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2일 에세이레터- 첫 수영

  재수학원 다닐 때의 일이다. 같은 반에 딱따구리를 닮은 귀여운 여학생이 있었는데, 어느 여름날 저녁 무렵 “수영 잘하는 남자가 정말 멋진 거 같아.”라고 친구와 대화하는 것을 우연찮게 듣게 되었다. 학원 다니면서는 <다른 사람과 말 한마디도 안 하기>를 신조로 삼고 있었던 터라 딱따구리를 닮은 귀여운 여학생과는 말 한 번 나눠본 적 없었지만 ‘수영을 열심히 해야겠다!’란 결심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자. 남자들이 다 그렇지 뭐.

  첫 수영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였다. 세상에 마상에. 아무 생각 없이 걷던 25m가 그렇게나 길 줄이야. 헤엄치는 건 고사하고 물을 먹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과 그럼에도 눈, 코, 입으로 사정없이 쏟아지는 물에 괴로웠던 첫날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염소로 소독한 물은 꽤나 따끔하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갓 시작한 대학생활은 늘 분주했기에 수영 수업에 지각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이 이어졌다. 실력 향상은 더뎠고 자연스레 수영에 대한 흥미도 약해져만 갔다.

  조조의 닭갈비마냥 그만둘 수도 계속할 수도 없던 수영. 일 년이 가깝도록 자유형조차 습득하지 못해 끙끙 앓던 나는 결국 접근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내 상황이 피동적인 국면에 붙잡혀 있는데, 이런 식으로는 수영을 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주동적인 국면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자체적으로 분석한 나의 핵심 문제는 두 가지였다. 근래의 불규칙하고 무절제한 생활로 인해 팔다리의 근력이 약해진 것과 체중이 증가한 것. 이를 해결하고자 교내 헬스클럽에 등록해 운동했고, 식단 조절로 체중 증가를 억제하는 데 집중했다. 더불어 수영 동아리에 가입하고, 강습반을 주기적으로 옮기며, 수영 선수의 유튜브 채널도 구독해 열심히 시청했다.

  빠르고 획기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나는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바뀌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물 먹는 일은 줄어들었고, 조금씩 여러 영법에 익숙해지게 됐다. 그렇게 또 일 년이 가깝게 흘러 자유형과 평영을 체득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25m는 갈 수 있게 되었다. 천천히 헤엄치면 50m도 가능하고. 방심하면 물 먹는 건 여전하지만 적어도 물을 두려워하진 않게 되었다. 목적지로 가는 길은 여러 종류가 있는 게 보통이라, 꼭 하나만 고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올인보다는 위험 분산이 합리적인 것처럼. 대유적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요즘은 아침수영을 다니고 있다. 오전 7시부터 7시 50분까지. 도서관 가기 전에 잠깐. 잠이 덜 깬 채로 느릿느릿 준비해서 가보면 수영장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할아버지들의 탄탄한 근육과 할머니들의 물개 같은 속도에 혼비백산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공부하느라 바쁜 나날이지만 수영만큼은 놓치지 않을 생각이다. 글을 읽는 모든 분께 수영을 권하고 싶다. 의외로 재미있다. 아침에 수영장 물 먹으면 배불러서 밥 안 먹어도 되고. 아 참. 딱따구리를 닮은 여학생은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 건너서 들으니 외국에서 결혼해 잘 살고 있다고. 내게 수영을 선물해 준 딱따구리 여학생이 행복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