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409] 이야기가 없는 옷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인 피노 컬렉션이라는 미술관을 다녀왔다. 메인으로 한국 여성 작가인 ‘김수자’ 작가님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수자 작가의 주된 테마는 ‘의복’이며, 김수자 작가는 ‘천으로 삶을 표현한 보따리 작가’, ‘바늘 여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미술관에 김수자 작가의 ‘보따리’가 여러 점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피노 컬렉션에 기재된 설명에 따르면, 작가는 어머니가 바느질하는 것을 보다 문득 이렇게 일상적인 것들을 작품을 통해 다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처음 나는 이 설명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이러한 작가의 사고가 내 눈앞에 놓인 작품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 전 세계의 전통적인 직조, 직물 문화에 대해 담은 영상물인 ‘실의 궤적’이라는 작품을 멍하니 감상하고 있다가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의복은 인간의 3대 필수 요소인 의식주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을 만큼 인간과 가장 맞닿아 있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평론가들은 김수자 작가의 이 영상물을 보고 ‘시각적 인류학’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직조, 직물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담는다는 것이다.

최근 미디어의 발달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을 한껏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신이 먹은 것, 방문한 장소, 입은 옷을 공유하며 자신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멋진 삶을 살고 있는지 뽐낸다. 이를 통해 미디어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그렇기에 개성은 현대인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는 의류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의류에 대한 관심도는 한없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패션의 흐름 역시도 이전보다는 더 빠르게 반영되고 퍼져 나가고 있다. 유행은 빠르게 변하지만 효과는 더 강력해졌다. 이러한 빠른 흐름을 반영하기 위해 현대인은 ‘패스트 패션’을 창시했다. 저렴한 가격에 빠르고 편리하게 옷을 구매하고, 그로 인해 쉽게 소비하고 쉽게 소모한다. 옷을 만 원 이하로 얼마든지 구매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큰 고민 없이 옷을 소비한다.

김수자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며 패스트 패션이 떠올랐고, 의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최근의 의복 문화가 오히려 공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에 이야기가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옷을 구매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엄마는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처럼 중요한 행사가 있기 전에만 나에게 옷을 사주었다. 그렇기에 그런 날에는 늘 주름이 미처 다 펴지지 않은, 아직 나에게 길들지 않아 빳빳한 옷을 입고 불편하게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혹은 주변 어른들이 나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옷은, 앞치마처럼 생긴 하얀 원피스였다. 옷에는 작게 삐삐가 그려져 있었고 나는 그 옷을 사주신 엄마의 직장 동료분을 ‘삐삐 앞치마 이모’라고 여전히 부르고 있다. 덤벙대는 성격 탓에 넘어져 바지가 찢어지거나 단추가 떨어지면 엄마는 노란 반짇고리를 가져와 내 옆에서 바느질을 해주시고는 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더 이상 옛날의 나처럼 단추를 다시 달거나 옷을 깁기 위해 반짇고리를 열 필요가 없다. 비슷한 옷을 찾아 구매하면 그만이다. 옷을 언제 구매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너무 많은 옷이 있기에 몇 번 입지도 않은 옷들이 수두룩하다. 그 와중에도 유행은 급변하니 나의 옷장에는 새로운 옷들이 늘어만 갔다. 이러한 나의 옷들에는 이야기가 없다. 어떤 동기로 구매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언제 입었는지에 대한 추억도 없다. 나는 어쩌면 사람들이 이에 대한 갈증과 반항심으로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 먼지가 폴폴 날리는 빈티지 의류에 눈을 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날 이후로 옷에 대한 소비를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행 간 김에 구매하고자 했던 가방을 내려놓고, 가격이 저렴하니까 구매하고자 했던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티셔츠를 내려놓는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가진 옷들에 이야기를 불어넣어 줄 생각이다.

코리아나의 정재숙 기자는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나바호족과 호피족의 직조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을 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인류의 시원을 더듬게 하는 아득한 평원, 석기 시대를 연상시키는 거친 폐허, 우뚝한 돌산과 끝없는 지평선이 캔버스의 밑칠처럼 떠오른다. 그 속에서 무언가를 짜고 풀고 또 짜고 있는 여인들이 도톰한 바느질처럼 질감을 드러낸다. 인간이 걸어온 길은 저것이 다일 수 있다. 자연 속에 바느질되어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며 허(虛)로 스며들기.

당신의 옷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나?