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8일 에세이레터- 노스탤지어의 향기

  사실 저는 ‘향수’라는 이번 주 주제를 두고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 단어가 가진 중의적 의미를 풀어내면서도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그렇지만 너무 뻔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번역가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요).

  처음에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벤 휘쇼 배우가 주역인 영화로 알고 계신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바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이 소설은 천재적인 조향사 ‘그르누이’의 삶과 그 여정을 따라가며, 그가 맡는, 또 만들어내는 향들을 아주 생생하게 표현해냅니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작가가 그려낸 향의 세계에 감탄하며, 향수에 푹 빠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장을 덮고 나서는, 마지막에 그가 창조해내는 ‘궁극의 향’이란 도대체 뭘까 너무나도 궁금했죠. 제 머릿속에 저장된 향의 기억을 총동원해, 가장 매력적인 향을 상상해 보기도 하고, 길에 있는 온갖 풀냄새를 다 맡아보고. 백화점에 가면 향수 시향은 꼭 해보았습니다. 심지어는 아주 잠깐 조향사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좋아하는 향수 하나 없는 심심한 어른이 되었지만요.

  향수와 향에 대해 반추하다 보니, 문득 유학 시절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미국에서의 첫 학기, 저는 심한 향수병을 앓았거든요. 아무리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고 해도,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고 한국 식당 하나 없는 곳에 갑자기 떨어져 버려 굉장히 외로웠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견딜 수 없는 밤들이 있었습니다. 베개를 적시며 한참 울기도 하고, 책장에 있는 한국 소설이나 시집 몇 권을 있는 대로 빼 들고 크게 소리 내어 또박또박 읽기도 하고,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암흑과도 같은 공허를 메우려 애를 써보아도, 도저히 지나가지 않는 밤이죠.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라는, 백석의 흰 바람벽에 쓰인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삼키는 밤이었습니다.

  그런 밤이면, 저는 한국에서 가져간 둥굴레차를 한 잔 마시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손끝의 온기와 구수한 냄새가 온몸으로 퍼져나가 마침내 심장을 데우는 감각을 느끼며, 이 밤의 끝에 놓여 있을 한국의 모습을 바라보았죠. 그러다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낡은 동네 골목길이나 옛날 가족사진 속 풍경이 주는 안도감에 비로소 잠을 청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향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단어가 없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의아해 하면서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저는 괜스레 제가 너무 감상적으로 변해버린 듯한 기분에 조금은 부끄러웠습니다. 고작 둥굴레차 향기로 위로를 받다니, 향수병이란, 또 타향살이란 정말 무섭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이런 사람이 저만 있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2001년 미국 모넬화학감각센터의 헤르츠(Rachel Herz) 박사가 지휘하는 연구팀은 냄새와 기억의 상관관계를 밝혀내기도 했죠.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에서 유래한, 향기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본 현상은,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불립니다. 책의 첫 부분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마들렌의 향기를 맡고는 과거의 기억을 회상합니다:

  지금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세요. 여러분에게, 화요일의 향기란 어떤 냄새로 다가오시나요? 대중교통 속 다양한 사람들의 체취가 뒤섞인 향기, 또는 사무실의 약간은 건조한 공기 속 섞여오는 누군가의 핸드크림 향기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화요일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자주 쓰는 핸드워시 브랜드의 상큼하면서도 너무 달지 않은 꽃냄새가 떠오릅니다. 어떤 향이든지, 이 향기를 꼭 기억해 두세요. 세월이 흐른 후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맡은 향기로 과거의 나 자신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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