 국가의 일이 아니더라도. 때때로 지나간 일이 추억 삼기에는 괴로운 일일지라도, 평화의 내일을 맞이하려면 지나간 불행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잊어버리면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평화에 대한 염원이나, 내일에 대한 희망이 사그라진다.
평창의 거리 곳곳에는 아직 만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형형색색의 국기들이 나란히 함께하며 무언가의 바람으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나고 3년이 지났는데도 저 깃발들을 관리하는 사람은 누구일지 무척 궁금할 따름이었다. 아마 어떤 누군가는 아직 무언가를 기억하고, 바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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