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409] 네게 사랑 아닌 건 주지 않을래

 4주간의 교생 실습을 무사히 마쳤다. 3주차부터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지나갔다. 체육대회, 소풍, 학생 상담, 교직원 연수, 수업 참관과 공개수업… 매일 6시에 일어나 불편한 옷을 입고 하루종일 바짝 긴장한 상태로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일이 쉬웠다고 하면 거짓이다. 그러나 아침 조회에 가서 오늘은 아이들에게 어떤인사를 할까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학교에 출근하는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3주차를 시작하는 나의 다짐은 눈을 맞추고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러주자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함께하고, 오래 동안 나의 기억에 남을 학생들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다정하게 불러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타인의 인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좋아서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남의 인생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내가 그럴 만한 괜찮은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이기적인 이유로 희망하기엔 교사는 너무 책임이 막중하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나가니 그런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기억에 남고 싶고, 내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싶어 무언가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정된 시간 안에 그저 더 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이기적인 부분은 그거 하나였다. 내가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것.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시간이 적어, 점심 시간을 쪼개고 퇴근 시간을 늦추며 학생 상담을 시작했다. 퇴근이 늦어지는 건 아쉬웠지만,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기대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상담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 역시 진로가 뚜렷하지 않기에 학생의 진로에 대해 조언해주기 망설여 졌고, 나에겐 모두 다 같은 학생이기에 친구 관계에서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학생에게 섣불리 조언하기 어려웠다.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국제학교에서 전학을 와 한국식 내신 공부가 어렵다는 학생까지… 모두가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진심으로 경청해주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응원하는 것 밖엔 없었다. 내 눈엔 모두의 가능성이 빛나보였기에, 최선으로 응원해주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제껏 학생들에게 바라는 것이 없었지만, 마지막 주 수요일즈음 부터는 슬금슬금 욕심이 생겼다. 분명 마지막 날 이벤트로 무언가 적어 줄 것이 분명한데… 보드마카로 칠판에 적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니고 갈 수 있는 종이에 적어주기를 바랬다. 내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형태의 흔적을 가지고 싶었다. 금요일 조회,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칠판에 잔뜩 마지막 인사를 적어두었다. 당연하게 고맙고 감동이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교생 생활의 마무리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종례 시간이 되었다. 밤 새 포장한 선물꾸러미와 편지를 들고 교실로 갔다. 선물을 나눠주고 눈물을 참으며 편지를 다 읽은 찰나, 반장이 커다란 종이를 들고 나왔다. 수요일부터 조금씩 적어온 편지들이었다.

 24명의 학생들 모두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선생님은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되실 것 같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나보다 더 울며 컴컴했던 자신의 앞길을 선생님께서 밝혀주셨다고 했다. 끝날 때 까지 나에게 말을 한 마디도 붙여주지 않았던 학생은 따로 연락이 와 선생님과 친해지지 못한 게 후회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아, 정말 고맙고 행복했다. 내가 이런 말을 들어도 되나 정말 부끄럽기까지 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이 나 만의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나누고 있던 것이라 생각하니 걷잡을 수 없이 기뻤다. 또 내가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했던 사랑과 마음이, 온전히 닿은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또 나의 사랑을 왜곡없이 받아줄 수 있는 학생들을 만나서 참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내가 교사의 길을 걷게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러나 앞으로 내가 어떤 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한 달간 받은 사랑과 애정을 떠올리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진심은 통한다는 단순하고 식상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결국엔 선하고 진실된 사랑은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